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스만 제국의 커피는 어떻게 유럽에 퍼지게 되었나?
이후 커피가 제대로 퍼진 건 16c 술레이만 1세 집권기였다. 이 시기에 문화, 상업, 교역 발전과 함께 끊임없이 영토를 확장해 나갔다. 이 술탄이 노린 곳이 바로 영국을 포함한 유럽대륙이었다. 술레이만 1세 즉위 후 세르비아의 수도 베오그라드를 점령하면서 1522년 300 여 척의 해군과 10만의 육군을 동원해 지중해 해상권을 장악하며 더욱 강력한 나라로 발전하게 된다.
그의 다음 목표는 헝가리 왕국이었고 그는 5만여명의 군대와 직접 헝가리 원정을 시작 헝가리 남부 모하치 평원에서 대규모 전투를 벌이게 된다 . 이때 오스만 제국은 메흐테르라는 세계최초의 군악대를 조직했다.
메흐테르는 오스만 제국 최강 정예부대 예니체리의 군악대로 전주직전에 최전선에 배치되어 아군의 사기를 올리고 적군에게는 공포를 심어주기 충분했다. 그리고 두 나라의 전투 시간은 2시간 반만에 헝가리 왕국의 왕과 귀족들이 죽음을 맞이하게 된다.
그러나 전 합스부르크 제국의 수도이자 현 오스트리아의 수도인 빈은 오스만 제국을 막아낸 것이다. 빈 정복 실패 후 페르시아 , 아라비아 반도로 진출하면서 세력을 더욱 넓혀갔고 1566년 오스만제국은 대제국의 영토를 완성하게 된다. 아시아, 유럽 아프리카 북쪽까지 세 대륙에 걸쳐 영토를 확장하게 된다. 이때 대제국 오스만제국에서 크게 발전한 문화가 바로 커피문화이다.
오스만 제국의 특산품으로 자리잡은 커피
커피 유입 초기와 달리 귀족들이 즐기던 희귀품에서 흔한 음료가 된 커피였다. 술레이만 1세가 커피농사를 장려했기 때문이다. 1500년대 커피가 여러 아랍국가에 아주 비싸게 팔렸기 때문이다. 메카와 이집트의 카이로를 비롯해서 여러국가에서 인기를 얻으면서 커피콩에 대한 인기가 수요를 따라가지 못했다. 이 사실을 알게 된 술레이만 1세는 다른 농사를 짓던 땅도 커피나무 재배지로 바꿔 커피나무를 심도록 했다. 이때 오스만제국의 특산품으로 커피가 자리잡기 시작했다.
또 하나 카페도 유행을 해서 1554년 이스탄불에서 문을 연 오스만 최초의 카페는 고습스러운 인테리어로 단장했고 다양한 공연을 즐길수 있었던 카페이다. 토론과 공부까지 할수 있는 종합문화공간이었다. 카페의 인기가 많아지자 600개 이상의 카페가 개업을 했다.
카페 모카 어원
베네치아는 오스만 제국의 커피를 이 시기에 받아들였는데 농사지을 땅이 부족한 베네치아는 덕분에 무역이 발달했고 세계 곳곳곳을 누빈 베네치아 상인들은 지역과 종교를 가리지 않고 세계 곳곳을 누비면서 다녔다. 이런 베네치아 상인들의 눈에 비친 오스만 제국은 각나라의 문물과 돈이 밀려오는 황금 상권이었다.
특히 오스만 제국은 국익을 위해 자유로운 무역 거래가 열려있었기 때문에 베네치아 상인들은 자유롭게 오스만 제국을 다니던 베네치아 상인들은 커피의 맛을 알게 되고 오스만 제국의 커피나무를 대량으로 구입하기 위해 예멘으로 향했고 이때 커피를 수출하던 대표 항구가 모카 항구였기 때문에 이슬람 상인들은 커피콩을 모카 항구에서 구입했다. 당시에 모카=커피 의 대명사처럼 받아들여졌다. 모카빵 또는 모카포트가 널리 사용되고 있는 것도 예멘의 모카 항구에서 유래된 단어이다.
