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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V 방송 리뷰

나는 공산당이 싫어요 이승복 사건 /이승복 동상 철거 이유

by 365 ^^ 2021. 12.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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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복 사건

 

울진,삼척을 120명의 무장공비 침투가 발각되면서 이들은 깊은 산속으로 도주를 하고 있었고 평창 산골에서 농사를 지었던 단란한 4남매 이승복 가족들은 평화로운 하루를 보내고 있었다. 아버지는 친구의 이삿짐 나르는 것을 도와주러 집을 비우고 있었고 집에는 어머니와 4남매만 있었다.

 

이승복 생가터 주소 강원 평창군 용평면 이승복생가길 198

 

 

 

 

1968년 12월 9일 강원도 평창군 진부면 노동리 이승복의 생가로 무장공비들이 들이닥쳤다. 2명은 윗방, 3명으로 아랫방으로 들어왔다. 이승복 어린이는 등잔불을 켜고 숙제를 하고 있었다.

 

출처 이승복 영상 기록 중 이승복 기념관 홈페이지)


이승복의 집을 급습한 무장공비들은 9살 이승복에게 묻는다. 


승복이의 말에 분노한 북한 무장공비들은 대검으로 이승복의 입을 찟고 이승복을 처참하게 살해한다. 그리고 어머니와 두 동생까지 살해한다. 그 시간 뭔가 이상한 느낌이 들었던 이승복의 아버지가 돌아왔고 무장공비와 격투를 하다가 칼을 맞았지만 간신히 도주해 수색대까지 달려가서 신고한 후 다시 현장에 왔으나 이미 가족들 모두 숨진 상태였다.

더 안타까운 건 사건 당일은 1968년 12월 9일 이승복 어린이의 생일이었다. 현재 평창에는 이승복 기념관과 이승복의 생가터가 남아있다. 또한 그들의 넋을 기리기 위해 기념비도 세워졌고 추모식도 진행하고 있다.  

 

이승복 기념관 

 

 

기념관과 생가터는 조금 떨어져 있다. 

 

 

이승복 동상 

이 후에 전국의 초등학교에는 이승복 동상이 세워졌다가 갑자기 동상이 없어졌는데 여기에는 이유가 있다.

이승복 동상은 옛날에는 초등학교마다 세워져있다가 어느 순간 없어졌다.


이승복 사건에 대한 내용이 허위라는 얘기가 나오면서 이승복 사건을 최초 보도한 조선일보가 해당 기자와 언론사를 상대로 명예훼손으로 고소를 하고 손해배상 청구 재판을 8년여간 하다가 결국 이승복 사건은 진실임이 밝혀졌지만 이 사건 이후 동상은 사라졌다.

 


이승복의 형, 이학관씨는 무장공비 습격 당시 36군데나 상처를 입고도 살아남은 생존자로 필사적으로 숨어서 이웃집으로 피신을 했고 이웃 주민에게 사정 설명을 한 후 정신을 잃었다고 한다. 가족의 잔인한 죽음을 눈앞에서 목격한 장남의 이야기를 이웃집 아주머니가 한 일간지에 제보하며 세상에 알렸고 이학관씨는 군용 헬리콥터를 타고 병원으로 이송이 되었다. 분명 생생한 목격자가 있는 사건이었는데 작은 표현하나에 집착해 생존자 가족에게 다시 한번 상처를 줬던 사건이었다.  

 

 

동상철거 이유

이 사건의 본질은 이승복 이야기 진실 게임이 중요한 것이 아니다. 문제는 동상을 세운 것이 문제인 것이다. 이런 일이 생기면 이승복을 본받아 따라하라는 의미가 있는 것인데 이승복 사건을 이용해 반공정신을 강요했던 것으로 그것은 그 시대의 광기나 다름없는 짓인 것이다. 

아이들에게는 목숨이 중요하고 어떤 상황에서도 목숨을 지켜야 하고 이것을 절대 따라하면 안되는 것이다.  문제의 본질은 따로 있는데 쓸데없는 것으로 논쟁을 하고 있었던 것이 너무 안타까웠던 일로 이승복 동상이 사라진 이유 중 하나는  이승복의 죽음을 다른 방식으로 기리고 반공 교육의 도구로 이용하면 안되는 것으로 사회의 변화에서 비롯된 이승복 동상의 철거인 것이다. 

 


[이만갑 513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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