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카오는 아시아의 작은 보석, 동양의 라스베이거스로 불리는 곳으로 중국 남단에 위치한 작은 반도와 섬으로 이루어진 곳으로 크기는 여의도 면적의 3배 정도의 크기이다. 이런 작은 크기에 비해 경제와 관광분야에서 1위를 휩쓸고 있다.
그러나 마카오가 이렇게 되기까지는 순탄치 않았다. 과거 마카오는 인구수도 파악되지 않을 만큼 외면받던 작은 어촌 도시에 불과했다. 홍콩 면적 대비 40분의 1일 정도로 매우 작은 크기의 도시였다. 16세기 중반 포르투갈은 전세계 해역을 장악하고 해상무역을 독점하는 거대한 해상 제국이었다. 이렇게 세력을 넓혀가던 포르투칼은 유럽 최초로 명나라, 즉 중국까지 아시아 진출 항로를 개척하게 된다.
1553년 포루투갈은 마카오에 도착하게 되고 마카오를 통해 명나라와의 교역의 길을 열리게 된다. 이 시기는 명나라 가정제 황제 시기로 포르투갈 상인들은 황제와 부패한 관리에게 뇌물을 주고 마카오를 빌리기로 한 것이다. 1557년 포르투갈인들은 명 황실의 허락하에 마카오를 체류지로 활용하게된다. 포르투갈이 들어온 후 마카오의 역사를 새롭게 쓰여지기 시작한다.
마카오 이름 유래
포르투갈의 영향을 받은 것중 대표적인것이 이곳의 지명이 마카오로 바뀌게 된 것이다. 마카오는 광활한 호수라는 뜻의 호경 or 호경도라고 불리던 곳이다.
당시 포르투갈 상인들이 배를 두고 내렷던 곳에는 어부들을 지켜주는 여신인 마조신을 모시는 사원이 있었고 포루투갈 상인들이 마각묘를 자신들의 발음으로 부른 것이 마카오였다.
중국 영어 이름 차이나 유래
마카오란 지명을 얻은 후 유럽과 일본까지 연결하는 명나라 최초의 국제 무역 거점으로 떠오르게 된다. 포루투갈 상인들은 거대한 무역선을 타고 마카오에서 유럽을 오가며 명나라의 물건을 팔아 막대한 이윤을 남겼다. 포르투갈 왕이 중국의 도자기 방을 만들어 놓았을 정도로 중국 도자기에 관심이 많았다. 당시 유럽에서 중국 도자기는 사치품으로 부유함의 상징이었다.
마카오는 작은 어촌에서 무역기지인 항구 도시로 발전하게 나가기 시작했다.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