로스팅의 시초
커피콩이 유행하면서 커피나무를 재배하려는 사람들이 나타난 것이다. 이런 외국의 커피나무 재배를 막고자 했다는 오스만 제국의 상인들은 커피 열매의 싹이 틔지 않도록 하기 위해 수출할때 커피콩을 말리거나 뜨거운 물에 익혔다. 이 과정이 발전된 것이 로스팅의 시초가 된 것이다. 오스만 제국은 이 과정을 거쳐 커피를 독점했기 때문에 베네치아 상인들은 예멘에서 커피를 수입할 수 밖에 없었고 베네치아 상인을 통해 유럽으로 커피가 전파되었다.
유럽 최초의 카페
기록에 따르면 17세치 초에 커피를 베네치아 사람들이 즐기고 있었다. 이때도 베네치아 사람들도 모두 오스만식으로 커피를 즐기고 있었고 커피의 인기에 힘입어 유럽 최초의 카페가 개업되었다. 1720년에 문을 연 카페 플로리안에 유럽의 유명인사들이 몰려들었다. 괴테, 쇼팽, 루소, 나폴레옹이 이곳에서 커피를 마셨다. 바람둥이로 유명한 카사노바도 단골 카페였다.
이탈리아 커피 전파
베네치아에서 유럽으로 커피가 퍼져나가는데 중요한 역할을 했던 이탈리아의 로마가 있다. 당시 로마에는 커피가 사탄의 음료라고 소문이 퍼지고 있었는데 당시 교황 클레멘스 8세에게 커피 마시는것을 금지시켜야 한다고 말했고 커피를 시음했던 교황은 커피맛에 반하고 말았다. 이에 교황은 악마의 커피라는 인식을 없애기 위해 교황은 커피에 세례를 내린 것이다. 이렇게 로마에서 커피가 공인되면서 유럽에 받아들여진 커피는 가톨릭의 중심지 로마에서 인기가 뜨거웠다.
이탈리아를 시작으로 유럽에서도 커피에 관심을 가지게 된다. 그 중요한 시대가 유럽에서 시작된 대항해시대였다. 1600년대 중반 네덜란드 상인이 커피를 수입하기 시작했고 이후 정기적으로 계속 커피를 거래했다. 영국에서도 커피는 인기끌어서 직접 예멘에서 수입하기 시작했다. 1700년대 초 영국의 무역선이 한 번에 약 1300T의 커피 원두를 수입했다. 당시 영국에서는 커피 1g=은 1g과 같을 정도로 비쌌으나 그들은 개의치 않앗다.
프랑스 커피 전파
프랑스로 커피가 전파되었는데 메흐메트 4세는 프랑스로 대사를 보냈고 오스만 제국의 대사는 호의를 얻기 위해 달달한 커피에 로콤을 곁들이게 했고 이후에 프랑스에서도 널리 유행하게 되었다 . 이렇게 유럽각국은 오스만제국의 커피를 받아들였고 그들만의 커피 맛을 창조하며 자부심을 가지고 있다.
프랑스 카페문화 발달 이유와 프랑스 최초의 카페,가장 오래된 카페는?
오스만 제국의 쇠퇴
오스만 제국은 영토와 군사력뿐만 아니라 커피로 문화적 영향력을 키웠는데 커피의 주도권마져 빼앗기는 사건이 발생한다. 당시 오스만 제국은 외부적으로는 건재한 듯 보였지만 내부적으로는 약해져 가고 있었다. 귀족과 관료의 힘이 강해지면서 술탄의 왕권이 약해졌기 때문에 또한 오스만 제국의 새로운 실권자 카라 무스타파 파샤가 있었다는데 오스만 제국의 위상을 세우려 했던 무스타파는 전쟁을 선택했고 1683년 7월 14일 군대를 이끌고 빈으로 향했다.
