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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V 방송 리뷰/선을 넘는 녀석들 리턴즈

어우동 이야기/고려시대 여성 지위->조선 시대 여성의 삶 삼종지도와 칠거지악

by 365 ^^ 2020. 11.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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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을 넘는 녀석들 리턴즈 62회 1]


오늘의 탐사지: 강릉 경포대

주제: 조선시대 여성에 대한 차별
출연자: 설민석 , 노사연





여성에 대한 차별은 언제 부터 시작되었나? 


고조선 때부터 성차별이 존재했다. 

고조선을 보면 여성이 불륜을 하면 처벌을 강력하게 했는데 불륜을 한 남자는 처벌받지 않았다고 한다. 이유는 전쟁이 시작된 청동기시대 이후에 칼과 권력을 쥔 것이 남자이기 때문으로 추측한다. 

고려시대 여성의 지위


고려 시대가 상대적으로 여성의 지위가 높았다. 정치 참여를 제외하고 오늘날과 비슷한 수준이었던 남녀의 지위는 고려시대였다.

●여성도 호주(한집안의 주인)가 될수 있었다. 
●제사도 아들, 딸이 번갈아가며 지냈다. 
●제산 상속도 아들. 딸에게 똑같이 권리 부여되었고
●그만큼 이혼이 빈번했다. 

이혼이 전혀 흠이 되지 않던 고려의 여성은 정치, 사회적 활동은 자유롭지 못했지만 비교적 자유롭고 남녀가 대등한 관계에 있던 고려시대 여성이다. 


조선시대 여성의 삶 


조선이 내세운 정책이 바로 유학으로 중국의 성리학인 유교를 받아들여 나라의 기본 정신으로 삼은 조선이다. 성리학은 모든것이 이분법적으로 나뉜다. 임금과 신하, 중화 오랑캐 ,남과 여 등 이러한 성리학이 도입된 후 조선은 부계 중심으로 변화된다. 

조선 전기 여성의 지위는 과도기
고려시대의 여성의 지위가 높았기 때문에 조선전기는 성리학에 반기를 들던 과도기였다. 그래서 신사임당와 황진이 , 허난설헌등이 나왔으나 조선 중기 임진왜란 , 병자호란등의 전쟁으로 치르면서 성리학적 사회 질서를 온 백성에게 각인시켰다. 

성리학 관점에서 본 조선이 요구한 여성상

조선 여성에게 순종은 당연한 미덕이었고 부계가족에 대한 절대적인 복종을 요구했으며 그래서 유교의 도덕 규범인 삼종 지도 (=여자가 따라야 할 세 가지의 도리)가 있었다. 




삼종지도 

자고로 여자는 어려서는 아버지를 
결혼해서는 남편을 
남편이 죽으면 자식을 따라야 한다. 

이러한 유교의 도덕규범이 만들어지고 유교적 가치관에 의해 통제된 조선시대 여성은 태어나면 이름이 없었다. 


이렇게 누구의 딸, 아내, 엄마로만 불리며 이름조차 불리지 못하며 자유를 상실한 조선 여성의 삶이었다.

칠거지악 


조선 여성에게 요구한 또 다른 도덕규범 칠거지악이 있었는데 이는 조선 시대 아내를 합법적으로 내쫓는 이유가 되는 일곱가지 사항이다. 


이렇게 조선 시대에는 성리학이 옳은 길이라 믿었다. 가부장적 사회를 만들고 억압과 규제를 실시했으나 규범이 제대로 안 지켜진 조선 초기였기에 왕은 강력한 법을 만들었다. 


풍속을 바로 잡기 위해 법을 만든 왕이 바로 성종이며 이렇게 경국대전이라는 법전이 생겼다. 


성종은 세종대왕의 증손자이자 수양대군의 손자이다. 이렇게 성종이 경국대전을 편찬하던 중 이를 거스르는 사건이 생긴다. 

 
어우동 사건

어우동은 명문 양반 가문에서 규수로 태어났다. 

그런데 어우동의 남편에게 다른 여자가 있었다. 바람의 핀 남편은 기생에게 푹 빠져 있었고 남편은 되려 어우동이 바람났다고 내쫓기까지 한 것이다. 



쫓겨난 어우동은 수많은 남자들을 만나기 시작한다. 어우동은 신분을 가리지 않고 남성들을 만난다. <조선왕조실록>에도 기록된 어우동의 스캔들은 첩,기생,여종의 행세를 하며 남자들을 만났다고 한다. 

소문은 퍼지고 퍼져 커져 버렸고 하필 성종이 경국대전 법전을 만든 후 성리학을 강화할 때 벌어진 사건이었다. 

그 당시 어우동 사건은 간통죄였다. 


당시 간통죄를 저지르면 곤장 90대였다.

그러나 어우동의 죄는 간통죄가 아니라 강상죄로 성종은 처벌한다. 


강상죄는 패륜이나 노비가 주인을 살해하는 등의 경우 처벌받는 중벌로 나라의 기강을 흔드는 중죄에 해당하는 죄로 규정했다. 

그래서 성종이 내린 벌은 ? 



수많은 대신들이 간통죄로 여겨 귀양보낼 것을 권유했으나 성종은 단호히 어우동의 강상죄를 주장하고 결국 교수형으로 처형한다. 


성리학을 토대로 조선의 새 법을 만든 성종은 본보기를 통해 성리학적 질서를 바로 세우려했던 것이다. 그리하여 여인 어우동은 시대의 희생양이 되어 교수형으로 생을 마감했다. 




풍속도 속 
조선 시대 여성상 

첫번째 신윤복의 [장옷입은 여인] 



조선 시대 여성들의 외출 시 착용하는 장옷을 입고 있는 여인으로 여성들은 얼굴을 가려야 했던 당시 사회상을 알수 있다. 

두번째 작자 미상 [달구경] 


여성들은 담장 안에서만 달을 구경하고 있다. 남자들과의 접촉을 피해야 했던 사회상을 반영한다.

세번째 [삼강행실도 중 열녀편]


절개가 곧은 여성 열녀의 모습을 소개한 그림으로 스스로 팔을 자르고 있는 여인이 있다.

 

남편이 죽은 후 유해를 수습하고 여관에 자리에 없어 실랑이 중 여관 주인이 팔을 붙잡아서 절개를 잃었다고 생각해 


자신의 팔을 잘라 절개를 지켰던 여인의 모습을 그린 것이다. 


62회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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