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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V 방송 리뷰

김포공항 테러 사건 범인은 누구? 왜 은폐하려 했나?

by 365 ^^ 2021. 11.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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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포공항의 역사 
우리나라 유일의 비행장이였던 김포 비행장에 현대식 종합청사가 있는 김포공항을 세웠다. 1971년 김포공항 국내선 청사 증축되어 이때부터 본격적으로 공항의 모습을 갖추게 된다.  이후에 인천에 공항이 세워지기 전까지 국제공항으로써 대한민국의 관문이었다.

 

 

김포공항 테러 사건

 

1986년 아시안 게임 6일전 김포공항에서 테러 사건이 벌어진다. 1986년 김포공항은 제1의 국제공항으로 해외를 오가는 사람들로 북새통이었다. 당시 김포공항 3층이 출국장으로 유동인구가 상당히 많은 장소였다.

 



9월 14일 오후 3시 12분 김포공항 1층 쓰레기 통에서 폭탄이 터지는 사고가 발생했다. 이 폭발은 수류탄 7개가 터진 것과 같은 폭발력으로 굉음과 살상력까지 매우 위협적이었다.

 

폭탄이 터진 위치 

 

폭탄이 터지고 난 직후의 모습
아수라장이 된 공장모습
무고한 시민들의 피해

 

사망자들 

1층에서 일가족이 배웅을 하는 중이었고 폭발 후 5명이 사망 33명 부상자가 있었다. 사진 속의 일가족은 모두 사상자 명단에 속해 있었다.

 

일가족 모두 사상자에 속해있다. 

 

당시  폭탄이 담겨있는 쓰레기통 위에서 천장 보수 작업을 하고 있던 공항 관리공단 직원 유주환씨가 있었다. 그의 바로 밑에서 터진 폭탄을 흡수하면서 폭발력으로 먼 곳으로 튕겨져 나갔고 순식간에 폭탄속 쇠구슬이 퍼져나가면서 몸에 100개 이상의 쇠구슬이 박혀있었다. 하반신은 이미 떨어져 나간 상태였다. 

 

유동인구가 많은 곳에서 발생한 테러로 쓰레기통 자체가 철제로 만들어져 파편되어 살상력을 올렸다. 이 사건 이후 공항의 모든 쓰레기통은 투명한 플라스틱통으로 바뀌었다.

 

 김포 공항 테러 이후 철제 쓰레기통에서 플라스틱통으로 바뀜 

 

폭탄은 무엇? 
50M 이상 쇠구슬 파편이 날아가는 것으로 컴포지션 폭약으로 추정한다. 컴포지션은 군용 폭약의 한 종류로 점토성 재질이라 탈부착이 가능하다.

 

c4 컴포지션 폭탄

 

초동 수사 엉망

사건 현장은 폴리스 라인(통제선)이 없었다. 사건 현장 보존이 전혀 이루어지지 않았다. 또한 통제되지 않는 사람들도 보인다. 정부측 사람들,  청소부, 등 사람 또한 전혀 통제가 되지 않았다. 더 황당한 것은 사건 수사를 맡은 사람들이 사건 2시간 만에 사건현장을 소방 호수로 물청소를 해버렸다.

 

두 시간만에 물청소 되고 있는 테러현장

 

 

김포 공항 테러 사건이 알려지지 않았던 이유

 

6일 후에 아시안 게임을 유치해야 되는 상황이었기 때문에 김포공항 테러의 초동수사가 미흡했고 사건을 덮기에 급급했다. 당시 각국 선수들이 입국하던 상황에 한쪽에서는 폭탄이 터져서 테러 현장을 은폐하기 바빴고 1986년 당시 남한은 아시안 게임이 첫 국제 행사였다. 그러다 보니 국제 행사를 잘해야 한다는 압박감이 강했고 2년 뒤에는 올림픽까지 열리는 나라에서 테러가 발생했다고 하면 국제 대회에 흡집이 될까 은폐하려 한 듯하다.

김포공항 테러가 나고 하루 뒤에 기사가 모두 사라져버렸다. 당시 국제올림픽 위원장 '사마란치' 가  입국을 했기 때문이다.  

IOC 위원장 후안 안토니오 사마란치 위원장 김포공항 테러 다음날 방문

 

영구미제사건으로 남음 

그럼에도 초동수사가 미습했던 것은 명백한 잘못으로 희생자가 5명이나 있었고 1년 동안 범인을 찾지 못한체로 폭탄이 컴포지션C4라는 것만 밝혀내고 수사 결과를 범인 및 목적도 밝히지 못하고 영구 미제사건으로 마무리 지었다. 당시 컴포지션 C4 폭탄은 이슬람 테러단체와 북한에서도 사용했던 폭탄으로 북한과 이슬람 테러단체의 소행으로 추측된다고 보도되었다. 

 

 

김포공항 테러 사건 범인은 누구? 

테러 발생 23년 후인 2009년 별안간 김포공항 테러리스트의 정체가 밝혀졌다는 보도가 나온다. 당시 정보를 스위스에서 일하던 일본인 기자에게서 입수한 첩보했다고 한다. 옛 동독의 정보기관인 슈타지를 통해 알게 된 김포공항 테러의 전말이 담겨져 있었다고 한다. 김포공항 테러를 기획, 실행한 인물은 사막의 독사라 불리는 '아부니달'이라는 인물이라고 일본인 기자가 밝혔으나 사실여부는 확인되지 않았다. 

 

슈타지


테러리스트 아부 니달은 평소에 김일성과 친분이 있던 인물로 일본 기자의 주장은 김일성이 아부니달에게 테러를 사주했다는 것이다.  당시 북한과 팔레스타인은 우호적 관계에 있었다.

 

 

팔레스타인 지도자 아라파트 의장의 죽음에 북한은 3일간 애도를 표명하기 할 정도로 아주 친밀한 관계였다. 아라파트는 북에서 영웅 칭호도 받고 수차례 평양을 방문해 김일성에 대한 존경을 표현하고 김일성의 제국주의 반대에 찬사를 보냈다.  북한은 팔레스타인에 무기, 자금을 지원해줬을 뿐만아니라 북한의 공군 파일럿을 파견하며 파레스타인을 적극 지원했다.

팔레스타인 지도자 아라파트 의장과 김일성
북공군 팔레스타인에 지원 



당시 (PLO)팔레스타인 해방기구는 테러리스트의 온상이었다. 당시 세계적으로 일어나는 테러에 거의 모두 참여할 정도로 악명이 높았던 조직이었다. 아부 니달은 2002년 이라크에서 이미 사망했기 때문에 진범이 나왔다고 해도 의혹은 여전하고 관심에서는 멀어져 있던 김포공항 테러 사건이다.

 

아부 니달 사망

 

김포공항 테러 사건 사망자 추모비
5명의 사망자는 사건 1년 뒤에 임진각에 추모비가 세워진다. 오빠와 어머니를 배웅가러갔던 일가족 4명과 천장 작업하던  유주환씨를 포함한 5명의 고인의 이름이 임진각 추모비에 새겨져 있다.

 

임진각 추모비
고인의 이름이 새겨져있다.


김포공상 테러사건은 아직까지 공식적으로 영구 미제 사건으로 기록되어 있다. 

 

[출처 이제 만나러 갑니다 51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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