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인도양 한 가운데서 우리나라의 삼호 주얼리호가 소말리아 해적에게 납치되는 사건이 벌어진다. 우리나라에도 소말리아 해적이 크게 알려진 사건이 발생한다.
삼호 주얼리호가 화물을 싣고 아랍에미리트에서 스리랑카로 가는 도중 소말리아 해적을 만나게 되고 선장을 협박해 소말리아 본거지로 끌고 가려했다.
이때 신고를 받은 한국 해군 청해부대가 출동하게 된다. 작전을 시행하는 것을 한국선원들에게 알리기 위해 공용으로 사용하는 채널을 통해 한국말로 작전 시행을 알렸고 안전구역으로 대피하거나 외부로 나오지 말라고 몇번을 얘기했고 석해균 선장은 우리의 최영함이 도착할때까지 최대한 시간을 끌었다.
해적들은 속도를 올리라고 다그쳤으나 이런 저런 핑계로 속도를 늦주었고 배의 방향을 틀어 항로를 변경하면서 이틀정도 정상적으로 내려갈때 최영함이 도착했다. 현지시간 17일 야간에 납치선박을 확인하게 되었다. 청해부대의 '최영함'을 출격시켰으나 첫번째 작전은 해적들의 강력한 저항으로 실패했다.
아덴만 여명작전
2011년 1월 21일날 새벽 4시58분 두번째 작전에 돌입한다. 청해부대의 작전 아덴만 여명작전이다. 작전지역은 해적들의 본거지에서 약 1,222KM 떨어진 곳으로 아덴만 여명시간에 맞춰 이루어졌다.
UDT 고속정 3척에 특수전 요원 20명이 나눠타고 선미로 접근 구출에 돌입했다.
새벽 5시 40분 최영함과 헬기가 위협사격으로 해적들이 혼을 빼놓는 사이에 엄호 사격을 한다.
아침 6시 15분 삼호주얼리호 갑판에 안착
아침 6시 45분 선원 13명을 먼저 구출
Ak소총과 기관총으로 중무장한 해적들이 격열히 저항했으나 해적 8명을 사살, 5명을 생포했다.
아침 9시 56분 8명을 추가 구출하면 5시간 만에 작전 종료
해적들에게 납치되었던 한국인 8명을 포함한 선원 21명은 이 작전으로 모두 구출되었다. 해적들에게 납치된지 6일만의 일이었다. 해적들은 전원 사살되거나 생포되었고 우리쪽에서는 인질 1명만 부상당했다. 이때 선장 석해균씨는 해적의 총에 맞아 의식불명 상태가 되었으나 그 후에 회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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