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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렬왕 제국대장 공주 (고려와 몽골 황실의 최초의 혼인)
충선왕의 탄생
충렬왕과 제국대장공주 사이의 아들 왕원=몽골식 이름 이질부카가 탄생한다. 충렬왕의 뒤를 이른 아들 고려 제 26대 충선왕이다. 우리나라에서 보기 드문 혼혈 왕자이다.
충선왕은 1292년 18세부터 24세까지 원에서 숙위생활을 한다. 이때가 원 쿠빌라이의 전성기로 어릴때 원의 전성기를 목격했던 왕이다. 쿠빌라이 등 원 황실은 고려 세자 왕원(충선왕)을 총애했다. 이질부카라는 이름도 원 태자비가 직접 지어준 것이다.
계국대장공주와 혼인
고려의 세자 왕원은 몽골 황실 직계 여성인 쿠빌라이의 직계 아들 친킴이 황태자로 책봉됐다가 요절했는데 친킴의 맏아들의 딸(친킴의 손녀) 부다시리= 계국대장공주와 결혼한다. 이것이 의미하는 것은 고려 세자 왕원=쿠빌라이의 외손자+ 몽골 황실 부마 2가지를 동시에 갖게 된 것이다.
원 성종(테무르) 즉위
몽골 제국의 최고 전성기를 이끈 5대 칸 쿠빌라이가 1294년 79세의 나이로 사망한다. 쿠빌라이 사망 전 그의 아들이 모두 요절했기 때문에 몽골제국의 6대 칸으로 쿠빌라이의 손자 테무르 원 성종이 즉위하게 된다.
원 성종은 칭기즈칸 후손들의 내분을 정리하고 일본 원정도 중지 선언을 하면서 국내외적으로 평화를 이룬 황제이다. 원 성종은 즉위 후 고려 세자 왕원을 고려로 돌려보내는데 고려 최고 정치 기구 도첨의사사의 최고 관직 '판사' 보다 더 높은 관직인 '영사'를 신설해 세자 왕원을 임명한다.
영사는 명예직이였으나 이는 충렬왕의 자리를 위협했다. 충렬왕의 든든한 후원자였던 쿠빌라이가 사망하고 3년 후 충렬왕 부인 제국대장공주 또한 사망하면서 원 황실과의 끈이 모두 끊어지게 된 것이다.
이때 충렬왕은 외교적 실리를 취하겠다는 목적으로 조카 (원 성종)에게 몇가지 요구를 한다. 삼별초 항쟁 이후 원이 지배하던 탐라 제주를 돌려달라, 요동 지방에 살고 있는 고려인 귀환, 원 최고 관직인 태사 중서령을 요구했다.
충선왕 즉위
불편한 상황에 불편한 요구까지 하는 충렬왕을 보고 원 성종은 고려의 왕을 바꾸기로 결심한다. 이에 원 성종은 시나리오를 실행한다. 제국대장공주가 죽자 공주의 죽음 원인을 충렬왕이 총애했던 '무비'때문이라하여 그를 처형한다. 또한 충렬왕의 수족들을 제거 귀향을 보낸다. 당시 63세였던 충렬왕은 이에 아들 충선왕에게 양위를 해버린다. 그렇게 1298년 고려 26대 충선왕이 24세로 즉위한다.
충선왕 폐위 (조비사건)
그러나 꽃길만 걸을것 같았던 충선왕은 8개월 만에 폐위당한다. 충선왕의 폐위는 '조비사건'이었다. 몽골 계국대장공주와 결혼한 충선왕은 이미 4명의 왕비가 있었고 충선왕은 그 중에 조비를 가장 총애했다. 이에 계국대장공주는 이를 질투하여 원 태후에게 고자질을 하고 이에 조비의 일가족은 모두 원으로 압송되는 것은 물론 충선왕의 옥쇠를 몰수해 충렬왕에게 줘버린다.
충선왕 폐위 이유
충선왕은 즉위 후 아버지 충렬왕의 측근을 정치적으로 부폐했다는 이유로 처형했다. 그리고 고려의 정치 제도를 개혁 시도했다. 문제는 이 모든 것을 원과 상의 없이 진행했던 것이다. 이것을 원에서 못마땅하게 여겨 폐위를 결정한 결정적 이유였던 것이다.
충선왕이 폐위된 후 원나라에서 10년 동안 머물게 된다. 1307년 원나라 수도 대도에서는 원 성종에게는 자신의 둘째 형이 죽은 뒤 형수를 아내로 맞이했다.
성종이 병으로 몸져눕자 기회를 놓치지 않고 실권을 장악 후 성종의 황후 불루간은 다기와 그의 둘째 아들을 유배를 보낸다. 다기의 첫째 아들은 이미 군대를 이끌고 멀리 나가 있던 상황이었고 원 성종과 블루간 사이에는 아들이 없었다. 그리고 1307년 원 성종은 사망한다.
충선왕의 몽골 황위 다툼 중재
이때부터 치열한 황위 쟁탈전이 벌어진다. 차기 칸으로 유력한 세명이 지목된다. 블루간 황후측의 성종 사촌 '아난다', 다른 두사람은 다기의 아들 '카이샨'과 '아유르바르와다'로 먼저 기선 제압을 했던 사람은 아유르바르와다로 아난다와 블루간 황후를 숙청한다. 그 후 형 카이샨과 황제자리를 두고 싸움이 날 뻔한 것을 고려의 충선왕이 이들을 중재를 해서 극적으로 타협이 되어 형 카이샨이 황제로 즉위하게 된다. 원 3대 황제 '무종' 몽골의 7대 칸이다.
충선왕 심양왕으로 책봉
이 공을 인정받아 충선왕은 고려 유민들이 많이 살고 있는 심양지역의 심양왕에 책봉된다. 당시의 심양은 지금의 심양보다 더 넓은 지역이다.
심양왕도 높은 지위인데 1308년 7월 고려 충렬왕이 죽자 고려의 왕으로 겸직을 하게 된다. 이때 충선왕은 권력의 원천인 원의 수도에 머물면서 신하들에게 교지를 전해 고려를 통치했다.
나중에 원 황실에서는 둘 중에 하나를 통치하기를 요구하자 뜻밖에도 고려왕을 포기한다. 대신 아들 충숙왕을 세우고 조종을 했다. 그러면서 원 대도에 머물며 원의 정치에도 개입을 했다.
원나라 분열
그리고 원나라는 무종의 시대가 열린다. 그러나 무종은 즉위 후 4년만에 31세로 갑자기 죽는다. 그리고 1311년 인종이 즉위한다. 형 무종 즉위 당시 동생 인종과 협상한 내용은 동생 인종을 황태자로 책봉하는 대신 자신의 아들이 그 다음 황위를 잇는 조건을 내건 형 무종과의 약속을 인종은 지키지 않는다. 그리고 자신의 아들에게 물려준다. 이에 무종의 독살설이 존재하기 했다. 이후 인종은 자신의 아들 영종에게 황위를 물려 주게 되지만 영종은 반대세력에 의해 암살당한다.
이렇게 무종~원의 마지막 황제 혜종까지 단 26년까지 황제가 7명이 바뀌게 된다. 정치적 분열이 심해지면서 원나라는 내리막길로 접어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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