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을 넘는 녀석들 1회 중]
오늘의 탐사지: 멕시코 국립궁전
주제: 멕시코 혁명의 영웅들
디아스(1876∼1911)는 우리나라 독재 대통령들과 독재 방식이 같았다. 무려 8번의 재선을 통해 33년간 독재를 이어갔으며 정경유착, 부정부패, 뇌물수수등을 이어가다보니 멕시코 농경지 98%는 지주나 정부의 소유가 되었고 멕시코 인구의 80%가 농민들인데 농민의 90% 이상이 땅을 사고 싶어도 송곳하나 꽂을 만한 땅도 없었다.
북부 농민군을 이끌던 판초 비야도 디아스의 군부 정권에 저항하며 농민운동을 전개한다.
사실 판초비야는 농장의 소나 말을 훔치던 강도였으나 자신이 훔진 것을 농민에게 나눠 주면서 농민군의 지도자로 선출이 되었다.
그러던 두 농민군 세력이 만나는 지점이 바로 멕시코 국립궁전 자리였다.
이곳에서 남.북부 연합 농민 혁명군이 독재자를 축출하기 위해 대통령궁으로 밀고 들어가는 멕시코 혁명 (1910년)이 벌어진다. 이렇게 그들은 함께 힘을 합쳐 독재자 디아스를 몰아낸다.
이에 사파타도 동의하고 그들은 다시 농부로 돌아간다.
1911년 독재자 디아스가 물러나고 마데로가 대통령에 당선되지만 마데로 대통령이 국방부 장관 빅토리아노 우에르타에게 암살당하면서 판초비야와 사파타는 다시 한번 뭉게 된다. 이들은 1917년 우에르타 정권을 물리치고 마침내 카란사 대통령이 취임하게 되면서 혁명은 마무리된다.
<라쿠카라차 노래듣기>
우리나라의 동학 농민군과 비슷한 상황이었다.
탐학한 관리를 몰아내기 위해 충청도 북쪽에 최시형과 전라도의 녹두장군 전봉준이 만나서 농민운동을 한다.
비록 동학농민운동은 실패했지만 (1894년 갑오개혁) 신분제 철폐의 계기가 되었다. 미국은 신분제 철폐를 링컨 대통령에 의한 위로부터의 개혁이었으나 우리나라는 농민들이 주축이 된 아래로 부터의 개혁이었다.
동학농민운동 관련내용▼
☞무장포고문 in 동학농민운동 기포지/ 교조신원운동/선운사 마애불 비기(1부)
☞전봉준 고부농민봉기(고부민란)/사발통문/ 고부군수 조병갑의 만석보사건 (2부)
☞우금치 전투와 전봉준 장군 단소 in 동학농민운동 기념관 (4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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