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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V 방송 리뷰/선을 넘는 녀석들 리턴즈

정림사지 5층 석탑, 사비(부여) 천도 이유

by 짱신나^^ 2021. 1.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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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여(사비)

 

 

광개토대왕 장수왕한테 수도(한성)를 함락 당하고 웅진(공주)으로 수도를 천도하여 무령왕이 백제 부흥의 토대를 닦고 그 이후 성왕이 이를 발판 삼아 수도를 금강 하구(사비)로 이전하고 국호를 남부여로 변경한다. 

 

성왕의 사비(지금의 부여) 천도 이유

 

웅진은 고구려의 침입으로부터 백제를 안전하게 시킬 수 있는 앞에는 금강이 흐르고 동서남쪽으로 산이 둘러싸여 있어 고구려의 침략으로부터 철벽 방어가 가능하지만 너무 좁은 면적이었다.  또한 금강쪽에 제민천이 비만 오면 범람을 했고 

공주는 바다와 연결되어 있지 않아 무역에도 불편했기 때문에 성장의 한계를 느끼고

사비(부여) 로 천도를 결정했다. 

 

 

 

 

부여 정림사지 

 

정림사지 5층 석탑

이 탑은 거의 유일하게 원형 그대로 보존되어 있다. 현재까지 보존이 너무 잘 되고 있어서 탑 안에 사리함을 꺼내 보지 못했다. 

 

 

현재 소실된 상륜부 ,상륜부가 있었다면 10m 정도 된다고 한다.

철저히 계산된 탑의 비율

목탑의 양식을 취한 석탑 이것은 상당한 기술력이 필요한 것이다. 

 

 

단단하여 가공하기 힘든 화강암으로 만든 석탑이라 더욱 빛난다. 

 

화려하지만 과하지 않은 단아하고 우아한 백제 석탑의 완성작 

 

 

정림사지 5층 석탑의 또 다른 이름

평제탑이라고 부른 이유

 

 

산라와 함께 백제를 명망시켰던 당나라의 소정방이 나당 연합군에 의해 멸명한 백제, 그때 당나라 군대가 들어와서 이와 같이 탑에 글씨를 새겨놨다.  

 

 

 

 

 

정림사지

 

백제의 사찰은 입구에 중문이 있고 그 뒤에 탑, 부처님을 보신 금당 순으로 배치되어 있다.

백제는 1탑 1금당의 가람배치다. 

 

백제의 영향을 받은 일본의 문화재들 

 

백제 시대에 일본과의 교류가 활발했기 때문에 일본의 사찰 중에는 백제의 영향을 받은 것이 많이 있다. 

나가노 현에 있는 일본 3대 사찰 중 하나인 선광사에는 그곳에는 백제 26대 성왕이 보냈다고 전해지는 아미타삼존불이 모셔져 있다.

 

 정림사지에는 백제문화에 관심이 많은 일본인 관광객들이 많이 방문을 하는 곳이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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