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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V 방송 리뷰/선녀들

흑금성 박채서 스파이 영화 <공작>의 주인공

by 365 ^^ 2021. 5. 24.

스파이 흑금성 이야기 

 

세계대전 이후 냉전의 시대로 접어들면서 정보기관의 역할이 커지게 된다. 그로 인해 스파이의 역할이 중요하게 되는데 1993년 북한의 핵 개발 문제로 한반도 위기가 고조됐다가 2005년 남북정상회담 후 화해 무드가 조성된다. 

 

영화 '공작' 은 실화를 바탕으로 한 영화로 흑금성의 탄생 배경이 된다. 1990년 14대 대통령 김영삼 정부 시절로 북한의 핵확산금지 조약 탈퇴 선으로 1차 북핵 위기가 있었고 국제 원자력 기구로부터 즉시 탈퇴했던 북한이었다.  북한의 핵 보유 여부를 파악하기 위해 당시 북한의  최고위 측만 아는 기밀 사항을 빼내기 위해  북한이 믿을 수 있는 사람이 필요했고 이러한 역할을 위해 만들어진 스파이가 흑금성이었다.

 

 

흑금성 박채서는 3군 사관학교를 졸업한 군인으로 902정보부대 국군 정보사령부에서 근무했다. 군 생활 당시 미군과 합동으로 북핵 관련 조사를 진행해 결국 핵무기 개발에 관련된 정보를 입수하게 된다. 그러나 알아낸 정보를 한국과 공유하지 않은 미국을 보면서 한국만의 독자적인 대북 정보망 구축이 필요하다는 문제의식을 갖게 된다. 

 

영화 공작의 주인공 흑금성 박채서
영화 공작의 주인공 흑금성 박채서

 

1992년 한중수교가 이루어지면서 우리나라의 기업인들이 중국에 진출을 많이 하게 된다. 이때 흑금성은 중국산 농산물을 북한으로 가져가 포장지만 바꿔 한국으로 수출해 북한 고위급 인사 김일성의 사위 정성택과 접촉하게 된다. (2013년에 실각하며 처형됐다) 김정은 집권 초기까지 항상 권력의 핵심이었던 장성택이었다.

 

김일성 사위 장성택김일성 사위 장성택
김일성 사위 장성택

이때 박채서의 공작 활동을 안기부가 눈여겨보다가 1994년에 안기부 소속으로 군인이 아닌 스파이로서 암호명 흑금성으로 활동을 하기 시작한다.

 

북한을 속이기 위해 박채서는 신분 세탁을 시작한다. 능력있지만 한국에서 버림받은 군인으로 위장하기 위해 소령으로 불명예제대하고 각종 사기 행위로 전과자가 되는 등 북한의 관심을 끌기 위한  철저하게 망가진 모습을 연출 설계하며 이런 과정은 철저히 극소수만이 아는 기밀 사항으로 진행이 된다.  

 

당시 김영삼 정부의 핵심 실세였던 권영해 안기부장이 직접 지휘하고 극소수만이 아는 스파이 흑금성이 만들어진다. 심지어 자신의 암호명이 흑금성이었다는 것을 박채서도 모르고 있었다.

 

당시 김영삼 정부의 핵심 실세 권영해 안기부장
당시 김영삼 정부의 핵심 실세 권영해 안기부장

 

결국 잘 짜여진 대본 덕분에 북한은 박채서에게 관심을 보이고 북한 고위층 침투를 위한 계획은 순조롭게 진행이 된다. 드디어 북한은 박채서에게 접촉을 시도한다. 

 

그렇다면 박채서 북한에서 어떤 활동을 했을까? 그렇게 박채서는 북한에서 ‘리철’이라는 사람을 만난다. 

 

영화 &lt;공작&gt; 리명운의 모티브가 된 인물
영화 <공작> 리명운의 모티브가 된 인물

 

리철은 북한의 해외 자본 유치를 담당했던 인물로 불한의 실세 중의 실세였다. 그렇게 박채서는 대북 사업가로 변신한다.

북한의 해외자본 유치를 담당한 심의처장 리철
북한의 해외자본 유치를 담당한 심의처장 리철

 

박채서는 자신을 ‘아자커뮤니케이션’ 광고회사의 정보로 자신을 소개한다. 그리고 리철과 협상을 진행하던 중 창의적이고 솔깃한 제안을 북한의 제시한다. 북한에서 한국 기업의 광고 촬영을 하자고 제안을 한 것이다. 결국 북한은 광고를 촬영하기로 합의하게 된다. 이렇게 흑금성은 사업을 빌미로 수차례 북한을 오갔으며 이를 통해 북한 내 공작 활동의 기회를 잡게 된다. 

 

위장 포섭된 상태로 북한의 신뢰를 쌓아가던 어느 날 1997년 6월 평양으로가서 결국  김정일을 만나기까지 한다. 그 자리에서 김정일은 광고사업을 격려한다.     

