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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V 방송 리뷰

아프리카 바로알기 (오해와 편견들)

by 365 ^^ 2021. 7. 13.

아프리카 하면 떠오르는 이미지는 다양한 부족, 커피, 사파리, 사하라 사막, 기아, 초원 등이 연상되지만 남아공같은 나라는 지하자원이 풍부한 부자나라이다. 세계4위 다이아몬드 생산국이다. 한편 석유 수출국인 나이지리아도 있다. 아프리카는 2011년 남수단이 독립되면서 55개의 국가가 있다. 시간이 지나면서 독립국이 증가하고 있고 인종도 다양한 국가이다.

 

아프리카 국가들

 

아프리카 인종

인류학에서 반투인(bantu 순수한 아프리카 흑인)족이 주로 사하라 사막 이남에 거주하고 있다. 사하라 사막 이북에는 반투인보다는 밝은 피부의 인종들이 거주 하고 있다. 백인계통의 북아프리카의 토착민으로 베르베르(Berbers)족이라 부른다. 베르베르인으로 유명한 사람은 지네딘 지단, 그룹 퀸(Queen)의 보컬 프레디 머큐리 탄자니아 출신, T사 일론 머스크 남아공 출신 아프리카인이 있다.

 

 

 

아프리카에 대한 편견

 

‘문명을 이루지 못한 진화가 덜 된 곳 ‘

‘스스로 자립할 줄 모르는 사람들’

 

아프리카 문명에 대한 오해 짚어보기

 

▶아프리카 문명에는 이집트가 있으나 서구의 관점에서 세계 4문명인 이집트 문명을 서아시안인들이 일군 것으로 주장하려 하고 있다.

 

▷고대 이집트인과 수단지역의 흑인들은 같은 문명을 공유하여 이집트 문명을 특징지어 구분할수 없다. 기원전 5세기 경 그리스 역사학자들이 남긴 기록을 보면 이집트인들은 검은 피부에 곱슬머리에 흑인으로 묘사되고 있다.

 

 

▶항해술하면 일반적으로 떠오르는 나라는 포루투칼, 스페인이 있다. 15세기 지리상의 발견으로 시작된 대항해 시대가 열리면서 아프리카 항로를 개척한 엔리케왕, 아메리카 대륙을 발견한 콜럼버스 등 세계사를 주도하게 된 일반적인 서구 문명의 항해 역사이다.

 

▷콜럼버스가 대서양을 넘어 아메리카 대륙을 발견한 후 스페인으로 돌아와 이사벨 여왕을 알현했을 당시 데리고 온 인종 중에 흑인이 있었다. 이말은 콜럼버스 이전에 아메리카 대륙에 흑인들이 살고 있었다는 것이다. 이말은 아프리카 흑인들은 바다를 건너는데 필요한 항해술을 알고 있었을 것이다. 로 추정할수 있다.

 

 

흑인들이 찬란한 문명을 꽃피웠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순간 세계 4대 문명의 주인공들을 노예로 쓴 사실이 불편해 지는 것이다. 그래서 서구사회는 아프리카인들을 불량한 인종으로 조작해야 하는 것이다.

 

 

부시맨 문명과 거리가 먼 미개한 존재? 

 

코이산족은 코이족과 산족의 결합으로 만들어진 인종으로 산(san)족은 부시맨으로 남부 아프리카 밀림에서 수렵과 채집으로 살아가는 가장 오래된 전통을 가진 부족이다.

 

 

영화 속 부시맨 의 이미지는 문명과 동떨어진 미개한 존재로 그려져 있다. 그러나 부시맨의 생활철학이 있다. 

 

  • 야생 열매를 딸 때는 반드시 씨앗이 될 만큼은 남겨 준다. 
  • 물을 마시러 오는 동물을 위해 우물 근처에는 절대 덫을 놓지 않는다.
  • 동작이 굼뜬 동물은 노인에게 사냥을 기회를 주기 위해서 잡지 않는다. 

 

족장 추장 없이 누구나 평등한 사회를 이루며 살아간다.

 

부시맨의 생활철학을 드러내는 시로 마음에 위안이 되는 코이산족의 시이다. 

 

문자가 없거나 우리와 문명이 다를지라도 고유의 문화 안에서 자신들의 삶을 사는 아프리카인들이다. 

 

 

 

 

 

 

아프리카의 문화 수준을 알 수 있는 기록들.

 

말리 왕국

13~17세기 말리 왕국에 사하라 사막의 황금 무역을 독점했던 만사 무사 왕은 메카를 가면서 가난한 곳에 황금을 나누어 줬을 만큼 문화가 번성했던 왕국이다. 

