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노사이드 란? genos: 인종 cide :살인 뜻으로 (genocide)는 인종 학살, 집단 학살을 의미한다. 가장 많이 알려진 제노사이드는 홀로코스트로 (제2차 세계대전 중 나치 독일이 자행한 유대인 대학살) 독일 나치가 인종주의를 내세워 보통 유대인 600만 명을 죽였다고 알고 있지만 유대인만 죽인 것이 아니라 각 인종의 특징을 분석해 게르만족이 아닌 인종들을 학살했다. 폴란드인 200만, 소련인 300만, 세르비아안 1200명 학살하며 대략 천만명 이상의 학살을 자행했다.
홀로코스트가 일어난 다음 더 이상의 제노사이드를 막기 위해 1948년 UN 총회에서 제노사이드 협약을 채택한다. '
나치 이후 최초의 제노사이드 보스니아 내전
그러나 그 이후에도 다수의 제노사이드가 발생한다. 유럽에서 나치 이후 최초로 일어난 제노사이드가 보스니아 내전(1992년~1995년 현 보스니아 지역에서 발발한 전쟁)인데 희생자 대부분은 '인종청소'로 학살되었고 보스니아 내전의 전범을 처벌하기 위한 국제재판소가 만들어졌다.
보스니아 내전 원인
유고슬라비아는 연방국가였다. 유고는 슬라브 언어로 '남쪽' 이란 뜻으로 유고슬라비아는 남슬라브족의 나라라는 뜻이다. 한 국가이긴 하지만 다른 민족, 다른 종교로 사이가 안좋았는데 그들을 하나로 묶은 공산주의자가 등장한다.
그가 바로 티토이다. 티토의 공산주의 정책 아래 하나가 된 민족들은 하나로 단합이 되어 그때 유고슬라비아는 경제적 성장을 이뤘다. 티토 사망 후 90년대 공산주의는 무너진다.
다음으로 등장한 인물이 밀로셰비치이다. 당시 유고연방 전체를 아우르던 대통령이 됐는데 이 사람은 세르비아계 민족주의자였다.
슬로베니아, 크로아티아 분리
불안에 떨던 다른 민족들이 유고에서 독립해버린다. 크로아티아와 전쟁하면서 2만명 정도 죽고 독립하지만 문제는 보스니아였다.
크로아티아는 나라 자체에 그 민족이 다수 민족으로 존재했으나 보스니아는 비슷한 비율의 세 민족으로 구성되어 있다. 어떤 민족도 과반수가 아니었던 상황이었다.
대통령이 세르비아계니 당연히 세르비아계는 연방에 남고자 했고 크로아티아계와 보스니아계는 독립을 원했다. 결국 보스니아의 독립에 대한 국민투표가 실시된다. 세르비아계는 투표에 참여하지 않았지만 크로아티아계와 보스니아계의 투표가 과반수가 넘어 보스니아는 유고 연방으로부터의 독립에 성공한다.
보스니아 내전의 시작
그러나 이 투표결과를 세르비아계는 인정할 수 없었고 세르비아계는 뭉쳐서 보스니아 내 스릅스카 공화국을 만들고 그때부터 1991년 보스니아 내전이 본격화된다.
세르비아계는 민병대를 만들어 '인종 청소'를 시작했고 1992년 3월부터 1995년 11월까지 약 3년간 무분별한 살육이 일어났다. 창고에 1000명씩넣고 수류탄을 터트러 모두 죽이고 이 시체를 은폐했으나 나중에 발굴이 된다. 위성 사진을 보고 찾아낸 흙더미속 시체들이 한 구덩이 마다 600구 이상 나왔다. 50명 정도 들어가는 초등학교 건물에 500명을 몰아넣고 한여름에 문을 잠궈 질식해 죽여 버렸다.
보스니아 내전 종식
약 20만 명의 희생자 230만 명의 난민을 만들어 내면서 당시 미국 대통령인 클린턴이 중재에 나섰고 마침내 1995년 11월 보스니아, 세르비아, 크로아티아 3국이 미국 오하이오에 있는 데이턴 공군 기지에서 평화 협정을 통해 내전을 종식한다.
그러나 내전이 끝났지만 상황이 정리된 상태로 끝난것이 아니라 그냥 종결 된 것이여서 근본문제가 해결이 된 것은 아니다. 갈등 요소는 아직도 남아있고 제2의 보스니아 내전이 발생할 가능성이 있는 것이다.
카라지치의 전범 재판
전범 재판만 남았는데 보스니아 내전당시 발칸반도는 도살장 수준이었다. 이 모든 것에 총 책임자는 스릅스카 공화국 대통령 카라지치(세르비아계) 였고 6년 동안 재판했다.
카라지치는 사망자 20만 명 보스니아 내전의 주범이기 때문에 전쟁의 모든 책임을 물었고 카라지치는 전쟁이 끝나고 스스로 도망가 잠적해버려 13년동안 변장을 하면서 세르비안에 숨아 살며 대체 의학 전문가로 활약하고있었다.
대체의학 전문가로 유명세를 타다보니 학회에 초대되었고 그러다 꼬리가 잡혀 헤이그 재판소로 옮겨지게 된다. 그래서 UN 안보리에서 만든 국제 재판소로 보낸다. 카라지치는 1심에서 40년, 항소심에서 종신형을 선고받았다. 보스니아인들은 전범을 처벌하고 나서야 진정한 독립을 맞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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