 

 

 

 

 

 

동시에 김정일 일가족의 골동품 처분까지 맡으면 북한으로부터 신임을 얻게 된다. 김정일과의 재산을 처분해 주는 역할을 맡게 된 것은 북한의 신뢰도가 높아졌다는 것이고 신뢰할 수 있는 동업자가 되었다는 뜻이다. 그러나 이러한 신임을 얻기까지는 끊임없는 의심과 시험이 있었다. 그중에 6.25 전쟁이 남침인지 북침인지 묻는 질문을 던지고 박채서는

 

6.25 전쟁이 남침이고 북침이고 그게 뭐가 중요합니까?  6.25 전쟁은 한반도 통일 전쟁 아니오? 당신들이 한반도를 통일하려고 했으면 그건 (북한의) 남침아니겠소 라고 대답했다.  

 

영화 &lt;공작&gt; 속 장면
영화 <공작> 속 장면

한 달 후 북한 보위부 관계자가 들려준 말은 오히려 눈치 보지 않는 대답이기에 위기를 모면했다고 한다.  그러나 흑금성에게 개인적인 위기가 찾아온다.

 

1997년 말 ~1998년 남북 사이에 심각한 기류가 흐른다.  14대 대통령 김영삼 대통령이 퇴임을 하고 15대 김대중 정권이 들어서는 최초의 평화적 정권 교체였다. 1997년 제15대 대통령 선거를 앞둔 어느 날 북한이 대선에 개입하려 함을 알게 된 흑금성은 북한의 대선 개입만은 막아야 한다고 생각해 대통령 후보 측에 사실을 알리고 북풍에 대비하라는 조언까지 한다. 

 

김대중 정권으로 교체된 상태에서 이전 정부의 잘못을 수사하기 시작했고 그중에 하나가 북풍 조작 문제를 파헤치게 된다. 그때 충격적인 보도가 나오게 된다. 1998년 3월 19일 신문에 스파이 흑금성의 얼굴이 공개되어 버린 것이다.

 

신문에 얼굴이 공개된 흑금성
얼굴이 공개된 흑금성

이른바 ‘ 이대성 파일 사건’으로 김영삼 대통령 집권 당시 주요 인물이었던 이대성이 자신들에 대해서 대선 개입 북풍조작 관련 수사를 하자 그를 막으려는 의도로 정권이 교체된 새로운 정부의 비밀공작 파일 를 제작해 보내게 된다. 이 과정에서 흑금성 관련 문서가 언론에 유출됐고 그렇게 전국의 얼굴까지 공개된다. 흑금성은 더 이상 스파이를 할 수가 없었고 안기부 내에서도 일을 할 수가 없게 된다.

 

또 다른 문제는 북한에서도 흑금성과 관련된 북한의 고위 간부들이 대거 숙청이 된다. 이렇게 신분이 공개되고 절체절명의 위기를 맞게 된다. 한 순간의 민간인이 된 그는 어떠한 보호도 받을 수가 없었다.

 

 

 

북한에서도 그의 정체를 알게 되면서 흑금성의 가족까지 위험에 빠지는 상황이 되자 박채서 가족을 보호하기 위해 북한의 리철과 접촉을 시도한 후 그동안에 싸운 신뢰를 바탕으로 북한은 박채서의 가족은 건드리지 않겠다고 약속을 한다.그렇게 자신과 가족이 안전을 확보한다. 그리고 이후 정권에서도 박채서는 북한과 그동안에 싸운 자신만의 독자적인 라인도의 구축 되어 있고 그 동안에 역량을 인정받아 대북 공직원은 아니지만  암묵적으로  특사 같은 역할을 하면서 남북 관계에 도움을 주게 된다.

 

개성의 골프장 건설 사업 계획을 기획하고 이산가족 상봉을 추진하는 등 예 활동들을 많이 했다 박채서의 또 다른 대북관계 남북 관계 활동으로 2005 년도에 화제의 중심에 있었던 휴대폰 전화 애니콜 광고가 있다. 북한에 무용수 조명애와 나만에 가수 이효리가 함께 광고를 찍은  전 세계적으로 화제가 됐던 그 광고 성사도 흑금성이 있었다. 

 

이효리 북한 무용수 조명애와의 핸드폰 광고
이효리 북한 무용수 조명애와의 핸드폰 광고

2005년 남북 합작  최초 실제 광고 

 

그러나 민간인 신분으로 북한과 접촉을 하게 되면서 국가보안법에 위배가 되면서  2010년 체포되어 6년형 선고를 받는다. 그 후에 만기 출소했다. 

 

2010년 체포된 박채서 구속 뉴스2010년 체포된 박채서 구속
2010년 체포된 박채서 구속

 

흑금성은 자신이 했던 스파이 활동이 정권이 바뀌면서 보안법 위반으로 간첩으로 취급받는 것에 대한 억울함을 호소하기도 했다. 정세의 변화에 따라 흑금성의 삶이 달라졌다. 

 

[선녀들 마스터 5회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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