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을 넘는 녀석들 리턴즈 56회]

덕수궁의 원래 이름은 경운궁이었으나 고종 퇴위 이후 순종이 올린 궁호가 덕을 누리며 오래오래 살라는 의미의 '덕수궁'이다.
커피 애호가 고종
유길준은 최초의 미국, 일본 유학생으로 미국. 유럽을 순방하며 본 신문물을 <서유견문>에 소개했는데 한국인 최초로 커피에 대한 기록이다.

황실과 대신들 은 그윽한 향과 머리를 맑게 하는 맛으로 왕족과 대신들을 매혹시켰고 한자의 발음을 빌려 표기한 것으로 '가배'로 불렀다.

서민들은 서양이 탕국이라는 뜻으로 양탕국이라고 불렀다.
고종 커피 독살 사건
커피 애호가 고종은 커피를 연회 및 궁중다례의식에 사용할 정도로 커피에 대한 사랑이 넘쳤던 고종인데 그렇게 좋아하는 커피 때문에 죽음의 고비를 맞이 하는 사건이 발생한다.

대한제국 선포 1년 뒤 1898년에 발생한 일로 고종의 아관파천 당시로 거슬러 올라가 보면 러시아어 통역이 절실했던 상황에 김홍륙이라는 사람이 통역을 하게 된다. 김홍륙은 러시아에 인접한 함경도 출신의 천인으로 러시아에 이주해 생활하며 러시아어를 유창하게 익힌 후 베베르라는 러시아 공사를 따라서 조선에 입국한다.
아관파천 후 고종의 러시아어 통역사로 고속 출세하며 그렇게 대한제국 황실의 통역관이자 고종의 최측근이 된다. 고종에 의해 외교 교섭 임무를 독점하게 되고 그 과정에서 국정 농단을 펼치며 자신의 이권을 챙기면서 권력을 휘른다. 그러나 고종이 이를 눈치를 채면서 태형 백대를 맞고 유배를 가게 돼자 앙심을 품은 김홍륙은 고종과 아들 순종의 커피에 치사량의 아편을 넣었다.


아들 순종은 다량의 아편이 든 커피를 마신 후 다행히 목숨은 건졌으나 후유증으로 치아 18개가 빠졌다. 그 후 순종은 심적으로도 큰 충격을 받게 되며 무기력증 등 각종 후유증을 안고 살았을 것이라 추측한다. 그렇게 고종의 주변에는 온통 적뿐이었던 것이다.
김홍륙의 커피 사건 이후 고종은 심한 트라우마에 시달렸는데 그전부터 트라우마에 시달렸으나 화룡점정은 커피 독차 사건 이후 모두를 못 믿을 지경에 이른다.

지금의 연세대학교 연희전문학교의 초대 교장을 지낸 미국의 언더우드 선교사 감시 하에 고종의 식사를 만드는 모습을 지켜보고 철가방에 자물쇠까지 채운 뒤 고종의 눈앞에서 자물쇠를 개봉하고 그제야 식사를 했던 고종이다. 당시 불면증에 시달렸던 고종은 맵고 짠 음식을 잘 먹지 못해서(간이 없어야 독을 탔는지 금방 알 수 있었을 거라 추측) 야참으로 냉면을 즐겨 먹었다고 한다.
커피 독살 사건의 현장정관헌



고종의 강제 퇴위
고종은 을사늑약(1905)의 부당함을 알리고자 헤이그로 특사를 파견 하지만 이는 실패로 돌아가고 1907년 강제 퇴위를 당하게 된다. 이후에 덕수궁 함녕전에서 승하한다.
고종 독살설
1919년 고종은 갑작스럽게 죽는다. 평소 건강했던 고종이 쓰러지자 우리나라에 파견된 (대한제국 황실 비사) 일본인 관리 곤도 시로스케도 의아해했던 것이다.

윤치호 일기에서 고종 독살설에 대해 언급하고 있는데 <윤치호 일기> 중 한진창 씨는 광무 태황제가 틀림없이 독살되었다고 믿고 있다.
고종의 독살설은 지금 가지도 의견이 분분하지만 신민회의 이회영 이시영 6형제가 망명 생활하며 국내로 들어와 고종을 중국으로 망명시켜 망명 정부 설립 계획을 세우고 은밀하게 작업하던 중이던 시기에 이완용이 식혜를 먹고 고종이 갑자기 승하한 것이다. 이 또한 독살설에 비중을 싣게 되는 부분이다.
고종 장례식 (인산일) 모습, 의미
조선의 마지막 황제 고종은 일제에 의해 강제 퇴위를 당하여 1919년 1월 20일 68세로 생을 마감한다. 고종황제의 장례는 패망 군주의 장례식으로 다를 수밖에 없었다. 일본 귀족의 장례 절차에 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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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수궁 함녕전 : 망국의 황제 고종이 남긴 것은?
1897년 고종황제가 대한제국을 선포하던 해에 지어진 건물로 1904년 덕수궁 대화재가 일어나던 장소이다. 이 화재로 인해 덕수궁의 거의 모든 건물이 다 불타없어졌다. 이후 고종황제는 수옥헌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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