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병의 역사는 무지와의 싸움의 역사라는 말이 있다. 중세 14~17세기 유행한 흑사병은 감염되는 순간 5시간 만에도 죽을 수 있는 전염병으로 중세 유럽 인구 1/3의 목숨을 앗아간 병이다. 코로나 19로 전 세계가 고통을 받는 이 시점에 지금의 펜데믹 상황과도 흡사한 중세 흑사병의 역사를 통해 당시 흑사병의 전염 속도, 발생지, 흑사병의 증상 및 확산 이유 또한 흑사병 종식 이후의 사회변화 등을 알아본다.
페스트 (흑사병) 전염 속도
유럽에서는 학교에서부터 pest에 대해 많이 가르치고 있고 흑사병을 배경으로 한 서적들이 필독서가 많다. 보카치오의 명작 <데가 멜론>에서 페스트의 전파력을 알 수 있는 한 구절이 있다.
" 건강한 젊은이들이 아침에 부모와 동료, 친구와 함께 식사를 하고 나서 바로 그날 저녁에 저세상에서 앞서 가신 분들과 저녁을 먹게 될 줄이야 "
-보카치오 <데카메론> 중
한나절이면 죽게 된다는 것이다.
왜 페스트는 검은 죽음(black death)일까?
몸이 새까맣게 타들어가는 죽음 게 된다고 하여 black death이다. 우리나라의 욕에서 안 좋은 표현으로 사용되는 염병= 전염병처럼 불어에서 안 좋은 상황을 뜻할 때 단어 페스트 peste 가 들어가는 말이 많이 있다. 지금까지도 사용하고 있다.
페스트 (흑사병)의 발생지와 확산 시초
1347년 10월 시칠리아 항구에 배가 한 척 들어온다 그러나 그 배에는 사람이 하나도 없고 배안에는 사람들이 모두 죽어 있었다. 그러나 죽은 시체의 모습이 너무 끔찍했다. 온몸이 부풀어 시커머게 타 들어가고 피고름이 난자했다. 이 배로부터 흑사병이 번지기 시작해 전 유럽을 집어삼켰다. 이 페스트는 하루에 1.6km를 이동할 만큼 빠르게 확산되었다.
그렇다면 이 배는 어디서 온 것일까?
이 배는 카파(페오도시야) 지역에서 온 것이었다. 이 흑사병은 카파에서 시초가 된 것이었다. 카파는 동서양의 교류가 활발했던 무역항였다.
이때 몽골이 카파를 차지해 유럽 진출을 위해 침입해 들어온다. 이때 몽골군에게 퍼진 원인을 알 수 없는 전염병이 흑사병이었고 몽골군에 의해 이탈리아 사람들에게 전파됐다.
몽골군은 어떤 방법으로 페스트균을 옮겼을까?
3년 동안이나 지속된 전쟁으로 몽골군은 지쳐갔고 설상가상으로 몽골군에 퍼진 페스트로 퇴각을 결정한다. 퇴각 전에 몽골군은 페스트에 걸린 시체를 투석기로 성안으로 투척한다. 몽골제국 킵차크 칸국의 10대 칸인 '자니 베크 칸'의 지휘 아래 투석기를 이용해 바위 대신 페스트에 감염된 시체를 성 안으로 던진 것이다.
이것이 페스트 확산 시초다. 그러나 카파와 시칠리아는 거리가 있다. 어떻게 확산이 된 걸까? 카파에 흑사병이 돌자 카파에 있던 제노바 사람들은 페스트를 피해 시칠리아 메시나항으로 도망을 나온다. 그렇게 흑사병이 확산이 된다.
페스트(흑사병)의 증상
흑사병 (페스트)는 발열성 질환으로 혈관 내에 혈액 응고 장애를 일으켜 피가 통하지 않아 신체 말단이 썩어 들어가면서 죽는 병이다.
피가 통하지 않아서 조직들이 괴사 되면서 썩어가다 신체 말단 부분이 떨어져 나가게 된다.
▶가랫톳(림프샘) 페스트
림프샘 페스트라고도 불리며 페스트의 한 종류로 림프샘이 부어오르다 썩어 들어간다. 사타구니에 달걀만 한 혹이 생기면서 엄청난 통증과 함께 피가 통하지 않아 썩어 들어간다.
▶폐렴성 페스트
균이 다른 환자의 비말이 침투해 전염되며 폐에 들어가면 각혈을 하고 오한, 기침, 가래, 각혈 증상이 나타난다.
▶패혈증성 페스트
흑사병 (페스트)의 마지막 단계로 전신에 혈관에 균이 퍼져 온몸이 썩어 들어가는 단계를 말한다. 이 단계는 희망이 없다.
