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공화국 변경 기준은 헌법이 개정될 때를 기준으로 바꾼다.
제1공화국
(1948년 8월 15일부터 1960년 4 · 19 혁명으로 붕괴되기 전까지의 시기)
광복 이후 간선제로 이승만이 대통령이 되면서 제1 공화국이 시작된다. 이승만은 1,2 차 헌법 개헌과 3.15 부정선거를 통해 12년 동안 독재 정권을 유지하다가 4.19 혁명으로 하야하게 된다.
4.19 혁명 배경과 전개 과정 속 김주열 열사의 죽음
허정의 과도정부
(1960년 4월27~8월12일)
이승만 정권이 무너지고 3개월 가량 과도 정부가 생겨났는데 당시 외무 장관이었던 허정이 이끄는 허정 정부다. 그때 3차 개헌으로 의원내각제를 실시하며 제2 공화국 출범한다.
제2공화국
(4.19 이후~1961년 5·16군사정변 때까지)
4.19 혁명의 결과물인 의원내각제는 대한민국 헌정 역사상 최초이자 유일하게 채택한 정부이다. 대통령 윤보선,총리 장면 체제로 운영되는데 내각책임제는 총리의 권한이 강하다.
그러나 내분이 일어나 민주당 구파와 신파의 대립이 격화되어 신민당과 민주당으로 쪼개져 정쟁을 반복되었다
5.16 군사 정변
이렇게 국정이 불안한 틈을 타서 군인 약 4000명과 함께 한강을 건넌 제2 군부 사령관 박정희와 주도 세력은 서울의 주요 기관을 점령하고 장면 내각을 총사퇴시켰다.
5월 20일 혁명 내각을 발표하며 군사 정부가 수립된다. 이렇게 제2 공화국의 의원내각제는 도입한 지 8개월 만에 5.16 군사쿠데타에 의해 단명하게 되었다.
제3 공화국
(5.16 군사정변 이후 ~1972년 10월 17일 '10월유신' 전일까지 )
박정희 군부통치의 시작
5.16 군사 정변 이후 시작된 3년간의 군부 통치가 시작된다. 5.16 군사정변 직후 혁명 공약을 발표하고 3년 동안 여러 정책을 펼친다.
▷10 환->1원 화폐개혁
▷경제개발 5개년 계획 실시
▷중앙정보부 창설
대통령 최 측근으로서 권력 유지에 핵심적인 역할을 했던 중앙 정보 부장은 실세를 넘어 공포의 상징이었다.
중앙정보부의 주 업무
민간인 정보 수집으로 민간인 도청,감청, 뒷조사, 미행 등 모든 것을 담당한 중앙정보부로 수많은 불법 행위들을 합리화했던 명분은 반공이었다. 반 정권 민주화 인사, 일반인까지 불법 납치하여 고문을 자행하며 국민의 자유권을 무차별 침해했던 중앙정보부다.
북한의 위협에 대응하기 위해 중앙정보부를 창설했지만 그 이면에는 도청과 불법 사찰, 납치,고문이라는 또 다른 민낯이 있었다.
1972년 10월 17일 박정희는 특별선언을 발표한다. 대통령간선제, 긴급조치권, 위헌적 계엄 등의 특별 선언을 발표하며 종신집권이 가능하도록 강력한 권한을 대통령에게 집중 되도록 '10월 유신'을 단행한다.
제4 공화국
1972년 10월 유신 이후 정권 ~ 1979년 10·26 사건 박정희 대통령 사망까지 8년간 지속된 박정희 유신 체제 시기
10월 유신 선언후 박정희는 12월 27일 간선제를 통해 8대 대통령에 취임하면서 4 공화국 유신체제가 시작된다. 10대 총선에서 박정희의 공화당이 참패를 시작으로 육영수 여사 피격사건, YH무역사건, 석유파동, 부마 민주항쟁 등 모든 것이 박정희에게 안 좋게 돌아갔다.
10.26 사태
1979년 10월 26일 저녁 7시 40분 궁정동 중앙정보부 안전 가옥에서 김재규가 박정희와 대통령 경호실장 차지철을 암살하면서 그렇게 유신 체제는 막을 내린다.
박정희 암살 10.26사태 이야기(10월유신,yh무역사건,부마민주항쟁)
12.12 군사 반란
10.26 사건으로 비상 계엄이 선포되고 육군 참모 총장 정승화는 천하의 실수를 하는데 전두환을 합동수사본부장으로 임명 신군부가 힘을 얻는 빌미가 된다.
10.26 사건 도중에 자신을 임명한 육군 참모총장이 현장에 있었다는 정보를 입수한 전두환은 이것을 빌미 삼아 정권 장악의 기회를 포착한다. 병력을 동원해 육군 참모총장을 체포한 것이 12.12 군사반란이다. 보안 사령관 전두환을 필두로 권력을 장악한 신군부 세력 전두환의 군사 정권이 시작됐다.
전두환 정권의 시작
신군부가 등장한 이후의 대한민국은?
대표적인 것이 바로 5.18 민주화 운동으로 국민들이 원했던 것은 신군부 해산이었지만 신군부는 5.18 민주 항쟁을 잔혹하게 탄압을 한다.
5.18 광주 민주화 운동 (계엄군의 잔혹 진압이유? )
국보위 창설 (국가보위비상대책위원회)
5.18 민주화 항쟁을 잔혹하게 탄압 한후 국보위(국가보위비상대책위원회)를 설립한다. 국보위는 군인이었던 전두환을 대통령으로 만들기 위한 발판이 되었던 기구다.
국보위가 했던 일
(국가보위비상대책위원회)
▷ 언론 통폐합
많은 언론사들 중 저항적, 비판적인 곳은 전부 통폐합한다.
당시에 대표적인 방송국 3사 MBC, KBS, TBC가 있었는데 언론 통폐합으로 TBC는 KBS로 합병이 된다. 그것이 kbs 2가 된다.
▷삼청교육대
이런 것들을 통해 실권을 장악한 전두환 중심의 국보위 세력이었다. 결국 힘을 잃은 최규하 대통령은 8월 16일 스스로 사임한다.
제11대 전두환 대통령 취임
통일주체국민회의에서 대의원 간접선거로 전두환이 11대 대통령으로 취임한다. 박정희 정권에 이어 또다시 권력을 잡게 된 군부 세력 중 전두환과 군사 반란을 함께 주도한 허삼수, 허문도, 허화평은 국민들이 유신 속편이라고 생각할 수 있으니 전두환에게 직선제와 개헌을 하길 권유한다.
국민 손으로 투표해야 반발이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 생각된다고 간언한다.
12대 대통령도 전두환 당선
이에 전두환은 헌법은 바꿀건데 직선제는 못 하겠다고 하는데...대통령이 된 지 1년도 안되어 8차 개헌을 공포한다.
7차 개헌때 연임 제한 없는 6년-> 8차 개헌 7년 단임제로 변경한다.
제5 공화국
간선제는 유지하나 대통령 선거인단(=통일주체 국민회의가 이름 변경함)의 투표로 결정하여 1년 사이에 결국 12대 대통령도 전두환이 당선되고 그렇게 제 5공화국이 시작된다. 제5 공화국 전두환 때는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을 비롯, 이한열 열사의 죽음으로 촉발된 6월 민주 항쟁 등 학생 시위가 극에 달하던 때이다.
제 6 공화국은 1987년 10월 29일 대통령 간선제에서 직선제로 노태우 대통령이 당선되며 현재까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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