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조 이성계에게 신덕왕후 강씨가 있었다면 이방원에게는 원경왕후 민씨가 있었다. 정세를 판단하는 통찰력으로 이방원을 왕위에 올리지만 원경왕후는 이후의 결말이 아름답지만은 않았다.
원경왕후 민씨는 누구인가?
원경왕후 집안
원경왕후는 고려 말 대표 명문가 여흥 민씨 민제의 딸로 이방원보다 2살 연상이다. 1382년 우왕 8년때 이방원과 결혼한후 4남 4녀를 두었다. 원경왕후의 아들이 세종이다. 또한 세종의 총명한 DNA는 외가로부터 물려받았다고 볼수도 있는 것이 원경왕후 여흥민씨 가문은 고려시대 대대로 과거 급제자를 배출한 집안으로 원경왕후의 아버지 민제는 어려서부터 총명함이 남달라서 어떤 책이든 한번보면 기억했다고 한다. 원경왕후에 대한 기록을 보면 전형적인 현모양처의 모습으로 그녀는 아름답고 총명하고 인자하기까지 했다.
원경왕후와 태종의 갈등
1400년 11월 태종 이방원과 원경왕후 민씨는 왕좌에 오른다. 그러나 대업을 이룬 기쁨도 잠시 즉위한지 1년도 되지 않아 태종은 후궁을 들이기 시작한다. 이런 상황에 원경왕후는 분노한다. 후궁 문제를 둘러싼 태종과 원경왕후의 갈등은 깊어갔다. 특히 원경왕후의 분노를 일으킨 사건은 원경왕후의 시중을 들던 궁녀를 후궁으로 삼아버린 것이다.
정종 부인 10명이었고 성종, 중종 부인 12명이었던 조선사회에서 후궁을 들이는 일이 문제가 되지 않았을 것이라 생각할수도 있으나 여성의 지위가 높았던 고려시대의 여인이었던 원경왕후는 자신의 주장을 강하게 드러낸다. 이에 태종은 폐출을 언급하면서 분노했다.
원경왕후의 분노 이유
사실 이방원을 왕으로 만든 사람이 원경왕후라고 할수 있다. 조선 건국 이후 왕자들을 중심으로 사병을 보유하고 있었는데 사병을 보유하면 언제든지 왕실을 겨눌수 있다고 판단해 정도전이 왕권 강화 목적으로 사병을 혁파한다. 이때 무기를 반납해야 하는데 원경왕후 민씨가 자신의 친정집에 무기와 사명을 숨겨 놓았고 남편 이방원이 훗날 왕자의 난을 일으켜 정도전을 기습하고 왕권을 차지하는데 핵심 역할을 했다.
1차 왕자의 난때 태조가 위독하고 해서 모든 왕자와 중신들이 근정전 서쪽 행랑에 모여있었는데 이때 원경왕후가 (자신이 많이 아프다고 남편을 불러들여 이방원과 모의를 해서 왕자의 난을 일으키게 된 것이다. 원경왕후 민씨와 처남들(민무구(첫째), 민무질(둘째)의 활약으로 정적 정도전을 제거하고 권력을 잡은 이방원이었다. 이로 인해 태종이 왕이 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던 원경왕후이다.
또한 2차 왕자의 난때 자신을 죽이려 했던 친형 이방간과 싸우기를 망설이는 이방원을 설득한 사람도 원경왕후으로 위기의 순간마다 이방원에게 도움을 줬던 인물이고 원경왕후는 이방원에게 조강지처이자 동지였다.
원경왕후와 태종의 파국
모든 걸 걸고 이방원을 도운 민씨 집안인데 둘의 관계를 파국으로 이끄는 결정적 사건이 벌어진다. 하루 아침에 일등공신에서 죄인이 된 원경왕후의 동생들이자 태종의 처남들 민무구(첫째), 민무질(둘째) 형제와 또 다른 처남 민무휼. 민무회 형제에게도 압슬 고문을 가했고 1410년 민무구, 민무질 형제를 유배지에서 사약을 내리고 1416년 민무휼, 민무회 형제는 유배지에서 목 매달아 자살하게 한다. 4형제모두 비참하게 생을 마감했다.
민무구, 민무질 형제의 죄목은 어린 왕자(태종의 맏아들) 양녕대군을 이용해 권력을 잡으려 했다. 태종이 아들 양녕에게 선위를 표하니 민무구, 민무질의 얼굴빛이 환하게 밝았다는 이유다. 표정을 보고 역모의 마음을 읽었다는 것이다. 이에 태종 종친 대표 이화를 이용해 민무구, 민무질의 처벌에 동의하는 상소를 올려 동의를 얻어 처벌하는 형식으로 제거했다.
또한 죄없는 민무휼. 민무회에게 죄를 뒤집어 씌워야 했기에 이런 상황에서는 본인들의 자백밖에 없었다. 그렇기 때문에 가혹한 고문(압슬)을 통해 자백의 방식으로 처남들 스스로 죽을 수밖에 없는 상황을 만든 것이었다.
이렇게 원경왕후 민씨 집안은 태종에 의해 모두 죽임을 당한다.
원경왕후의 죽음 (1420년 8월 18일)
태종은 후에 원경왕후에게 용서를 구한다. 원경왕후 폐비 논의가 있을때도 폐비를 시키지 않고 세종에게 양위를 한 상태에서 원경왕후 민씨가 병환이 들자 태종은 원경왕후를 매일와서 보고 병문안을 했고 원경왕후가 사망하자 30일동안 고기반찬을 먹지 않고 흰옷을 입고 소찬만 먹으며 지냈고 태종은 원경왕후 죽음 2년 뒤 같이 세상을 떠난다.
태종과 원경왕후는 살아서는 같이 보고 살지 않았으나 죽어서는 같은 능에 묻힌다. 서초구 내곡동에 있는 헌릉이 태종과 원경왕후의 합장릉이다.
[153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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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종 이방원 가계도 속 몇명을 왜 죽였나? (이방원 살생부 리스트)
세종대왕 어린시절 시련들.. (탄생~ 즉위 22살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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