페스트 (흑사병)의 감염 경로
- 쥐벼룩을 통해
쥐벼룩이 쥐에게 옮겨가고 그 쥐가 돌아다니다가 그 쥐벼룩이 사람에게 옮기게 된다. 쥐벼룩에 물린 쥐도 피를 토하면서 죽는다. 페스트에 걸리면 대부분의 쥐는 죽지만 곰쥐라는 종은
유독 페스트에 강해 흑사병을 확산시켰다는 설도 있다.
- 사람 간의 감염
감염된 사람이 또 다른 감염을 시키는 구조로 코로나 19와 비슷한 상황으로 흑사병 (페스트)도 비말로 전염됐다.
흑사병 종식 이유
▷자연환경적 요인
그 당시 유럽의 환경이 흑사병(페스트)이 퍼지기에 딱 적합한 환경이었다.
그 시기가 전 세계적으로 가장 추웠던 소빙기 시기로 기록되어 있는데 춥고 음습한 기후 탓에 농작물 재배도 어려움이 많아 기근과 흉작이 반복되어 사람들의 면역력이 약해져 있던 상황이었고 그 이유로 굉장히 빠른 속도로 감염이 되고 쉽게 사람들이 죽었다.
▷생활환경적 요인
두 번째 요인으로 중세 시대의 생활환경이다. 단적인 예로 중세 시대는 최악의 위생 환경이었다.
이것은 잘 사는 사람들의 전용 화장실로 앉아서 변을 보면 바로 사람이 다니는 길로 배설물이 떨어지는 구조로 중세 유렵은 하수도 시설이 따로 없었기 때문에 지독한 냄새와 악취가 진동을 했다.
이러한 환경적인 이유로 냄새를 가리기 위해 향수가 발전된 여러 가지 이야기 중 하나이고 16세기가 되면서 중세가 점점 도시화가 되니 더 심각해지는 위생 상태가 되었다. 하수도 시설이 없고 물은 모두 더러워 목욕이라는 것은 생각할 수도 없는 상황이었다.
부자들은 옷을 갈아입는 것이 목욕을 대체하는 수단이었다.
종교에 대한 회의 만연
이렇게 흑사병(페스트)으로 사람들이 계속 죽어나가게 되니 믿을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는 상태였고 그 당시 사람들이 의지할 수 있는 건 신앙뿐였기에 찾아간 곳은 교회였다.
그 당시에는 흑사병(페스트)이 신의 형벌이라고 여겨서 회개를 위해 교회를 갔다. 페스트에 대한 무지로 인해 잘못된 교리까지 전파되면서 기도만이 살길이라고 생각해 대규모 집회를 하면서 더욱 빨리 감염이 된다. 이로 인해 어이없는 상황이 많이 생겼던 시기이다.
사람들이 몸에 채찍질을 하면서 고행을 시작했다. 하루에 두 번씩 아침저녁으로 33일 동안 끔찍한 고행이 계속되고 자해로 인해 상처 난 자리에 세균이 감염되면서 더 안 좋아지는 위생 상황과 제대로 먹고 쉬지 못하면서 더 나빠진 면역력으로 페스트에 더욱 취약해진 상태가 되어갔다.
성직자도 기도를 했는데도 불구하고 많이 죽어가고 심지어 아이들까지 죽어가는 모습을 보자 신앙에 대한 불신이 커져가고 종교에 대한 회의가 싹트기 시작한다.
당시 흑사병으로 죽어가는 사람들의 모습
루이지 사바 텔리가 묘사한 1348년 이탈리아 플로렌스의 흑사병
페스트로 죽은 사람들이 산처럼 쌓인 당시 모습을 표현
시체들 옆에 개, 양, 닭, 새들 동물과 인간의 시체가 아무렇게나 나뒹굴고
시체를 짐짝처럼 수레에 담아 구덩이에 던지는 끔찍한 상황이 벌어졌던 시대였다.
중세 (흑사병) 페스트 의사 복장
17세기에 만들어진 마치 까마귀 같은 복장 은 루이 13세의 수석 의사 샤를 드 오름으로 옷은 통으로 일자에 머리 전체를 감싸는 후드와 균이 침투하지 못하게 하기 위한 가죽 소재로 되어 있다. 현대의 방역복과 유사하다.
새 부리 부분에는 짚이나, 향료, 허브 식초 등을 넣었고 그쪽으로 숨을 쉬는 구멍이 있다. 이것을 역할은 냄새와 균을 막기 위함이었다. 현대의 정화통 필터 역할과 비슷하다.