 

만사 무사 왕의 말리왕국 ‘젠네 모스크’ 13세기에 지은 세계에서 가장 큰 진흙 벽돌 건물 

 

가나 왕국

또 다른 왕국 가나 제국은 18세기까지 최고의 번영을 누렸던 가나 왕국도 있었다. 이처럼 아프리카는 나름의 각자 자연환경에 맞는 부족문화, 제국을 형성하며 문명을 이루며 살고 있었으나 유럽의 제국주의가 침투하면서 그 과정에서 아프리카는 불량한 나라로 조작이 된 것이다.

 

 

 

 

아프리카 문명이 발전하지 못한 이유 

 

아프리카인들은 노예 무역으로 시작된 서구와의 불행한 만남이었다. 콜럼버스가 아메리카 대륙을 공식적으로 첫 발견을 하고 그 후에 노예수요가 유럽에서 폭발적으로 증가했다. 아프리카 내에서도 전쟁에 대한 부족은 노예가 되기도 하지만 유럽에 노예 제도를 강력하게 비판하는 이유는 처음으로 특정 인종 전체를 노예로 상품화 한 것이기 때문이다.

 

노예선
물건처럼 배 밑바닥에 실렸던 노예들. 

 

적어도 이전에는 인간적인 대우를 받으며 결혼, 교육등을 받을 수 있었던 흑인 노예들이다. 한번 항해를 시작하면 3개월 정도의 장시간 동안 빽빽하게 밀집되어 있기 때문에 질병이 창궐하면 노예들은 전염병에 상당히 취약했다. 그렇게 살아남아 대서양을 건넌 노예 수는 약 1천만명~3천만명으로 주장한다. 그러나 이보다 더 많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이에 노예들의 상품가치 회선을 우려한 선주가 상품 가치가 떨어진 노예들을 바다에 던져 버리는 일이 흔한 일이였다.  3일에 걸쳐 총 133명의 노예가 바다에 버려지기도 했다. 

 

 

흑인 노예무역을 약 300년 동안 인력 수탈을 진행했던 유럽이었다. 아프리카에는 젊고 힘이 센 남성들이 노예로 모두 유출이 되어 남녀성비가 최고 40대 100에 이르기까지 했다. 이후 아프리카의 문명이 뒤쳐질 수 밖에 없었던 이유는 바로 이런 노동력 유출인한 유럽의 노예제도가 낙후된 아프리카를 만들었다고 볼수 있다.

 

먼 타국까지 끌려와 고된 노역에 동원된 흑인들이었다.

 

 

아프리카 국경선이 반듯한 이유

아프리카 지도를 보면 자대고 그은 듯 반듯한 경계선인데 직선의 국경선이 나오기가 힘들다. 이것은 실제로 지도에 자를 대고 그은 것이다. 

 

 서구 열강끼리의 땅따먹기

 

베를린 회의(1884~1885)

식민지 지배를 쉽게 하기 위해 아프리카 지역의 국경을 이미로 그거 분할한 국경선이 지금의 국경선이다. 이런 반듯하게 그어진 국경선으로 인해 사용하는 언어 문화 종교가 달라진 게 없지만 다른 나라 사람이 되어 버린 것이다. 이로 인해 서로 다른 종교들 간의 갈등과 충돌이 생겼다.

 

베를린 회의 이후 아프리카 식민지 변화

 

아프리카 식민 지배 방법

 

콩고민주 공화국은 서유럽이 들어갈 만큼의 크기이지만 유럽에서 6번째로 작은 나라 벨기에 왕 레오폴드 2세(재위 1865~1909) 가 과거 콩고 땅의 주인이었다. 그는 유럽 문명문명을 전파 한다는 핑계로 콩고를 지배했고 그는 고무와 코끼리 상아사업에 집착했었는데 콩고 노동자들에게 고무 생산 할당량을 주어서 그것을 달성하지 못했을 경우 손목을 자르는 끔찍한 일을 자행했다.

 

1. 무력 사용

이렇게 벨기에는 잔혹한 식민통치를 통해 부를 이루었다. 물리적인 겁박과 잔혹한 무력 사용으로 통치를 했던 이런 것이 아프리카를 식민화하기 위한 전형적인 전략이다. 

 

2.타자화 전략

사라 바트만 아프라카 대표적 타자화 희생양

 

사라 바트만 아프라카 대표적 타자화 희생양 (타자화 뜻/전략 )

아프리카 쟁탈전(the scramble for Africa)이라고 불릴 만큼 유럽 열강들은 아프리카 지배에 경쟁적이었다. 모든 것이 풍부한 아프리카 대륙을 지배하기 위해 유럽이 취했던 방법이 바로 ‘타자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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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종족간의 갈등 조장이 대표적 식민지 지배 방법이었다. 대표적인 사례가 르완다 대학살 사건이 있다. 

