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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V 방송 리뷰

철종 철인왕후 이야기 (김좌근,철종가계도)

by 짱신나^^ 2021. 1.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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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탐사지: 예릉, 강화도 

주제: 철종과 철인왕후 이야기

 

 

철종은 세도 정치가 절정인 시기에 왕이 된다. 정조가 승하한 이후, 안동 김씨가 세력을 잡으며 순조-헌종-철종 순으로 세도정치를 이어가고 있던 시기였다. 
 
철종의 군복입은 어진으로 1/3이 불에 타 소실된것을 복원한 것
 
 
철종 강화도 유배된 이유
 
조선 25대 왕 철종(=이원범)은 사도세자의 서자이자 정조의 이복 동생이였던 은언군의 손자로 1831년 한성부에서 태어났다. 사도세자의 증손자인 셈. 
 
하지만 철종의 할아버지 은언군이 홍국영과 역모를 꾸몄다는 혐의를 받아 사사되면서 철종의 아버지 이광을 비롯한 식구들은 강화 교동도로 유배를 가게 된다. 이때 아버지 이광은 교동도에서 무려 40년 넘게 농부로 살다가 1830년 귀양에서 풀려나 한양에서 삶을 마감한다. 

 

그러나 1844년 민진용 등이 철종의 큰형인 이원경을 왕으로 추대하려는 모의가 발각되면서 이원경은 사사되고 다시 가족들은 강화도에 유배된다.

 

이렇게 철종 이원범은 강화에서 농사를 짓고 나무를 팔아 생계를 이어가면서 살고 있었다. 

 


 강화도 용흥궁 
 
 
철종(1831∼1863)이 왕위에 오르기 전 19세까지 살았던 집으로 철종이 왕이 되기 전 살던 초가집을 왕이 된 이후 다시 집을 짓고 용흥궁으로 이름을 붙였다. 
 
인천광역시 유형문화재 제20호

 

 

용흥궁 안채 모습 

 

 

 

 
 
 
 
강화도령 이원범 왕이되다. 
 
조선의 24대 왕 헌종이 후사 없이 죽자 왕실의 최고 어른인 대왕대비 순원왕후에게 권력이 넘어가고 자신과 안동 김씨 가문의 꼭두각시가 될 수 있는 사람 중 왕이 될 사람을 물색하게 된다.

 

결혼을 하지 않아 처가없고 외가 또한 별볼일 없고 친가 쪽도 아무도 없는... 왕족이지만 강화도에서 평범하게 살던 소년 이원범을 후계자로 낙점한다.

 

<강화도 행렬도>

 

그렇게 강화도령 철종은 19세가 되는 해 왕위에 오르게 된다. 그러나 궁궐의 법도와 학문을 익히지 못하여 처음에는 순원왕후가 수렴청정을 한다. 그의 아내 철인왕후 또한 안동 김 씨였기 때문에 철종은 무기력한 허수아비 왕으로 살아간다. 

 
이렇게 순조-헌종-철종 대까지 세도정치가 100년간 이어지면서 삼정이 문란해지고 탐관오리의 횡포와 수탈이 극에 달해 백성들의 생활은 더욱더 어려웠다. 이로 인해 1862년 진주민란((=임술농민봉기))을 시작으로 대규모 민란이 전국으로 확대되고 철종때 동학 또한 등장한다. 철종은 왕위에 오르고 14년만인 33세에 이질을 앓다가 짦은 생을 마감한다. 
 

 

철인왕후 
 
철종의 정비 철인왕후 김씨(1837년~1878년)  

신혜선의 철인왕후 역

 

아버지는 세도정권의 핵심 인물 안동 김씨 영은 부원군 김문근,어머니는 이용수의 딸이었다. 김씨는 1838년(헌종 3년) 한양 순화방 사저에서 태어났고 어렸을 때부터 효심이 깊고 말수가 적어 희비를 얼굴에 잘 드러내지 않을 만큼 속내가 깊었다고 한다. 

 

이런 김소용을 같은 가문이자 순조비인 순원왕후가 1851년(철종 2년) 15세의 나이에 간택하고 김 씨는 왕비가 된다.

 

 

이렇게 왕비가 된 철인왕후(김소용)는 비록 안동 김씨 가문의 왕비였지만 친정을 두둔하지 않고 정치에도 관여하지 않았다고 한다. 

 

 

 

 

* 순조 이후 조선 왕실의 왕비 순서는 순원왕후, 신정왕후(헌종의 비), 효정왕후(헌종의 계비), 철인왕후, 명성황후 이렇게 진행된다. 

