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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V 방송 리뷰/벌거벗은 세계사

포데이 산코가 불러온 시에라리온 내전

by 365 ^^ 2022. 9.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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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에라리온 탄생과 드비어스 회사 슬로건 전세계 다이아몬드 붐 일으키다.

 

1960년 4월 27일 영국으로부터 독립을 맞이한 시에라리온은 영국 여왕을 국가 원수로 하는 영연방 자치국가로서 독립한다. 당시 영국은 해방노예뿐만 아니라 여러 부족장에게 권력을 나눠주었다. 이들은 후에도 영국과 긴밀한 관계를 맺고 이는 시에라리온의 반쪽짜리 독립을 가져왔다.  

 

다이아몬드 광산 국유화
그리고 71년에 초대 대통령으로 취임한 시아카 스티븐스 대통령은 일당 독재 국가로 만들고 스티븐 대통령이 취임 후 가장 먼저 한 일은 바로 다이아몬드 광산을 국유화한 것이다. 영국의 드비어스 자회사가 갖고 있던 나머지 광산마저 정부에 귀속시켰다. 그러나 다이아몬드로 벌어들인 수익은 국민들에게 돌아가지 않았다 . 다이아몬드로 는 정부의 관계자 몇명만 배를 불리는 꼴이 되었다.  

 

 

 

 

 

 

시에라리온의 별 

그리고 시에라리온에 다시 한번 다이아몬드 붐을 일으킨 사건이 발생한다. 1972년 2월 14일 코이두 지역 디민코 광산에서 무려 968.9 캐럿의 다이아몬드가 발견되었다.

 

시에라리온의 별



이것은 당시 세계에서 3번째로 컸던 다이아몬드로 시에라리온의 별이라고 불린다 . 이것은 약 250만 달러에 판매되었고 현재 가치 약 228억원에 육박하는 가격이었다. '시에라리온의 별' 때문에 스티븐스 대통령은 다이아몬드 생산에 더욱 박차를 가하게 된다. 

 

시에라리온의 별이라 불리는 다이아몬드


 

아래 표에서 볼수 있듯이 많은 양의 다이아몬드가 누군가에 의해 빼돌려지고 있었다. 이 시기에 약 1억 6천만 달러 이상의 다이아몬드를 암거래되었다. 

 

1970년~1980년 시에라리온 다이아몬드 생산량



 

포데이 산코와 RUF 

 

이때 부정부패에 찌든 정부를 몰아내겠다는 명분을 내세워 포데이 산코가 등장한다. 그는 1991년 무장투쟁 단체 RUF 를 조직했고 부패한 정권에 맞서 새로운 사회를 세우고자 젊은 학생들과 만들었던 혁명 단체이다. 

 

포데이 산코

그러나 포데이 산코의 목적은 부정부패 척결이 아니라 다이아몬드 광산을 차지하려는데 있었다. 그리고 이들에게 손을 내민 지도자들은 옆나라 라이베리아의 반군 지도자 찰스 테일러였다.  그도 다이아몬드 광산의 이익을 노린 것이었다.

 

혁명연합전선 RUF

 

시에라리온 내전 

 

그리고 1991년 3월 정부군과 반란군의 피의 내전이 시작되었다. 포데이 산코는 다이아몬드 생산지를 점령해 전쟁 자금을 쉽게 마련하고 라이베리아의 지원도 용이했던 카일라훈 보마루를 점령했고 정부군은 여전히 몇몇이 부정부패를 일삼고 있었고 군인들은 제대로 지원받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었다.

 

이에 반군과의 전쟁 대신 마을을 약탈하기 시작한다.  이들은 반군과 다를 바 없던 정부군을 당시 ‘소벨’ 이라고 이름 붙였다. 군인과 방문을 합쳐 낮에는 정부군 밤에는 반군이 라는 뜻으로 불리것이었다.  

 

쿠데타 성공 그러나.. 
정부군은 길어지는 내전에 대통령을 추방하기로 결심한다. 이때 쿠데타를 일으킨 6명의 군인은 쿠데타에 성공한다. 이때 쿠데타에 성공한 인물이 25살 대위 발렌타인 스트라서였다. 세계 최연소로 국가 원수에 오른 인물이다.

 

쿠데타에 성공한 인물이 25살 대위 발렌타인 스트라서

 

국민들은 희망을 가졌으나 스트라서 군사 정부의 행보 또한 이전 정부들과 다르지 않았다.  이때 시에라리온의 상황은 반군 RUF , 정부군 민병대 평화유지군 용병회사등 그야말로 아비규환의 상태였다.

 

포데이 산코의 선거 중단 작전

그리고 다시 새 정부를 뽑아야 한다는 목소리를 높이기 시작되었고 당시 부사령관이자 줄리어스 마다비오가 부패한 스트라서를 몰아내는데 성공한다.  이후 대통령 선거 계획을 발표하고 내전 후 처음으로 민주적인 선거가 열리게 된다.

 

 

이에 포데이 산코는 선거 중단 작전을 펼치게 되고 사람들을 모아놓고 도망가는 사람들은 무차별적으로 총을 난사했다. 그리고 반군 RUF에 의해 아무 죄 없는 주민들의 팔이 무참히 잘려나갔다. 사람들이 투표를 하지 못하도록 무차별적으로 손을 자르는 공포 작전이었다. 이렇게 반군에 의해 장애인이 된 인구만 약 2만 7천여명에 달했다.  