중세 흑사병(페스트) 치료법
▷매질
흑사병을 치료하는 의사들이 들고 있는 지팡이는 환자의 생존 여부를 확인하기 위해 찔러보는 용도로 사용했다. 그러나 그보다 더 충격적인 용도는 종교적 회개의 한 방법으로 이 지팡이로 사람을 매질을 했다.
▷사혈
그러나 매질보다 더 충격적인 치료법 사혈
부패하고 나쁜 피를 뽑아서 버리면 좋은 피만 남아 정화된다고 믿었기 때문에 안 그래도 면역력이 약해 죽어가고 있는 사람들의 혈관을 잘라 피를 내고 이로 인해 사람들은 더 빨리 죽어나갔다. 그들은 사혈이 최고의 치료방법이었다.
▷뉴턴의 황당한 두꺼비 치료법
영국에서 발견된 뉴턴의 자필 원고에는 페스트 치료법이 쓰여 있었다.
- 두꺼비를 굴뚝 속에 3일간 거꾸로 매달아 놓는다.
- 두꺼비의 각종 곤충과 흙을 토해내는 걸 왁스가 담긴 접시에 받아낸다.
- 두꺼비가 죽은 직후 분말로 만들어 토사물과 섞어 환약을 만든다.
이것을 환부에 바르면 전염병을 몰아내고 독을 제거할 수 있다.
▷노스트라다무스의 치료법
당대 최고의 의과 대학 몽펠리에 의과대학을 다녔던 예언가 노스트라다무스로 그는 현대 과학의 관점에서 상당히 타당해 보이는 조치들을 권고했다.
페스트 치료법을 알려진 사혈을 금지시키고 면역력 강화를 위해 로즈힙 오일을 약으로 사용 등이었다.
▷식초 치료
페스트가 만연했던 시대에 도둑들이 페스트 걸린 사람들의 집을 들어가 물건을 훔쳤는데 그들이 잡혔는데 도둑들은 병에 걸리지 않았다. 그래서 페스트에 걸리지 않은 비법을 알려주면 살려준다고 했다. 그들의 비법은 식초였다. 그들은 도둑질 전에 식초를 온몸에 바르고 먹고 도둑질을 했고 그것이 효과가 있었던 것이다.
100년 정도 후 1720년 프랑스 마르세유에서도 비슷한 사건이 벌어지고 그들도 역시 식초를 발랐다고 한다.
식초는 아세트산이라는 약산성 물질로 살균 효과가 있어 균을 죽이는 역할을 한다. 그 이후 마르세유의 약사들은 도둑들의 비법 식초를 업그레이드해서 식초에 와인, 쑥, 각종 향료를 더해 페스트 예방을 위한 비법 식초를 제조 판매했다.
현재도 도둑의 식초라고 해서 현재도 판매 중이다. 세정제가 없던 시절에 쓰던 방법이다.
페스트(흑사병) 종식
많은 노력에도 흑사병(페스트)은 쉽게 사라지지 않았다. 마치 파도의 썰물이 왔다 갔다 하듯이 잠시 잠잠해졌다가 또 끊임없이 밀려들고 유럽에서 페스트 유행은 100회가 넘는다는 통계가 있다. 이 끈질긴 페스트는 17세기가 지난 후에야 겨우 종식된다.
흑사병 종식 이유에 대해서는 여러 요인의 복합적 작용으로 보고 있다.
- 환경의 개선
- 유럽 인구 1/3 사망에 대한 인구감소
- 상대적 물자의 풍요
- 자연스럽게 개선된 영양상태
흑사병 페스트 종식 이후의 사회 변화
자작농 부의 축적
중세 유럽의 농민 인구가 줄어들면서 농민은 중세 유럽 경제 그 자체였던 농민이 없어지자 일손이 부족해지면서 소작농-> 자작농으로 점점 농민이 부를 이루게 된다.
포도재배 발달
또한 농협의 형태가 바뀌었는데 과거 가장 노동 집약적 농업은 밀농사와 쌀농사였는데 노동력 부족 상황으로 상대적으로 손이 덜 가는 포도 재배가 발달하게 되고 와인이 발전한다. 그것으로 인해 와인 산업이 급성장한다.
르네상스의 시작
그러나 농민들에게 나타난 가장 큰 변화는 농민들이 자신의 노동력 이상의 가치를 인식하면서 유럽에서 인본주의가 싹튼 계기가 된다.
유럽 중세의 중심이던 신(신앙, 종교) -> 페스트를 거치면서 발전한 인간 중심적인 정치, 과학, 예숙 답 방면에서 새로운 사고가 발달하면서 르네상스가 시작된다.
[출처 벌거벗은 세계사 4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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