 

 

순원왕후 

 

순원왕후(1789~1857)는 순조의 아내, 정조가 총애했던 김조순의 딸이자 효명세자(*'구르미그린 달빛'에 박보검 역할)의 어머니로 아들이 일찍 죽자 헌종을 즉위시키고 헌종~철종에 걸쳐 10년 동안 수렴청정을 하며 안동 김씨 세력 확장에 중요한 기여를 한 인물이다.

 

<철인왕후> 순원왕후 역

 

김좌근(1797~1867)


순원왕후의 동생으로 안동김씨 세력의 실질적 인물로 세도정치의 핵심인물이다. 42살에 급제를 하고 4년 만에 판서직 중 최고의 자리인 이조판서(정2품 벼슬로 지금의 장관급)가 되면서 인사권을 행사하며 철종 때 영의정을 3번이나 역임한다.  

 



철종 때 비변사가 핵심기구로 관료가 110여명 중 26명이 안동 김씨 친인척으로 중앙의 요직을 차지하며 이들이 비변사를 장악하고 권력을 독점하고 있었다.  

김조순 가계도


# 3대에 걸쳐 나라를 좌지우지 했다.(김상헌-김조순-김좌근) 김상헌는 병자호란 때 남한산성 속 절개의 상징이었던 인물로 정조가 이런 김상헌의 후손인 김조순을 총애해 그의 딸(순원왕후)을 자신의 아들 순조와 결혼시킨다. 정조가 죽고 어린나이에 순조가 즉위하자 그때부터 김조순은 정치를 휘두르며 안동 김씨 세도정치의 시작을 알린다. 그런 김조순의 아들이 김좌근이다. 

 

 

 

신정왕후(=조대비)

효명세자의 부인이자 헌종의 어머니이며 순원왕후의 며느리, 풍양 조 씨의 대표인물 신정왕후(=조대비)가 살아 있었으며 헌종의 계비 효정왕후도 살아 있었다. 

 

철인왕후 속 조대비

 

조대비로 나오는 신정왕후가 순원왕후와 대립각으로 가끔 선왕(=헌종) 얘기를 하는데 순원왕후는 철종 이전의 헌종 (조선에서 가장 어린 나이에 왕이 됨) 때도 대리청정을 했다. 원래 헌종의 어머니 신정왕후가 수렴청정을 해야 하는데 시어머니(=순원왕후)가 살아있어 권력은 안동 김 씨로 유지되고 있던 구조이다. 

 

그러나 조대비로 결국 권력은 이동한다. 신정왕후는 조선 왕조 왕비 중 83세까지 제일 장수한 왕비이다. 또한 시어머니 순원왕후가 죽고 대왕대비가 되면서 흥선대원군의 아들 고종(=명복)을 왕으로 지목한 사람이기도 하다. 

 

 

 

철인왕후는 이렇게 여러명의 대비들을 극진히 모셨다고 한다. <출처 나무 위키> 

 

순원왕후 (오른쪽)

 

철인왕후는 1858년(철종9년) 원자 용준을 낳지만 원자는 태어난 지 6개월 만에 죽게 되고 철종과 후궁들 사이에 5남 6녀를 뒀지만 모두 어린 나이에 죽게 되면서 1864년 철종이 죽고 조선 왕조의 후사는 또 한 번 끊어진다. 

 

 

 

철종 가계도
 

 

철인왕후 조화진역

귀인 조씨

철인왕후 드라마에 등장하는 귀인 조씨는 풍양 조 씨 신정왕후와 같은 세력으로 나오지만 역사 기록에는 궁녀 출신으로 가족에 대한 기록이 없고 철종과의 사이에 2명의 아들이 있었으나 모두 어린 나이에 죽고 대부분 후궁의 기록이 그렇듯 아들 2명을 낳았다는 기록 이외에는 별다른 기록이 없다.  귀인 조 씨는 25세의 나이에 죽고 귀인 조 씨의 무덤 또한 철종이 묻혀있는 서삼릉 후궁 묘역 내에 있다.

 

 

 

 

 

 

 

 

 

철종과 철인왕후의 왕릉 

예릉 

 

철종 사후 대왕대비 신정왕후 조씨가 흥선대원군의 아들 고종(=명복)을 자신의 양자로 들여 새로운 왕으로 추대하고 철인왕후는 고종의 친부 흥선대원군의 집권 아래 대비로서 평탄한 여생을 보내다가 1878년(고종 15년) 5월 창경궁 양화당에서 폐결핵으로 42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난다. 

 

 

철종과 철인왕후가 묻혀있는 예릉은 현재 경기도 고양시 덕양구에 위치하고 있다. 

 

서삼릉(희릉, 효릉, 예릉) 이 있다. 

 

 

 

 

 

 

[참고 채널:  tvn 철인왕후, 유튜브 역사 패치, 알쓸신잡, 네이버 지식백과, 위키피디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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