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세기 중국과 조선은 해금정책으로 바닷길을 막은 사이 서구 열강은 해양 탐사에 뛰어들며 결국 제국주의 시대가 열리고 동남아시아 식민지배 경쟁체제로 들어갔다. 동남아시아 대부분이 서구 열강의 식민지가 되었던 반면 유일하게 독립국가의 유지했던 국가가 태국이었다.
라마 1세
원래 태국은 미얀마(=버마)와 라이벌 관계였다. 1782년 짜오프라야강 유역 방콕으로 수도를 이전하면서 라마 1세(재위 1782~1809) 가 시암의 전성기를 이끈다. 라마 1세는 글로벌한 마인드를 가진 인물로 미얀마와 경쟁을 하기 위해 지도를 보며 전략을 수립후 영토를 많이 확장한다. 이에 라오스, 캄보디아, 베트남 등 동남아의 주요 종주국으로 등극하게 된다.
라마 4세
라마 1,2,3세에 이어 라마 4세 뭉꿋 왕(재위 1851~1868)은 외교 천재였다. 어릴때부터 서구의 지리학을 들여와 세계로 시야를 넓혔고 지도 학교 설립, 지도 전문가 양성하면서 유럽 열강의 압력 속에 독립적으로 시암의 근대화를 이끌었던 왕이었다.
태국 형법 제 112조 에 따르면 국왕, 왕비, 왕세자를 비방하건 위협한 자는 징역 3년 이상 15년 이하의 형벌에 처한다. 태국에 가면 길거리나 공황등 국왕사진을 볼수 있는데 그 사진을 훼손해도 감옥에 간다. 이 영화는 태국왕실의 심기를 불편하게 자극했던 듯하다.
라마 5세
전 세계를 휩쓴 유럽의 제국주의에 태국 왕실의 대응은 '적을 알고 나를 알자'로 서양 각국에 문호를 개방, 지식을 흡수하고 다자 외교로 독립을 지킨다. 몽끗 왕의 아들 라마 5세 쭐랄롱꼰(재위 1851~1868)가 즉위한다. 아버지의 갑작스러운 죽음으로 준비가 되어 않았던 라마 5세는 5년동안 국정을 잠시 맡기고 말레이반도, 인도, 인도네시아를 여행하면서 견문을 넓힌 후 왕위에 오른다.
그는 개혁군주로 휘지만 부러지지 않는 외교 대나무 외교를 펼친다. 주변국의 종주권을 포기하고 영국, 프랑스에 영토를 할양했지만 핵심영토는 사수하며 프랑스, 영국 모두와 교류하면서 절묘한 줄타기로 독립을 유지한다. (살을 내주고 뼈를 지킨 전략)
라마 5세 쭐랄롱꼰 왕의 손자 라마 9세 푸미폰 아둔야뎃 왕은 70년 재위한 왕으로 라마 9세는 살아있는 부처로 칭송받던 인물로 서거이후 1년 동안 추모 행렬이 이어질 정도로 태국인들은 가족이 죽은것 처럼 슬퍼했다고 한다.
[차클 214회]
아세안/ 말라카 해협/ 자바섬 (동남아시아 해상 무역 역사)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