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14년 7월 28일 유럽에서는 대전쟁이 발발한다. 제 1차 세계대전으로 전쟁기간 4년 4개월 총 32개국 15억 명 참전한 일류최초의 세계 대전으로 사망자만 약 1600만 명으로 과거의 전쟁과는 차원이 다른 전쟁으로 산업혁명을 거치면서 진보한 기술은 인류를 재앙으로 돌아왔다. 전차 기관총 항공치 잠수함등은 사상 최초의 대량 살육전으로 바꿔놓았다.
선전포고문 (1차 세계대전)
이것의 비극은 오스트리아가 작성한 한장의 문서에서 시작된다.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의 대 세르비아 선전포고문이다. 이것은 현재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이다. 1914년 7월 28이리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이 세르비아에 보낸 선전보고 전보이다.
현재 러시아 우크라이나 침공 상황이 1차 세계대전과 비교되는 상황이라고 한다.
오스트리아-헝가리제국 묶여있는 이유
오스트리아가 한때는 상당히 막강한 국가였다. 1866년 오스트리아와 프로이센과 전쟁에서 패배를 하면서 오스트리아의 국력이 급격히 쇠퇴하게 된다. 오스트리아는 다민족으로 구성된 국가로 두 번째로 많은 민족이 헝가리인 마자르족이었다. 오스트리아 제국에서 헝가리의 독립 대신에 자치권을 부여하여 오스트리아와 헝가리를 이중 왕국으로 된 것이다. 당시 오스트리아 황제가 헝가리 왕을 겸직하고 있었다.
선전포고은 언제부터 시작?
전쟁의 동기.명분을 명시하며 그전에 최후통첩을 전달하게 되어 있다. 선전포고는 1907년 헤이그 만국평화회의에서 성문화 되었다. 1904~1905 일본의 기습으로 러일전쟁이 시작되어 러일전쟁에서 패한 러시아 황제 니콜라이2세가 선전포고 성문화를 강력히 주장했다. 기습공격하면 침략국으로 규정된다.
2022년 2월 24일 러시아의 미사일 공습으로 러시아 -우크라이나 미사일 공습으로 전쟁이 발발 당시는 선전포고는 없었다. 1939년 9월1일 독일의 폴란드 침공으로 2차 세계대전이 시작될때도 없었다.
선전포고문이 세계유산으로 지정된 이유
▶인류 역사상 가장 비극적인 전쟁을 알리는 문서
▶당시 치열했던 외교 상황이 잘 드러남
▶국제적으로 매우 중요한 문서
선전포고문 전달되었던 방식.
세르비아 주재 오스트리아 대사가 세르비아 정부에 공식 전달해야 하는데 선전포고하기 전 이미 오스트리아 대사는 철수해서 루마니아를 거쳐 일반 우편으로 배달되었던 것이다. 놀란 세르비아 수상이 루마니아 정부에 확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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