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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주열 열사2

김주열 열사 죽음 허종 기사의 사진 한장이 부른 결과는.. [꼬꼬무 15회] 1960년 4월 마산의 한 병원에 한 소년의 몸에 박혀 있는 불발탄을 무명실에 묶어서 당기고 있다. 그 소년의 이름은 김주열로 당시 17살이었다. 이 소년은 어쩌나 자신의 몸에 이런 끔직한 것이 박힌 것일까? 김주열 열사 누구인가? 김주열의 집은 전라북도 남원이었는데 한달 전에 형과 함께 마산으로 왔다. 당시 명문고로 대학에 갈수없는 학생들이 가는 마산 상고에 입학시험을 치기 위해서였다. 김주열은 착하고 우등생이었고 가정 형편을 생각해 마산상고 입학을 결심했던 것이다. 두 살 위의 김 광열이 보호자로 따라 나섰고 시험도 잘봤다. 그리고 3월 14일 합격자 발표날이었으나 발표가 이틀 뒤로 연기되면서 마산에 더 있게 되었다. 김주열의 실종 그런데 다음날 15일 김주열은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형 김광열의 말.. 2022. 1. 28.
4.19 혁명 배경과 전개 과정 속 김주열 열사의 죽음 4.19 전개 간략 정리 ① 3.15 부정 선거 ② 3.15 의거 ③ 김주열 의사 죽음 ④ 4.18일 고려대생 피습 사건 ⑤ 4.19 혁명 ⑥ 계엄령 선포 ⑦ 4.25 교수단 시위 ⑧ 이승만 대통령의 하야 4.19 혁명 배경이 된 3.15 의거 이승만 정권의 3.15 부정 선거로 인해 마산 지역의 민주 당사에서 투표 포기 선언을 하고 전남 광주에 이어 경남 마산에서 3.15 의거가 일어난다. 3.15 선거 당시 계속되는 부정행위를 목격하자 투표 무효를 외치며 거리로 나온 학생과 시민들에 당황한 경찰들은 민중들을 대상으로 발포를 한다. 이날 3.15 시위 현장에서 경찰은 시민들을 상대로 총을 발포하며 무력 진압을 한 결과 9명의 사망자가 발생하고 시위현장을 수습하는 경찰들에 의해 김주열의 시신이 발견되면서.. 2021. 4. 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