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남아시아들은 식민지배를 벗어난 이후에도 1955~1975 또 한번의 비극 베트남 전쟁,1970년대 캄보디아 킬링필드 200만 명 학살, 미얀마는 지금까지도 아픈 역사가 계속되고 있다. 이들 나라는 우리나라와 일제 식민지와 냉전 체제 고통의 역사를 공유하고 있다.
1차 반둥회의 (1955.4.18)
1955년 4월 18일 인도네시아 반둥에서 개최된 아시아 ~아프리카 29개국의 비동맹국가들이 모여 회의를 개최했다. 인도네시아 자카르타에서 기차로 서너시간 가면 반둥이라는 고산지대가 있다. 이곳은 연중 봄 날씨로 쾌적하고 땅이 비옥해 차나 커피가 재배되고 교통과 문화 인프라가 갖춰진 지역이다.
- 1세계 미.소 냉전기 미국과 서유럽 중심 동맹의 자유진영
- 2세계 소련과 동유럽 중심 동맹의 공산진영
- 3세계 아무데도 속하지 않은 비동맹 국가들
이 곳에서 제 3세계가 모여 반제국주의에 저항하는 회의를 열었다. 23개 아시아 국가와 6개 아프리카 국가가 참가했다.인도네시아 수카르노 대통령의 주도로 인류 역사상 최초의 비동맹국 제 3세계가 연대한 것으로 동남아, 아프리카, 라틴아메리카의 식민지배를 받았던 국가들이 힘을 합쳐서 냉전 체제 속에서 새로운 길을 열어가자는 뜻에서 모인 회의였다.
아시아-아프리카 29개국이 평화, 인권, 주권을 보호하는 <반둥 10원칙>을 발표했다. 그때 우리나라는 북한과 6.25 전쟁을 치르고 난 직후였고 주최측에 중국도 있었던 터라 적대국인 우리나라는 초대받지 못했다. 일본은 당시 인도네시아와 식민지 배상협상 중에도 참석했다.
반둥회의 일 년 뒤 제국주의에 대항하는 아랍의 지도자가 된 나세르가 힘을 받아 독립하고 대통령의 꿈을 꿨고 세계사를 바꾼 순간이었다. 현재 자유와 평화의 상징이 된 메르데카 빌딩 회의장도 그대로 보존되어 있어 전 세계인들이 성지순례하듯 찾는 곳이 되었다.
2차 반둥회의 실패
그러나 이 회의는 계속 이어지지 못한다. 제 1,2 세계 서구 세력들이 반둥의 정신을 왜곡하고 미국의 맹비난, 중국, 인도의 국경 분쟁과 이집트 나세르의 아랍연방 형성 실패 등 복잡한 세계정세 속에 결국 2차 회의는 무산된다. 1965년 수카르노 대통령은 군부 쿠데타 이후 실권을 잃는다.
방콕 선언으로 창설된 아세안 국제기구
그러나 1967년 8월 8일 아세안 (동남아시아 국제기구)가 반둥회의의 정신을 계승하여 방콕 선언으로 창설되면서 세계에서 가장 포용력 있는 국제기구가 되었다.
2015년 반둥회의 60주년 기념식
국제 협의체 중 가장 많은 종교와 종족 언어의 다양성을 포용하는 아세안은 2015년 반둥회의 60주년 기념식에 100여개의 국가 지도자들이 모인 반둥회의에 중국 시진핑 주석, 일본 아베 총리 등 여러 국가 정상과 국제기구 대표가 참석했다.
당시 우리나라 박근혜 대통령은 중남미 순방 중이였고 대신 황우여 당시 부총리가 참석한다. 이때 아베 일본 총리는 2차 세계대전을 반성한다고 사과까지 했었다.
안타까운 것은 중국은 이미 오래전부터 비동맹 국가에 대한 관심과 지원을 하고 있고 일본 또한 관심을 기울이고 있는데 우리나라는 반둥회의의 가치도 인도네시아의 위상도 몰랐었고 세계사의 흐름을 바꾼 역사적 순간에 무지했었다는 지적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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