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30년대에는 당시 캘리포니아와 텍사스는 미국의 영토가 아닌 멕시코 땅이었다. 스페인 VS 멕시코는 약 11년간의 독립전쟁 끝에 1821년 독립을 했다. 하지만 당시 사람이 많지 않아 불모지였던 멕시코 영토를 개척하기 위해 미국인 이주를 장려한 멕시코 정부였다. 이때 짧은 기간에 많은 미국인들이 이주해버린 것이다. 이 때문에 텍사스 이주민의 대부분을 미국 이주민들이 차지하면서 영토 분쟁이 일어나게 된다.
텍사스 독립전쟁 발발
이에 미국은 텍사스를 3000만 달러에 구입하는 조건을 제안했으나 멕시코 8대 대통령 산타 안나는 더 이상 미국 이주민을 받아들이지 않겠다고 결단을 내린다. 이에 1835년 10월 텍사스군을 무장해제하러 멕시코군이 오면서 텍사스 독립전쟁이 발발하게 된다.
이때 미국의 지원으로 텍사스 이주민들은 텍사스 정규군 총사령관 샘 휴스턴의 지휘아래 곤잘레스, 백사등의 지역에서 멕시코군과 격전을 벌였고 전쟁이 시작된지 4개월 쯤 전쟁 마무리될 쯤 텍사스 민병대가 알라모 교회에서 결사항쟁을 하지만 텍사스 민병대 182명이 그대로 몰살당하며 멕시코의 승리로 돌아간다.
샌 하신토 전투(1836)
이것은 미국인들을 결집하게 만들었다. 멕시코 대통령이 직접 군대를 이끌고 나서지만 분노한 텍사스 민병대에게 의해 멕시코군 650명 사망, 300명 이 포로로 잡히고 포로 중에는 산타 안나 대통령도 포함돼 있었다. 이에 산타 안나의 포로 해방 조건으로 1836년 텍사스의 독립을 보장하게 된다. 그리고 1845년 미국에 텍사스는 합병된다.
오리건 영토를 확정
이후 감리교 선교사들의 개척으로 1846년 영국과 협상을 통해 오리건 영토를 확정하게 된다. 약 60년 만에 어마어마하게 커진 미국영토였다.
미국의 텍사스 합병 후 국경 분쟁이 시작된다. 당시 멕시코는 텍사스 합병 후 누에시스강이 경계라고 주장하고 있었고 미국은 더 바깥쪽에 있는 리오그란데강이 국경이라고 주장하고 있었다. 미국이 이렇게 주장한데는 포로로 잡힌 산타 아나가 약속을 했다는 것이었다.
몬테레이 전투(Battle of Monterrey) , 부에나 비스타 전투(Battle of Buena Vista)
이것은 당시 미국은 멕시코 영토였던 캘리포니아까지 영토 확장을 노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2500만 달러를 줄테니 땅을 팔라고 했으나 이를 거절하자 미국은 멕시코와 전쟁을 선포한다. 약 1년 9개월간 이어진 미국과 멕시코 전쟁은 멕시코 시티가 미군에 의해 장악이 되면서 미국의 승리로 끝이 난다.
캘리포니아 매입
이 전쟁의 폐배로 1848년 2월 평화협정인 과달루페 이달고 조약이 체결된다. 이 조약으로 미국은 캘리포니아를 포함한 주변 지역을 1500만 달러에 매입하게 되고 1844년 텍사스의 동의하에 미국으로 편입 캘리포니아 인근 영토는 1848년 전쟁으로 미국 강제 편입되었다. 지금도 이 지역은 멕시코 이름을 그대로 지역명을 사용하고 있다.
알래스카 하와이 편입
당시 러시아 영토였던 알래스카까지 매입했다. 러시아와 영국은 사이가좋지 않았고 당시 크림 전쟁의 여파로 재정이 어렵던 러시아는 미국에 알래스카를 팔아버린 것이다.
쓸모없는 땅이라 여겼던 알래스카에서 2017년 3월 약 12억 배럴이 매장된 것으로 추정되는 유전이 발견되었고 현재까지도 엄청난 양의 천연자원을 품고 있는 미국의 보물창고 알래스카이다.
하와이도 역시 독립국이었으나 선교사를 중심으로 일어난 미국과 합병운동으로 미국에 병합 각각 알래스카와 하와이는 미국의 49번째, 50번째 주가 된다.
미국인은 명백한 운명을 타고났으며 운명에 따라 영토를 넓혀가야 한다는 주장하는 그림이다.
골드 러쉬/ 유령춤과 운디드니 학살 사건 [벌거벗은 세계사 43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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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2] 멕시코 영토였던 캘리포니아, 텍사스는 어떻게 미국 땅이 되었나? 골드 러쉬 서부 개척을 본격화한 사건이 벌어진다. 1848년 1월 캘리포니아 새크라멘트 광산에서 목욕을하던 목수가 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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