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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V 방송 리뷰/벌거벗은 세계사

에비타 아르헨티나 최연소 영부인 되다. (111-1)

by 짱신나^^ 2023. 8.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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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비타는 불리한 인생의 조건에서 태어났으나 여배우이자 아르헨티나의 후한페론 대통령의 아내가 되었고 세계사에서 유례가 없을 정도로 짧지만 극적인 인생을 살다 간 가장 유명한 퍼스트레이디였다. 가난한 자의 성녀이자 노동자의 어머니, 아르헨티나의 국민 영웅으로 추앙받던 인물이었다. 그러나 모두가 그녀를 좋게 기억하는 것은 아니다. 사치때문에 거액을 횡령한 악녀로 불리기도 한다. 그뿐 아니라 후안 폐론 대통령에게 이용당한 가련한 여인으로 상반된 이미지를 가지고 있다.

 

귀여운 에바라는 뜻의 에비타로 알려짐

에비타는 26세에 퍼스트레이디가 되었고 여성 정당을 창설, 아르헨티나 여성들이 역사상 처음으로 여성 투표권을 확보할수 있게 되었다. 

 

100 페소 지폐에도 새겨질 만큼 유명 현재 환율 100페소=500원도 안됨.

 

에비타는 팜파스의 로스톨도스에서 1남 4녀의 막내딸로 태어났다. 에비타의 아버지는 이민자의 후손으로 농장주였기때문에 에비타는 어린 시절을 안락한 집에서 여유롭게 자랐다. 그러나 에비타의 아버지는 이미 유부남이었고 에비타는 혼외 자식이였다. 목장의 수입이 줄어 경영이 어려워지자 본처에게로 돌아갔고 어린 에비타와 가족들은 하루아침에 궁핍해졌다. 

 

이에 15세에 에비타는 배우가 되기 위해 아르헨티나 최대 도시 부에노스아이레스로 가서 방속국과 극장을 돌아다니며 구직활동을 했다. 그러나 당시 여배우의 처우는 좋지 않았고 이후 에비타가 비난받은 이유가 된것도 이 무명 배우시절때문이다. 

이렇게 무명배우 시절을 10년간 겪은 후 라디오 드라마에서 주인공을 맡으면서 배우로써 인기를 얻게 되었고 이를 계기로 잡지 표지 모델로 활동, 대중에게 각인되기 시작한다. 이렇게 에비타는 배우로써 상승기를 누리고 있었다. 

 

1944년 1월 아르헨티나 산후안에 지진이 발생하면서 많은 이들이 죽게 되었고 이를 돕기 위한 모금 행사에서 에비타는 후안 도밍고 페론을 만나 사랑에 빠진다. 

 

 

 

1930년 부터 아르헨티나는 보수적인 군부세력이 정권을 장악하고 있었는데 1943년 젊은 군 장교들이 쿠데타를 일으켜 새로운 정권이 자리 잡게 되었다. 이 새로운 정권에서 노동복지부가 신설되었고 그 자리를 후안 페론이 맡게 되었다. 당시 후안 페론은 48살 에비타는 24살로 나이 차이가 2배나 됐었다.  후안 페론의 아내는 자궁암으로 세상을 떠나고 6년 후 에비타를 만난 것 이다. 

 

라디오 드라마를 했던 에비타 <역사 속 위대한 여인들 > 주인공을 맡았다.

 

두 사람의 만남은 에비타의 배우 생활에 큰 영향을 주었고 페론의 후원으로 방탕한 여인의 주인공으로 발탁이 되었고 이런 에비타로 인해 후안 페론 역시 지지층을 넓히는 등 서로에게 좋은 영향력을 주게 된다. 

 

그러나 페론의 입지가 강해지자 군 내부에서 노골적으로 그를 경계하기 시작했다. 반 페론 세력이 노동자를 지지하는 페론의 과격한 내용을 빌미삼아 그를 체포했다. 페론의 최저 임금제, 의무 휴가 같은 노동자를 위한 제도를 시행했던 그의 정책을 지지 노동자들은 페론을 석방시키기 위해 총파업을 결의한다.   

 

페론의 석방을 위해 30만명의 노동자들의 총파업

이에 페론을 수감한지 5일만에 석방을 했다. 이 일을 계기로 폐론은 대통령 선거 출마의사를 밝히고 5일만인 1945년 10월 22 에비타와 혼인을 한다. 그리고 자신의 꿈이였던 배우활동 중단하고 페론의 선거 유세를 지원하는 정치가의 아내로 살게 된다. 

처음 선거 유세를 할때만 해도 에비타는 수줍음이 많아 미소를 자주 보였고 이런 모습이 무뚝뚝한 페론과 상반된 이미지를 보여 애칭으로 귀여운 에바라는 뜻의 에비타라고 부르기 시작했다고 한다. 

귀여운 에바라는 뜻의 에비타

이 시기에 페론의 반대파들은 이들을 공격하기 시작했고 이때 에비타에게는 매춘부라는 꼬리표가 따라다니게 된다. 여러 반대 공작에도 불구하고 노동자들의 지지를 바탕으로 후안 페론은 53%가 넘는 과반수를 획득하며 대통령에 당선된다. 이로써 에비타는 세계에서 가장 젊은 영부인이 되었다.  

 

다음이야기

 

에바 페론 재단 진실과 에비타의 죽음 ( 111-2)

후안 페론이 대통령에 당선되고 에비타는 아르헨티나의 최연소 영부인으로서 활동을 시작한다. 에비타가 영부인이 됐을 당시 부에노스아이레스의 상황 1946년은 제 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모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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