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 방송 리뷰/선녀들82 조선 최초 전화와 사진 언제 누가? 새로운 문명의 시작 "처음으로 전화를 걸었던 사람은 누구였을까?""조선에서 가장 먼저 찍힌 사진은 어떤 모습이었을까?"조선 후기, 서구 문물이 들어오면서 전화와 사진이라는 새로운 기술이 도입되었다.이제는 당연한 기술이지만, 당시에는 "사람의 목소리가 선 없이 전달된다?", "사람의 모습을 종이에 담을 수 있다?" 같은 충격적인 일이었다.그렇다면, 조선에서 최초의 전화와 사진은 언제, 어떻게 사용되었을까? 1. 조선 최초의 전화, 언제 어디서 처음 울렸을까?📞 ① 조선 최초의 전화, 1882년 도입조선에서 전화가 처음 소개된 것은 1882년(고종 19년), 미국과 수교(조미수호통상조약)를 맺은 직후였다.미국 공사관에서 시연을 보였으며, 고종이 직접 이를 체험했다.고종은 새로운 문물에 관심이 많아 전화의 원리를 설명 들은 후.. 2025. 2. 17. 조선 후기 조세제도 폐단 : 애절양 , 황구첨정, 강년채, 백골징포 조선 후기 조세 제도의 폐단 조선 시대 병역 의무자가 군역 대신 내는 베(천)로 납부하는 군포가 있는데 군포를 걷기 위해서 군적에 이름을 올렸는데 16~60세까지의 성인 남자만 징수, 아이,노인,여자는 면제되었다. 4살 짜리 아들과 아버지 30살, 할아버지 70살 가족이 살고 있는 집에 기준대로라면 납부해야 하는 군포는 1필인데 4살짜리 아이를 군적에 올리는 이정(오늘날 이장)이었다. 이것을 황구첨정이라고 한다. ▷황구첨정 이런 어린 아이들을 첨정(군정에 첨가)한다는 뜻으로 황구첨정이 그 당시에는 제도화되어 있었다. ▷강년채 아이에게도 성인 남자에게도 군포를 징수하고 기준을 넘은 노인에게도 부과하던 강년채 ▷백골징포 죽은 사람에 세금을 부과하던 백골 징포(백골에 세금을 부과한다) 이렇게 죽어도 빠져나갈 .. 2024. 2. 13. 박수근 화백 그림 읽기 : 마티에르란? 박수근 미술관 첫 원작품 한국의 밀레 박수근 화백은 워낙 유명한 화가이고 교과서에도 나와서 모르는 이가 없을 것이다. 2007년 박수근 화백의 빨래터가 경매에 나와서 낙찰가가 45억 2000만원이었고 당시 경매가 정점을 찍은 후 8년간 깨지지 않는 금액이었다. 박수근 미술관 박수근 미술관은 박수근 화백의 생가터에 자리를 잡고 있다. 생가는 6.25때 소실되었고 양구군 양구읍 박수근 마을리에 위치해 있다. 생전에미술관 근처에서 스케치북 들고 실제로 그림을 그렸다. 강원도 양구는 돌이 많은 곳으로 박수근 화백의 호도 미석(아름다운 돌)이다. 박수근 화백 마티에르 박수근 화백의 그림 질감은 화강암 같은 거친 느낌인데 전문용어로는 프랑스어로 마티에르이다. 마티에르 화법으로 토속적인 미감과 정서를 담은 박수근 화백이다. 마티에르는 캔버.. 2023. 12. 14. 효명세자가 그린 왕세자입학도첩 그림.. 효명세자는 예술과 학식이 뛰어난 인물이었다. 그가 직접 그린 에는 성균관 입학식 과정이 상세히 담겨있다. 왕세자만을 위한 입학례를 그린 6개의 그림으로 입학례 국가적 경사를 기념사진처럼 기록한 그림이다. 2023. 12. 8. 이전 1 2 3 4 ··· 21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