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 방송 리뷰/역사저널 그날117 칭기즈칸 후계자 선정 칭기즈칸 후계자 선정 과정 칭기즈칸이 죽기 8년 전 칭기즈칸이 건강할때 당시로서는 금기였던 후계자 논의를 하게 된다. 그 당시 칭기즈칸이 가장 사랑했던 예수이 카툰(타타르부 출신의 칭기즈칸의 세 번째 부인)이 (정실의 아들만이 왕위 계승 가능) 부담없이 후계자 결정을 꺼냈다. 이때 장남 조치와 차남 차가타이가 싸움이 일어나고 이 싸움은 몽골제국의 운명을 결정짓는 거대한 싸움의 도화선이 된다. 조치와 차가타이의 싸움은 내분,내전으로 이어지고 형제의 갈등은 칭기즈칸 손자대까지 이어진다. 두 형제의 싸움끝에 갑자기 셋째 우구데이로 하자는 말이 나오고 이에 차가타이+우구데이, 조치+툴루이 네 아들이 두 세력으로 갈라지는 시발점이 된다. 우구데이 금나라 정벌(1232년) 칭기즈칸의 마지막 유언은 금나라 정복이었다.. 2021. 10. 28. 몽골 우구데이 -구육칸 - 몽케칸 유럽 정복 [이전이야기]칭기즈칸 후계자 선정 칭기즈칸은 제국을 만들지 않았다. 제국의 땅을 점령은 했으나 통치하지 않았다. 칭기즈칸 사후 제국을 통치하는 것은 2대 카안 우구데이였다. 우구데이 카안부터 유럽을 본격적으로 침공한다. 우구데이 러시아 침공 몽골의 15만 병력을 동원해 현 러시아 루스를 침공한다. 당시 루스는 여러개의 공국으로 분열 되어 있던 상태여서 쉽게 점령을 했고 러시아 공국의 가장 큰 공국인 키예프 공국을 공격 루스 침공 3년만에 전 러시아 지역을 점령하게 된다. 키예프 공국이 사라지면서 그 나라를 바투가 통치하게 되고 주치 울루스(킵차크 칸국)가 들어서게 된다. (몽골 제국의 분열 이후 설립 된 4대 칸국 중 하나로 서방 침공에 총 지휘관 바투가 통치) 유라시아 대륙에서 몽골이 지배를 가장 오래.. 2021. 10. 28. 충렬왕 제국대장 공주 (고려와 몽골 황실의 최초의 혼인) 역사상 최고의 정복자 칭기즈칸과 그의 후예들은 아시아와 유럽 대륙의 드넓은 영토를 지배한다. 이른바 팍스 몽골리카 시대를 연다. 몽골 5대 카안 쿠빌라이는 1271년 국호를 대원으로 변경하고 남송 정벌에 이어 다음 목표 일본으로 눈길을 돌린다. 쿠빌라이는 1차 일본 원정에 앞서 고려의 태자를 사위로 맞이하기 시작한다. 고려와 몽골 황실의 최초의 혼인은 두 나라의 관계에 커다란 영향을 끼치게 된다. 고려 원종(충렬왕) 몽골 황실 혼인 제안 몽골 황실 결혼의 프로포즈는 고려에서 먼저한다. 당시 고려는 무신집권기로 고려의 왕권은 불안했고 1269년 6월 고려 무신 임연이 원종을 폐위시키고 안경공 왕창을 왕위에 옹립한 사건이 벌어졌는데 그때 마침 원에 머물던 고려 원종의 태자 왕심은 쿠빌라이에게 이 사건을 이야.. 2021. 10. 27. 충선왕 계국대장공주 /원 성종=테무르 이야기 [이전 이야기 ] ★충렬왕 제국대장 공주 (고려와 몽골 황실의 최초의 혼인) 충선왕의 탄생 충렬왕과 제국대장공주 사이의 아들 왕원=몽골식 이름 이질부카가 탄생한다. 충렬왕의 뒤를 이른 아들 고려 제 26대 충선왕이다. 우리나라에서 보기 드문 혼혈 왕자이다. 충선왕은 1292년 18세부터 24세까지 원에서 숙위생활을 한다. 이때가 원 쿠빌라이의 전성기로 어릴때 원의 전성기를 목격했던 왕이다. 쿠빌라이 등 원 황실은 고려 세자 왕원(충선왕)을 총애했다. 이질부카라는 이름도 원 태자비가 직접 지어준 것이다. 계국대장공주와 혼인 고려의 세자 왕원은 몽골 황실 직계 여성인 쿠빌라이의 직계 아들 친킴이 황태자로 책봉됐다가 요절했는데 친킴의 맏아들의 딸(친킴의 손녀) 부다시리= 계국대장공주와 결혼한다. 이것이 의미하.. 2021. 10. 27. 이전 1 ··· 19 20 21 22 23 24 25 ··· 30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