2차 빈 전쟁
추정치 20~30만 명의 군대를 이끌고 무스타파는 출정을 했고 빈의 주둔군은 겨우 약 1200~2000명 정도로 빈약했으며 빈의 황제는 오스만 제국의 황제가 쳐들어 온다는 소식에 가족들과 이미 피난을 떠난 상태였다. 빈이 함락되는 것은 시간문제였으나 무스타파는 총력전보다 장기전을 선택하면서 실수를 하게 된다. 부유한 도시였던 빈을 고스란히 차지하기 위한 선택이었다. 약 60일동안 성을 포위하고 있었다. 합스부르크 황제는 유럽국가들에게 도움을 청했고 여러 유럽 국가들이 빈을 지키기 위해 합세했고 강철 갑옷을 입은 기병(윙드 후사르) 의 폴란드 기병은 무서운 기세로 오스만 제국 군대를 압박했다. 이에 오스만 제국의 빈 전쟁은 패배로 막을 내렸다.
비엔나 커피의 시초
이 2차 빈 전투 이후 빈에 커피가 퍼지게 된다. 이유는 수십만 명의 오스만 군대가 급하게 퇴각하며 성주변에 많은 양의 커피 원두를 두고 갔고 빈의 병사 중 한명이던 콜시츠키가 이 커피원두를 가지고 빈에 최초의 커피 카페를 열었다는 설이 있다.
오스트리아에 전해졌던 오스만식 커피였다. 그러나 오스트리아 사람들 입맛에 맞지 않았던 오스만식 커피를 커피 가루를 걸러내고 크림과 꿀을 넣어 만든 커피를 팔기 시작했고 오스트리아 사람들은 매료시켜 오스트리아 전역으로 퍼지게 되면서 비엔나커피의 시초가 되었다.
오스만 제국은 빈 전투 패배로 영토를 조금씩 빼앗기기 시작한다. 헝가리와 발칸반도 일대를 오스트리아에 에게섬들을 베네치아에 , 우크라이나 일부영토를 폴란드에 주고, 흑해연안의 일부를 러시아에 넘겨주게 되었다 .그렇게 오스만 제국은 유럽의 환자라 불리며 내리막길을 걷게되었다.
오스만제국의 커피 주도권 상실
오스만제국이 약화되면서 세계를 주름잡던 커피 장악력도 점차 잃어가게 된다. 그 후 커피는 유럽의 여러나라에서 인기를 얻게 되면서 이들은 직접 커피를 생산하려고 했고 네덜란드 상인이 예멘에서 커피 나무를 빼내는데 성공하게 된다. 이 커피나무를 네덜란드의 식민지였던 자바, 자카르타에서 재배하게 된다.
또 다른 설은 프랑스의 장교가 커피나무를 얻어 서인도 제도에 커피나무를 심게 되고 1777년에는 약 2천만 그루의 커피나무를 재배하게 된다. 이 묘목은 점차 전 세계로 퍼져 아이티, 산타도밍고등 여러곳으로 옮겨지다가 브라질등의 중남미 지역으로 확산되었다. 현재 아라비카 품종은 전 세계 커피의 약 70%를 차지하고 있다.
적도 근처의 아열대 기후에 커피 재배지가 있어서 이것을 커피 밸트라고 부른다. 케냐, 콜롬비아, 과테말라, 자바 등 유명한 커피 원산지들은 모두 예멘에서 나온 아라비카 품종의 커피들로 커피 벨트 위치에 있다. 이렇게 커피는 오스만제국에서 유럽과 신대륙으로 이동한 것이다.
아메리카노 미국 커피
유럽에서 미국으로 이동하게 되고 미국식 아메리카노로 재탄생하게 된다. 아메리카노의 뜻은 미국인들처럼이란 뜻이다. 미국식 커피는 체인점을 통해 전 세계로 퍼지게 되고 현재 우리나라에서도 큰 사랑을 받는 아메리카노이다.
오스만제국은 유럽에서 600년간 대제국을 유지한 나라였으나 한국에 잘 알려지지 않은 역사이다. 커피 또한 잘 아려지지 않은 역사의 한 페이지이다. 커피는 유럽이나 미국의 문화로 알고 있지만 사실 커피를 세계에 퍼뜨린 것은 오스만제국 이슬람 문화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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