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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V 방송 리뷰/역사저널 그날

고구려 무기들 (삭, 등자, 철제갑옷 등등..)

by 365 ^^ 2021. 8.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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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개토대왕은 우리 역사상 최고의 정복 군주로 기억되고 있다. 이런 광개토대왕의 비밀병기가 있었는데 그것은 철제갑옷으로 무장한 철갑기병이었다.

 

 

▣ 고구려 기병대의 찰갑옷 

경주 쪽샘지구에서 발견된 찰갑옷 / 말을 덮었던 찰갑 위에 사람(중장기병)이 입던 찰갑옷이 최초로 원형그대로 발견되었다. 전문가들은 이 갑옷이 고구려 광개토대왕이 남진때 영향을 받아 제작된 찰갑이라고 추정한다. 
작은 철편 조각을 일일이 가죽끈으로 엮어 상의 하나에만 1300여개 이상의 철편이 필요하다. 찰갑옷은 철편들이 접히기 때문에 몸을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는 기대 이상의 활동성이 장점이다. 

 

찰갑옷의 뛰어난 방어력 

고구려 찰갑옷의 강도시험 /고대 가야지역의 판갑옷은 큰 철판 조각을 이어붙인 것으로 탄력이 없어 화살이 모두 갑옷을 뚫고 관통하고 빼내기도 어려운데 고구려의 찰갑옷은 가죽끈으로 연결된 화살이 안으로 밀려들어가면서 충격을 흡수해 유연하게 화살을 뜅겨낸다.  화살을 정통으로 맞아도 철편들이 휘어질뿐 부러지지 않는다. 

 

▣  중장기병 모습

고구려 중장기병 재현모습 
이렇게 찰갑으로 말을 무장을 시키고 개(덮을 개)마기병이라고 불리기도 했다.   찰갑옷을 장점은 전투 중에 갑옷이 손상되도 다른 철편으로 손쉽게 수선을 할수가 있다. 

 

▣   주요 무기는 ‘삭’ 

 철갑기병의 주 무기인 긴 병기창/ 말에서 탄다고 해서 마삭이라고도 부르는데 실제 실이는 5m, 무게는 9kg로 상당히 긴 창이었다. 자유롭게 휘두르기 보다는 말을 타고 적에게 충격을 주는 용도로 사용되던 무기

 

▣  등자 

4세기 중반 고구려 역사에 등장한 등자 , (로마제국은 8세쯤 등장) 말과 기병의 찰갑 무게는 상당했으나  등자로 인해  말을  탈때  두발로 디디는 기구) 덕분에 균형을  유지할수 있고 말을 타면서 설 수도 있고 활도 쏠수있었다. 조준이 필요했던 활쏘기가 자유로웠다. 기원전 2세기경 흉노족이 사용한 초기   등자가   나오나 금속제   등자는   고구려와 선비족의 전쟁과정에서 확대되었다.   

 

수나라 무기들  

소차   =오늘날 정찰용  드론  

 

포차= 20~30m 정도 크기의 규모 여러 가닥의 줄을 한꺼번에 당겨 성에 돌을 투척하는 공격무기
운제  =긴 사다리를 이용 성벽에 올라 근접전을 시도하는 무기 

   

▣  고구려 방어 무기  

 

요동성은 외성, 내성의 이중구조였고 성 주변에 해자(성둘레에 만든 인공 못) 파서 적의 침입을 쉽지 않았고 성벽 위에는 몸을 숨기고 공격 가능한 성가퀴가 있었고 치(방형으로 돌출된 구조물)로 정면은 물론 측면 공격도 가능했다.  

 

해자 

 

철질려(마름)

 

 적군이나 말이 밟아 큰 부상을 입게 하는 것이 목적으로 이것을 해자에 넣어 놓았다. 해자가 무서운 이유는 물속에 뭐가 있는지 모르기 때문이다. 

쇠뇌

쇠뇌  온몸의 힘을 써서 장전하는   쇠뇌는   일반 활에 비해 파괴력이 높다. (중세 유럽에서는 파괴력이 높아 악마의 무기라 불렀다 . )   수  중국쪽에서   개발된 무기지만 수의 기술로 수를 공격한 고구려인들이었다.   

 

각궁

고구려의 활은 물소의 뿔을 넣어 만든 각궁이었다 .평소에 둥글게 휘어서 보관한다.
각궁의 파괴력 함석판 5장을 그대로 뚫고 갔다. 
고구려 안악 3호분 대행렬도에 고구려의 모든 군사가 그려져 있다. 

철갑기병을 보조할 다양한 병종을 운용했는데 그 중에 하나가 갑옷을 입지 않은 말을 타고 활을 쏘는 경기병이었고,  철갑옷과 방패로 무장한 중장보병, 도끼를 든 부월수, 활을 든 궁수등의 다양한 병종을 활용했다.  궁수가 원거리 사격을 가하고 중장기병이 적의 진을 돌파해 북방에서 공격하고 이때 보병이 돌진해서 앞을 공격한다. 진이 깨져서 철갑기병과 보병에게 둘러쌓인 적은 전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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