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0년대 헝가리팀은 매직 마자르(헝가리 민족) 라고 불리던 세계 최고의 축구팀이였고 그 중심에는 최고의 선수 푸스카스가 있었다. 페렌츠 푸스카스는 헝가리 역사상 최고의 공격수로 평가되는 선수로18세의 나이에 국가대표팀으로 뛰었다.
▶1952년 헬싱키 올림픽 축구 금메달
▶1953년 잉글랜드 vs 헝가리
영국 축구의 성지 웸블리 스타디움에서 열린 축구경기에서 당시 52년간 단한번도 진적이 없는 안방 무패신화의 잉글랜드를 상대로 푸스카스가 2골을 넣으며 6대 3으로 완파한다. 이때 푸스카스가 사용했던 기술이 드래그 백 기술 , 다가오는 수비수의 태클을 피해 공을 살짝 뒤로 빼는 기술을 시전하며 그를 막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푸스카스 상의 유래
축구기술 중 드래그 백 기술은 지금이야 너무 흔한 기술이나 드래그 백 기술을 최초로 창시했던 프스카스가 이 기술을 선보일때만 해도 환상적인 기술이라 극찬했고 이것이 푸스카스 상을 만드는 결정적 계기가 된다.
푸스카스의 이 사람의 이름을 딴 '푸스카스상' 도 있다. 2009년 이후 해마다 9월 쯤 푸스카스상을 수여하고 있다. 푸스카스 상은 1년 동안 넣은 전세계 모든 골 가운데 가장 멋지게 넣은 최고의 멋진 골을 넣은 선수에게 수여하는 상으로 2013년 즐라탄의 태권도 바이시클킥, 2019년 조리의 아크로바틱 오버헤드킥 , 2020년 우리나라의 손승민 선수가 수상했다.
▶1954년 스위스 월드컵 준우승
이런 헝가리팀과 악연이 바로 한국팀이였는데 우리나라 첫 월드컵 도전기(1954년 스위스 월드컵)에서 한 경기에 100개가 넘는 유효슛 타격을 받으며 0:9로 완패했다. 이 경기는 아직도 깨지지 않는 월드컵 본선 최다 점수차 승리 기록이며 공동기록으로 1982년 월드컵 헝가리 엘살바도로 경기에서 10-1 이긴 경기가 있다.
1954년 월드컵, 최초 한일전 승패가 아닌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은?
▶부다페스트 혼베드 FC에서 리그 5회 우승
푸스카스는 1956년까지 헝가리 리그에서 367경기 출장 380골을 기록하며 부다페스트 혼베드는 푸스카스를 기념하며 그의 등넘버 10번을 영구 결번하기로 결정한다.
1956년 이후에 헝가리는 헝가리 혁명이 일어나 소련이 이를 무력진압하게 되면서 유럽 대항전으로 스페인에 있던 푸스카스 축구팀은 헝가리로 돌아가지 않고 스페인으로 망명신청을 하면서 국가대표직에서 물러나게 되고 이때부터 헝가리 국가대표팀도 내리막길로 접어들게 된다.
레알 마드리드 입단
이후에 푸스카스는 31살이 되어서야 스페인의 명문 레알 마드리드에 입단, 대부분의 선수 전성기가 지났을 나이인 31세에 1958년에 레알 마드리드에 입단해 레알마드리 전성기를 이끈 인물이다.
푸스카스 별명 특기
그의 또 다른 별명은 '질주하는 소령' 으로 (The Galloping Major) 처음 입단한 프로팀이 국방부에 매각되면서 선수들에게 군대 계급이 부여되었는데 푸스카스에게는 소령계급이 주어져서 생긴 별명이다. 그의 최대 무기는 왼발킥으로 '악마의 왼발'이라 불린다.
그러나 그의 전설의 왼발이 만들어진 계기는 어린시절 넉넉하지 않은 집안형편으로 아버지가 오른쪽 축구화만 선물해줬는데 어린 푸스카스는 축구화가 닳지 않도록 하기 위해 왼발만 사용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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