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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V 방송 리뷰

조총련이란? 조총련 활동 및 아쿠자 관계

by 짱신나^^ 2021. 12. 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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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총련이란? 

일본 내에 재일교포 단체 2개가 존재하는데 조총련 소속은 일본에서 북한 국적을 가진 교포들이 만든 친북 단체이고 민단 소속의 교민들은 한국 국적의 교포들이 만든 친한 단체이다. 조총련은 재일본조선인총연합회가 정식 명식이고 이것을 줄여서 조총련이고 한다. 일본사람들은 총련이라고 부른다. 

해방이후 국적을 선택해야 하는데 일부는 북한을 선택해 조총련에 가입 어떤 사람은 한국을 선택해 민단에 가입했다. 조총련의 초기 의장은 한덕수이고 여러 단체를 조총련으로 통합한 인물이다. 통합 후 조총련의 성격이 친북 성격이 더욱 확고해진다. 60~70년대 까지 북한은 조총련을 많이 지원했기때문에 당시는 조종련 세력이 훨씬 컸다. 그래서 일본내 거주하는 많은 교포가 조총련에 가입되어 있다가 90년대 이후부터 규모가 작아졌다.

 

한덕수
한덕수

 

 

 

조총련 활동

 

규모가 작아져 조총련의 최근 활동은 이런것이 있었다.

 

조종련의 인터넷으로 사람 모습 방법
조종련의 인터넷으로 사람 모습 방법


조총련계 고등학교 학생들은 북한과 자매결연으로 일년에 2번 북한 평양을 방문한다. (4월 15일 김일성 생일, 2월 16일 김정일 생일 방문) 북한 학생과 수업을 같이 하기도 한다.

 

조총련 수학여행 장소 북한주체사상 탑
북한 수학여행 장소
북한 수학여행 장소
묘향산 백두산 천지도 코스


조총련이라고 들었을때 잘 모르는 사람들은 향우회 재일교포단체 쯤으로 알고 있으고 조총련도 스스로 그렇게 선전하는 이미지이다. 그러나 일반 동포들이 모르는 어둠의 활동이 많이 밝혀졌다. 조총련 간부였던 사람들이 폭로책을 많이 썼기때문이다. 나이가 들어 양심의 가책을 느낀 간부들이 상세하게 자신들이 했던 일에 대해 적었다. 

일본내 북한과 접선 포인트가 기록되어 있고 실제로 많은 북한공작원들이 조총련으로 위장을 많이 한다.  결정적으로 조총련이 펴낸 60년 활동일지에 실린 내용이 있다.

 

조총련 활동일지 내용
조총련 활동일지 내용
조총련이던 분의 소설책
조총련이던 분의 소설책

 

이런 조총련의 활동으로 Kal기 폭파 사건과 연루되어 있고 그 보다 전에는 박정희 암살 시도가 결국 육영수 여사 피살사건으로 이어졌는데 당시 육영수 여사를 피격했던 문세광이 배후에 조총련이 있음을 증언한 바 있다. 당시 박정희 대통령은 유화정책으로 조총련 고국 방문을 추진한다. 이것은 효과가 컸다. 3박 4일 일정으로 한국을 방문 한국의 곳곳을 보게 되고 이들이 배웠던(=북한과 똑같은 내용) 한국의 이미지는 헐벗고 못사는 나라로 그려진 것이 사실이 아니라는 이미지를 바꾸는데 충분했다.

 

당시 박정희 대통령은 조용필의 <돌아와요 부산항에>를 개사하면서까지 조총련을 맞이 했었다.
당시 박정희 대통령은 조용필의 <돌아와요 부산항에>를 개사하면서까지 조총련을 맞이 했었다.

 

조용필의 <돌아와요 부산항에> 원곡 및 사연은? 

 

 

대표적인 조총련 산하 공작기관으로 '낙동강' 이 문세광 사건과도 관련이 있는 단체로 낙동강의 목표는 일본인 납치 목표와 함께 북한 공작원의 일본 침투 조력이 있었다. 

 

조총련의 자금 

문세광은 조총련으로부터 2번의 자금지원까지 받았는데 50만엔, 80만엔 총 130만엔으로 70년대 기준 한화 1300만원 가치이다. 70년대 조총련은 막강한 힘을 보유한 단체로 그 당시에는 돈 뿐만아니라 일본 정치인에게 로비도 많이 했다.  1980년대 조총련 본부자체의 자산 규모가 수입 1조 원대였다. 90년대까지 축적한 조총련의 자산규모는 75조원에 이르고  조총련이 북한에 지원하는 돈이 수천억에 달한다. 


북한의 1년 예산 규모는 약 9조~10조로 추산되는데 그 중에 조총련 자금이 큰 비중을 차지한다. 조총련의 자금은 야쿠자와 관련이 있는데 야쿠자는 우리나라의 조폭과는 차원이 다르다. 조총련계의 자금원으로 빼놓을 수 없는 것이 야쿠자들이고 야쿠자들의 주요 사업이 도박장이다. 

 


조총련, 야쿠자 긴밀한 관계

조총련은 만든 한덕수는 1995년 2001년까지 조총련 의장직을 맡았는데 사실 한덕수 이전의 조총련은 유화적이고 온화한 단체였으나 한덕수가 권력을 잡으며 조총련의 성격이 바뀌게 된다.  조총련이 만들어지기 이전부터 조선인을 보호하는 폭력배가 존재했었는데 그 사람들이 한덕수를 지지하면서 의장이 되었고 한덕수를 필두로 폭력배와 세력을 넓혀가기 시작한다.

 

일본사회에서 당시 한국인이라고 쓰면 취업이 힘들 정도로 한인은 차별을 받고 있었기 때문에 한덕수는 돈만 되면 불법활동도 한다는 공격적인 방침으로  자금을 형성해 김정일의 신임을 얻게 되고 한덕수 자체는 북한 서열 4위까지 등극하게 된다.

 

한덕수 북한 서열 4위 등극
한덕수 북한 서열 4위 등극


이때 조총련은 야쿠자를 끌어들이고 1986년 본격적으로 일본의 도박, 사채 시장을 조총련이 장악하며 70~80년대 세력을 확장, 북한에 엄청난 자금을 보낼 수 있었다.  

 

<출처 이만갑 5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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