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전글] 힌두교 역사: 인도 카스트 제도 /소와 갠지스강을 신성시하는 이유?
대체로 인도 사람들은 윤회를 믿었다. 전쟁에 죄를 많이 지어서 오염된 사람은 낮은 카스트로 환생하고 전쟁에 좋은 일을 많이 한 사람은 높은 카스트로 환생한다고 가르쳤다. 그래서 낮은 카스트의 사람이 다음생에 높은 카스트로 태어나려면 브라만에게 철저히 복종을 해야 한다고 가르친 것이다.
부처의 등장
또한 브라만과 끄샤뜨리야가 힘을 합쳐 평민과 노예들로부터 세금을 걷고 노동력을 착취했다. 그리고 자신들의 권위를 더 높이기 위해서 대규모로 소를 도살하며 제사를 치르기도 했다. 기원전 6세기에는 한 번에 제사에 죽인 소가 1만 4,400마리나 되었다. 농사가 중요했던 시대에 많은 소가 사라지면 농사짓기가 어려워지면서 빈곤과 굶주림에 시달리게 되었다. 이때 브라만이 추구하는 가치관과 반대되는 인물이 등장한다. 바로 부처 고타마 싯타르타이다.
싯타르타는 인도 사끼야 왕국의 왕자로 태어났고 끄샤뜨리야 계급이었다. 이후 인생의 무상함을 깨닫고 출가한 후에 35살에 깨달음을 얻고 부처가 된 인물이다.
부처의 두 가지 가르침은?
부처는 세상은 고통이다. 그래서 버리고 나가라고 했다. 그 부처의 첫 번째 가르침이 무소유였다. 브라만 계급이 사회를 독점하던 인도 사회에서 브라만과는 정반대되는 입장에 선 것이다.
당시 브라만 최고 계급들은 제사를 명목으로 소를 바치게 하고 재사후 남은 소와 재물은 자신들이 차지하며 다른 계급의 재산을 탈취하였는데 이것을 반대한 것이다.
두 번째 가르침
당시 제사를 위해 소를 바치면 농업에 큰 피해를 받았다. 부처는 제사를 위한 살생을 못 하게 한 것이다. 부처는 힌두교의 오랜 전통에 정면으로 반대한 것이다. 이렇게 부처는 무소유, 제사 반대, 살생금지를 통해 불평등의 고리를 끊고 세상사람들은 모두 평등한 존재라고 가르쳤다.
바이샤가 재산을 쌓으면 브라만이 빼았아 갔기 때문에 불평등한 카스트 제도에 특히 반발을 했다. 바이샤의 거센 반발로 상황이 심상치 않게 돌아가자 부처의 가르침으로 설파된 제사로 인한 살생 금지를 브라만 계급이 받아들인다. 그래서 소 대신에 채소, 식용유 곡식등을 제물로 바치게 된 인도이다.
신성한 상징물 소
그리고 브라만은 소에 대해서 한 가지 조치를 내린다. 소 안에는 힌두교의 모든 신들이 들어있다고 하며 소를 가장 성스러운 동물로 승격시킨 것이다. 그래서 그 이후에 지금까지도 인도인에게 소 특히 암소는 신성한 상징물이 된 것이다.
그리고 이 신성한 암소를 보호하는 것을 기념하는 축제를 만들었다. 현재 인도 델리에서는 법적으로 소의 도축 및 소비를 금지한다. 단 버펄로(물소)는 가능하다고 한다.
디왈리 축제
인도에서 가장 큰 명절 가운데 하나인 '디왈리'이다. 디왈리는 불을 밝혀 풍요를 기원하고 감사의 기도를 올리는 힌두교 최대의 빛 축제이다. 이 축제에서 암소의 똥을 몸에 바르면 병이 사라지고 건강해진다고 믿어서 축제때 이런 행사를 하는 곳도 있다. 또한 이 축제에서 달리소에 밟히면 행운이 온다고 믿기도 했다.
이렇게 힌두교는 반대하는 세력이 나오면 싸우기 보다는 받아들이는 유연한 모습을 보였다. 인도 사회 내에서 더욱더 다양한 인종과 신들을 포용한다. 브라만은 자신들의 권력을 지킬 새로운 방법을 찾기 시작한다.
[벌새 11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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