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0회]
645년 2월
당나라 20만 대군은 고구려 원정에 나선다. 당나라 2대 황제 태종 이세민이 이끈 최정예 부대로 고구려성을 차례로 함락시키고 후 안시성을 공격한다. 안시성은 쉽게 무너지지 않았고 645년 5월 당태종은 철군을 명령한다.
연개소문의 쿠데타
642년 고구려의 수도 장안성에서는 대대적인 열병식이 열렸다. 동부의 막리지였던 연개소문이 개최자였고 100여 명의 대신들이 열병식에 초대받았다. 한참 열병식이 고조되는 그때 연개소문의 부하들이 대신들을 공격해 죽인다. 대신 백여 명이 순식간에 살해되는 순간이었다. 연개소문은 그 길로 영류왕을 찾아가고 영류왕 마저 살해한 후 보장왕을 새 고구려 왕으로 선포한다. 연개소문의 쿠데타가 성공한 것이다. 그리고 스스로 대막리지에 오르게 된다. 삼국사기에 연개소문이 영류왕을 죽인 후 왕의 시신을 여러토막으로 잘라 도랑에 버렸다고 기록되어 있다.
당 태종의 고구려 원정 배경
당시 연개소문은 나이가 30대 전반으로 추정되는데 대신과 왕을 죽인것으로 추측하건데 고구려 정계 내 갈등구조가 연개소문의 쿠데타를 유발했을 가능성이 크지만 본질은 당시 연개소문의 집안은 최고의 권력을 가진 가문이었고 영류왕이 이를 견제하려고 했었기 때문에 자신의 가문의 권력 유지를 위한 쿠데타였다.
연개소문의 쿠데타가 있은지 3년 뒤 645년에 연개소문의 쿠데타를 핑계삼아 당에서 20만 대군을 이끌고 고구려를 원정을 나서게 된다.
당 태종 (이세민 598년생)
당 태종은 당나라 고조 이연의 둘째 아들로 자신의 왕위를 물려받지 못하자 형제를 살해하고 아버지를 감금 후 스스로 황제의 즉위한다. 이로 인해 왕의 정통성이 약했기 때문에 그의 기록은 과장이 많은 것으로 추측된다. 예를 들어 병사들이 흙을 지어 나르는 모습을 보고 당태종은 무거운 흙더미를 나누어 말해주고 갔다는 내용이 자치통감 중에 있다. 또한 포로로 삼은 고구려 병사들을 모두 집으로 되돌려 보냈다는 내용이 있고 고구려 백암성의 주민들에게 자애로운 덕을 베풀었다는 내용도 있다.
이 시기에 나온 책으로 '정관정요'가 있다. 서양에 마키아벨리가 있다면 동양에는 '정관정요'가 있다고 하는데 당태종과 신하들의 정치 문답을 정리한 책으로 당 태종의 통치술, 인재 활용법 등을 담고 있다. 당태종은 630년에 돌궐을 항복시키고 토욕혼->고창을 정복하면서 고구려만 정복하면 황제, 천칸, 태왕의 칭호를 모두 얻는 것이었다.
요동성 함락
645년 5월 10일 요동에 도착한 당 태종 16만 본군은 최신 공성무기와 거센 남풍을 이용해 화공을 펼쳤다. 밤낮없는 전투였다. 이 전투로 고구려군은 1만여 명이 전사한다. 고구려가 요동을 차지하고 한번도 무너진 적이 없던 요동성이 645년 5월 17일 단 보름 만에 함락되었다. (수 양제의 100만 대군에도 3개월을 버티던 요동성이 당 태종 군대에게 15일 만에 함락된 것이다)
요동성의 승리요인은 요동성 주변의 신성, 건안성 등 주변 고구려성을 후원하지 못하도록 주변성을 공격한 후 요동성을 점령했다. 또한 당 테종은 이전부터 계속 전쟁을 해왔던 터라 실전에 강한 장수들이 많이 포진되어 있었다.
백암성 전투
요동성을 함락 후 그 다음 백암성 전투에서 백암성 성주로부터 바로 항복을 받아낸 후 안시성으로 진격을 했다.
영화 속 <안시성> 전투 진실 혹은 거짓?
▶영화 속 조인성이 맡은 역으로 안시성 성주 '양만춘'은 역사기록에 존재하지 않고 안시성주라고만 기록에 언급되어 있다. 양만춘이란 이름은 명나라 때 웅대목이 지은 소설<당서지전총속연의>에서 안시성주를 양만춘으로 가상 명명했다. 이 소설이 17세기 조선 지식인들에게 전해지면서 널리 알려진 이름이 양만춘(중국식 이름이다)이 된다. 안시성 전투를 승리로 이끈 일등공신이지만 안시성주로 밖에 기록이 없는 것이 안타깝다.
▶영화 안시성 속 설현이 여전사로 나오는 장면이 있지만 안시성 전투에 여성 군대 관련 기록은 없다.
▶토산을 쌓는 장면은 진실이다. 안시성에서 3개월 전투 중 2달을 토산을 쌓는데 보냈다. 50만명이 60일 동안 토산을 쌓은 것은 연간 인원수로 하루에 8~9천명 정도는 토산을 쌓고 나머지는 전투에 임했다. 이 토산이 무너지게 되지만 무너진 이유는 기록에 존재하지 않는다. 그러나 적어도 고구려군은 토산이 붕괴되었을때 빠르게 역습해서 성공한다.
▶ 영화 속에 당태종이 화살을 맞아 눈 부상을 입는 장면도 역사기록에는 없는 내용이지만 고려말에 '이색' 의<정관음유림관작> 이란 시에 당태종이 화살을 맞아 눈을 잃었다는 내용이 있어 요동지역에서 전승되는 이야기로 추정한다.
이에 당 태종은 철군을 결정한다. 겨울철이 다가오고 있었고 군량미도 고갈되어 가는 상황에서 설연타에서 심상치 않은 동향이 파악되고 있기 때문이다.
중국측 안시성 전투 마지막 장면 기록 내용
중국측 기록의 안시성 전투의 마지막 장면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과 다르다. 안시성주가 성에 올라가서 절하며 작별 인사를 하였고 황제는 그가 성을 굳게 지킨 것을 가상히 여겨 비단 백 필을 하사하면서 자기 임금을 섬긴 것을 격려하였다 라는 내용이 있지만 이 내용은 사실이 아닌 것이다. 중국의 당 태종을 돋보이게 하기 위한 당나라의 기록이다.
몽롱탑 설화
645년 고구려를 침공한 후 패배하고 안시성으로 도주한다. 당 태종은 적군인 고구려 연개소문에게 쫓기게 되고 이곳까지 쫓겨온 당 태종은 우물 하나를 발견하게 되고 그 우물 안으로 급하게 뛰어들었다.
그 위로 거미 여러마리가 거미줄을 쳐서 입구를 가렸고 연개소문은 거미줄이 있는 것을 보고 그냥 가버렸다. 연개소문이 떠난 후 당 태종은 살아남아 돌아갔고 그 자리에 보탑을 세운 후 몽롱탑이라고 이름지었다.
당 태종의 죽음
당 태종은 돌아간 후에도 다시 고구려를 공격할 계획을 세웠고 이를 신하들이 말리기는 했으나 649년에 고구려 원정 준비를 하던 당 태종은 4년도 안돼 질병으로 죽음으로써 계획이 무산됐다. 당 태종 사망 원인에 대한 직접적인 기록은 없지만 고구려 원정에 실패한 영향이 크지 않을까 추측한다.
중국의 두 통일 왕조 수나라, 당나라도 정복하지 못한 고구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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