 

 

르완다 대학살 사건과 그 이후 현재 르완다 상황

르완다 내전은 국내에서는 영화 '호텔 르완다'로 잘 알려져 있는데 이 영화는 르완다 학살 당시 자신이 일하던 호텔에 1200여명을 피신시키고 그들을 지키기 위해 노력한 폴 루세사바기나의 실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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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리카의 저항운동

 

1. 이탈리아를 격퇴한 에티오피아 황제 메넬리크 2세/ 2. 1879년 영국군에 맞서 승리한 줄루 왕국/3. 알레지 독립에 헌신한 프란츠 파농 4. 가나 독립의 아버지 콰메은크루마  

 

1823~1902년 100년 가까이 영국과 전쟁을 벌인 아샨티 왕국도  있었다. 목숨 건 저항과 희생끝에 독립을 이룬 아프리카 국가들이 많이 있다. 

 

그러나 독립 이후에도 아프리카에 시련은 계속된다. 

 

 

 

아파르트헤이트 (아프리카 남아공 인종차별 정책)

남아공은 독립을 했음에도 식민지를 지배했던 주체들이 지도자로 그대로 남아 있었던 상태였다. 이들은 가나, 나이지리아, 케냐에 들어왔던 백인들과 성격이 달랐다. 가나 나이지리아 케냐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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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등을 조장해서 나라를 다스리는 일종의 분할 통치 방법으로 강대국이 식민지를 지배할때 많이 쓰는 방법이다. 이와 같이 아프리카내의 종족간의 갈등은 아프리카의 야만성으로만 볼수 없는 정치적 개입으로 인한 제국주의 식민주의로 인한 역사적 뿌리가 있는 문제들인 것이다.

 

 

정치적 차원 아프리카 통합 운동

아프리카 합중국을 만들었는데 유럽연합 27개국이 소속되어 있다. 그러나 아프리카는 55개국 모두가 AU에 가입되어 있다. 아프리카 연합은 2063년까지 통합 교통망, 공통 여권, 분쟁 종식 등 usa 하나의 아프리카를 위한 노력이 진행 중이다.

 

 

 

문학을 통한 아프리카 통합운동 

 

탈 식민주의 문학 '되받아쓰기' 운동

문화 예술계에서 진행되는 통합의 노력으로 되받아쓰기 (write back) 탈 식민주의 문학에 대표적인 기법으로 서구 문학을 해체하고 재구성 하는 창작 전략이다. 아프리카인으로 읽었을 때 기분 나쁘지 않나 아시아인 한국인으로 읽었을 때 이 문장이 불쾌하지 않나 백인 관점에서 쓰인 서구 문학을 다시 읽는 작업이다.그것이 문제가 된다면 고전을 다시 쓰는 작업이다. 

 

다닐엘 디포의 로빈슨 크루소는 주인공이 태풍을 만나 무인도에 혼자 표류하는 내용으로 무리에 쫓기는 원주민 아이를 총을 쏴서 구출한 후 그 아이에게 '프라이데이'라는 이름을 지어준다. (그 아이도 이름이 있을 것인데 ...난파된 사람은 그 섬의 문화를 배우려고 노력할진데 원작 소설에서는 자립과 문명의 상징으로 로빈슨 크루소를 그리며 예찬함.) 
셰익스피어의 희곡 <태풍> 을 프랑스 시인 에메 세제르가 다시 쓴  1969년 작 <어떤 태풍> 의 중요부분/ 원작에서는 주인공 프로스페로가 모든 사람을 데리고 유럽으로 돌아간다. 그러나 다시 되받아쓴 작품에서는 주인공이 섬에 남는 부분 

 

셰익스피어의 희곡 태풍에서 유럽으로 모든 사람을 데리고 돌아가는 주인공의 모습은 아프리카는 1960년부터 연이은 독립을 하지만 여전히 아프리카인들을 자립하지 못하는 대상으로 보는 시선을 <어떤 태풍>에서 비꼰 것이다. 

 

셰익스피어는 우리가 이제까지 존경하는 대문호로 인식되어졌고 누구도 비판하지 않고 수용했었으나 "되받아쓰기" 작가들은 이 문제를 과연 그냥 수용되도 되는지에 대한 의문을 던진 것이다.  차별과 편견 대신에 다름을 인정하고 다양성을 존중하는 세계시민으로 아프리카를 마주하는 날이 오길..

 

 

[카이스트 인문사회학부 이석호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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