 

 

 반군 RUF는 무차별적 테러 그리고 소년병
반군 RUF는 무차별적 테러로 투표 당일까지 공포감을 조성했고 선거 후에도 그들은 마을을 습격하여 많은 사람들을 죽었다. 시에라리온 내전이 무자비한 전쟁으로 기억되는 것은 반군의 대부분이 어린 소년병들이였다. 초창기 반군 조직원은 대부분 청년 광부들이었다. 그러나 반군이 민간인을 무차별 학살하고 손발을 자르는 만행을 저지르자 그들이 등을 돌렸다. 

 

이때 포데이 산코는 모자란 병력을 채우기 위해 마을의 소년들을 납치해서 소년병을 만들었던 것이다. 이렇게 반군 RUF 병력의 80%는 7~14세 아동들이었다. 주입식 사상교육을 통해 전투원으로 세뇌시켰고 두려움을 잊게 하기 위해 반군은 아이들을 코카인 중독시켜 사람이 동물처럼 보였다고 한다. 11년의 내전동안 반군에 납치된 소년병은 무려 약 7000여명에 달했다.  

 

 

 

 

 

 

 

포데이 산코와 카바 대통령의 평화협정
1996년 2월 대통령 선거가 이뤄지고 내전 이후 첫 민선 대통령이 탄생한다. UN 변호사 출신 아흐마드 테잔 카바 대통령이었다. 이때 시에라리온 내전을 지켜만 보던 UN이 황당한 제안을 내놓는다. 평화를 위해서 포데이 산코를 새로운 정부에 참여시킬 것을 제안한 것이다. 오랜 내전으로. 나라의 근간이 흔들리는 상황이었기 때문에 국제사회의 지원을 받기 위해서. 1998년 11월. 코트디부아르 아비장에서 포데이 산코와 평화협정을 카바 대통령은 맺는다.

 

 

포데이 산코 체포 
그러나 산코는 협정을 어기면서 유엔의 무책임한 결정이 드러나게 되는 꼴이었다. 산코는 전쟁을 유지하면서 다이아몬드 광산을 차지하는 것이 더욱 이득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국제사회 국제사회 몰래 전쟁을 위해 무기를 밀매를 했지만 정부의 감청으로 드러나면서 1997년 3월 나이지리아 공항에서 탄약 밀수 혐의로 체포된다. 이후에 산코는 사형선고를 받게 되지만 그의 추종자들이 반란을 일으켜서 정부군과 팽팽하게 대립하게 된다.

 

생물 절멸 작전
그리고 이때 국제사회의 개입이 필요한 황당한 사건이 또 한번 발생한다. 체포된 포데이 산코를 탈옥시키려고 시도한 반군의 계획을 알고 정부군이 산코의 거처를 옮겨버리자 화가난 반군은 이른바 생물 절멸 작전으로 살아있는 것은 쥐새끼 1마리 남기지 않겠다며 1991년 반군 RUF 는 프리타운을 초토화 시킨다.

 

현 정부를 지지한 대가를 치러야 한다며 민간인들을 무차별 폭행, 방화, 강간. 하며 닥치는 데로 사람들의 손과 발을 잘라버렸다. 결국 십만명에 가까운 주민들이 집을 버리고 떠났고. 도시 건물은 모두 불에 타 무너졌다. 당시 이 작전으로 수천명의 민간인들이 목숨을 잃고 수천 명의 아동이 실종되었다.

 

포데이 산코 부통령 되다. 
국제사회는 다시한번 평화를 위해 포데이 산코와 평화 협정을 카바 정부에 요구했고 이에 1999년 7월 평화협정을 다시한번 하게 된다. 그러나 이 로메협정에서 포데이 산코를 부통령으로 임명하라는 황당한 조항이 포함된다. 그리고 포데이 산코는 부통령이 된다. 그리고 합법적으로 다이아몬드를 관리하게 된다. 그리고 차기 대통령까지 꿈꾼다. 결국 참을수 없었던 시민 3만명이 산코의 집에 몰려들어 시위를 했다.

 

 

 

 

 

 

 

포데이 산코의 죽음

정부군은 포데이 산코를 체포했고 유엔 안전보장 이사회는 2000년 시에라리온 특별법정을 세워서 포데이 산코와 찰스 테일러등을 기소했다. 반군의 지도부에게는 20~25년을 선고, 시에라리온 내전을 지원한 찰스 테일러 역시 50년 형, 포데이 산코는 판결을 앞두고 뇌출혈로 사망한다. 이로 인해 구심점을 잃은 반군 RUF는 세력이 약해졌고 마침내 2002년 11년의 내전이 끝이 났다.

 

 

킴벌리 프로세스
시에라리온은 다이아몬드로 인해 참혹한 비극을 겪었다. 이에 국제사회는 2003년 국제적인 협의체인 킴벌리 프로세스 를 만든다. 단군 또는 동맹국의 분쟁 자금을 위한 다이아몬드 원석 거래를 금지하고 다이아몬드 산업의 투명성과 감독을 강화하기 위한 체계이다. 원석이 유통과정 및 실제 노동환경 반영이 어려움을 극복해야 하는 필요성이 대두되었다. 

이를통해 다이아몬드로 인한 분쟁을 종식시키기 위해 다양한 캠페인이 벌어지고 있다. 내전 이후 선거를 통한 평화적인 정권교체와 경제성장, 자원 관리의 부패 근절등 다양한 노력이 이루어지고 있다. 그러나 여전히 국민들은 12~15시간 다이아몬드 채굴 노동에 시달리고 있고 노동의 대가는 약 8000리온으로 약 0.8 달러(약 천원) 을 받으며 고된 노동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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