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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V 방송 리뷰/역사저널 그날117

태종 이야기 (조선 3대 왕,세종대왕의 아버지, 아들바보 ) [314회] 태종 이야기 태종하면 떠올리는 이미지는 왕위를 갖기 위해 정도전, 남은 등 조선의 개국 공신 대대부분을 숙청했던 인물로 태종은 두 차례의 왕자의 난을 통해 이복동생 방석을 제거, 친형 방간을 유배시키며 왕위에 올랐고 잔혹함, 권력욕, 킬러본능의 상징이었던 인물이다. 태종의 의외의 모습 태종은 무예뿐만 아니라 학문에도 뛰어났는데 이성계 태조의 아들 중 유일하게 문과에 합격한 이가 바로 태종(17세)이었다. 살아서 왕위를 넘긴 태종 조선 왕조 역사에 선위는 몇번 있었다. 대표적으로 단종이 세조 수양대군에게 선위했던 일이 있지만 다른 왕들과 달리 태종은 충녕(세종)에게 자발적 선위를 한 것에는 아주 특별한 경우라고 말할수 있다. 조선시대 실질적 권력을 가진 왕이 선위한 건 태종이 유일하다. 아들 .. 2021. 8. 29.
광해군 이야기 (영창대군 죽음 이유,인목대비 폐위 과정 등) 광해군 조선 14대왕 선조(광해군 아버지)는 부인이 8명으로 왕비가 2명 후궁이 6명이었는데 광해군은 후궁 공빈 김씨의 둘째로 태어나 왕위에 오른 인물이다. 광해군의 경우는 적자가 아닌 서자 심지어 장자도 아닌 둘째였는데 광해군의 친형 임해군의 행실은 포악한 성격으로 행실이 안 좋았는데 광해군은 그에 비해 평판이 좋아 왕위 계승을 둘러싸고 갈등이 시작되었다. 어린 어머니 인목왕후 인목왕후는 의인왕후가 죽고 나서 후처(=계비)로 들어온다. 인목왕후와 결혼할때 선조의 나이가 51세였고 인목왕후의 나이는 19세였다. 광해군보다 9살이나 어린 엄마였던 것이다. 조선왕조는 병적으로 유교적 가치에 따라 여성의 순결을 강조했던 나라이다. 이에 처녀하고만 결혼해야 하니까 왕은 50대가 되었는데 10대 중후반에 여성과 .. 2021. 8. 27.
김마리아 여성독립운동가 1892년생 독립운동가 김마리아는 강인하고 투철한 의지가 느껴지는 얼굴이다. 1892년생을 강조한 이유는 1900년대 전후 동시대 마리아라는 이름을 가진 분이 너무도 많다. 배화여고 학생으로 3.1 운동으로 수감된 김마리아도 있고 광복군 참모장 이범석의 아내로 만주 지역에서 활동한 항일 사수(쌍권총을 쏘던 김마리아(1903~미상), 안중근의 어머니 조마리아도 있다. 김마리아의 어린시절 1892년 김마리아는 황해도 장연 만석꾼 집안 딸만 셋인 집안에 셋째 딸로 태어난 김마리아는 아버지가 일찍 기독교로 개화를 하여 예수님의 어머니 이름인 마리아로 이름을 지었다고 한다. 3살 때 아버지와 13살 때 어머니가 돌아가셨지만 친척들의 도움으로 세 딸 모두 평등하게 교육을 받았고 모두 학업에 정진했던 개화된 집안이었.. 2021. 8. 16.
안시성 전투 속 양만춘 실존인물? (당 태종 고구려 원정 이유 및 영화 속 진실과 거짓) [310회] 645년 2월 당나라 20만 대군은 고구려 원정에 나선다. 당나라 2대 황제 태종 이세민이 이끈 최정예 부대로 고구려성을 차례로 함락시키고 후 안시성을 공격한다. 안시성은 쉽게 무너지지 않았고 645년 5월 당태종은 철군을 명령한다. 연개소문의 쿠데타 642년 고구려의 수도 장안성에서는 대대적인 열병식이 열렸다. 동부의 막리지였던 연개소문이 개최자였고 100여 명의 대신들이 열병식에 초대받았다. 한참 열병식이 고조되는 그때 연개소문의 부하들이 대신들을 공격해 죽인다. 대신 백여 명이 순식간에 살해되는 순간이었다. 연개소문은 그 길로 영류왕을 찾아가고 영류왕 마저 살해한 후 보장왕을 새 고구려 왕으로 선포한다. 연개소문의 쿠데타가 성공한 것이다. 그리고 스스로 대막리지에 오르게 된다. 삼국사기.. 2021. 8. 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