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 유대인들이 이집트를 탈출해 지금의 이스라엘에 정착해 살다가 2000년 전에 로마에 의해 팔레스타인 지방(지금의 이스라엘 영토와 팔레스타인 국의 구역) 밖으로 쫓겨난 후 2천 년 가까이 나라 없이 떠돌아다닌다. 유대인들은 타국에서 살아남기 위한 전략으로 사람들이 꺼려했던 직업이(천하거나 죄스럽게 여겼던 직업: 금융, 상업, 무역)나 당장 쫓겨나고 먹고살 수 있는 직업을 선택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중에 하나가 고리대금업으로 그들은 부를 축적했고 게다가 선민사상(우리만이 신에게 선택된 민족이다)을 갖고 있던 유대인에 대해 개신교인 유럽 국가들은 거부감을 느꼈고 그 이후 반유대주의가 짙어진 유럽은 대놓고 유대인을 인종 차별하던 역사가 뿌리 깊게 내려오고 있었다.
중세 유대인 대학살
중세 유럽 당시 페스트가 만연하던 시기에 유럽인들은 불안감에 증오의 대상을 찾기 시작했고 중세 유럽의 최하층이었던 유대인은 당시 그들의 청결한 생활 습관으로 인해 사망률이 현저히 낮았다. 그들은 기도 전에 손과 발을 씻고 쿄셔 푸드(Kosher Food)라는 유대교 율법에 의거해 도축된 고기만 먹었고 가공 과정이 많고 정갈한 음식으로 알려져 있는 음식들을 먹으니 사망률이 낮았다.
그러나 예수님을 죽인 사람이 유대인이었던 종교적 배경과 더해져 그 당시 사람들의 집중적인 미움의 대상이 되었던 유대인들이었고 그렇게 중세의 유대인은 고난과 핍박의 세월을 살아온다.
영국 저널리스트 폴 존슨의 유대인 역사에 대한 책에는
'저 악랄한 유대인이 우물에 독을 넣었다'는 소문이 돌게 되니 유대인들을 잡아다 고문을 시작하고 자백을 받기 위한 고문이었기에 겁에 질린 어느 유대인이 페스트는 사보이 지역의 어느 요한이라는 자가 퍼뜨렸다고 거짓 자백을 한다. 그렇게 처음에는 지목된 유대인들이 죽임을 당하다가 나중에는 유대인 전체를 학살하기 시작한다.
독일, 프랑스, 스페인, 오스트리아, 이탈리아 등 강대국을 중심으로 발생한 유대인 학살은 한 도시에서만 6000명 이상이 학살당했고 산 채로 구덩이에 넣고 불태우기까지 했다.
이렇게 당시 유럽 사회 분위기는 유대인에 대해 호의적이지 않았다. 이렇게 중세부터 유대인에 대한 인식이 좋지 않았고 유대인을 공격해 재산을 뺏는 일은 부지기수였다. (중세식 부의 재분배 방식) 그 이후에도 계속 사회가 혼란하거나 문제가 생기면 마녀사냥하듯이 유대인을 처형했었다. 그중에 가장 최근의 유대인 학살로 유명한 것은 히틀러의 홀로코스트일 것이다.
히틀러가 유대인을 학살한 이유
독일 국민들은 1차 세계대전에 패배한 원인을 납득하지 못하고 있었는데 그때 히틀러가 나타나 내부의 적 때문에 전쟁에 진 것이고 내부의 적으로 유대인을 지목한다.
중세 이전부터 유럽에서는 뿌리 깊은 반유대주의가 존재해 왔고 히틀러는 이런 반민주, 반공산, 반유대주의 나치즘을 내세우며 1차 세계대전 이후 막대한 배상금과 경제 공황으로 인한 분노의 희생양으로 유대인을 지목하며 독일의 몰락 원인을 유대인 탓으로 돌린 것이다.
※나치즘의 특징은 인권 존중은 오직 아리아인(=독일인)에게 집중되어 있었고 극단적인 인종 우월주의로 유대인 장애인, 슬라브족 등을 제거해야 한다고 선동하는 나치즘을 세운다. 아리아인은 유전적으로 우월하다는 주장을 펼치며 열성인자는 도태되기 마련인데 유대인을 없애는 것은 자연의 섭리에 속도를 주는 것일 뿐 인종 청소만이 지구를 깨끗하게 하는 것이라는 신념을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 아리아인(Aryan) 북유럽과 게르만족 백인 인종을 포함한 민족
홀로코스트(holocaust) 뜻.
홀로코스트 뜻, 의미
홀로코스트는 원래 고대 그리스언어이다. holo+Kaustos 의 합성어로 전체+태우다=전체를 태우다라는 의미로 옛날에 유대인들이 하느님을 섬기는 방법으로 제물을 태운다는 신성한 의식을 나타내던 말이 히틀러의 유대인 대량학살의 의미로 유럽에 들어오면서 변화되었다.
독일이 점령한 지역의 집시, 동성애자, 부랑자, 지적장애아 등을 함께 처형함으로써 불량 유전자를 제거한다는 명목으로 어린아이를 포함해 유대인과 집시 등 약 600만 명에 달하는 유대인 대학살을 자행한다.
인간 청소라는 명목 아래 나치에 의해 유대인 대학살이 자행되었는데 처음에는 유대인을 동원해서 구덩이를 파게 한 다음 옷을 벗기고 자신이 판 구덩이에 들어가게 한 후 총기로 난사해서 죽였으나 후에 더 효율적으로 죽이기 위해 가스실을 만들어 샤워실이라고 속이고 수감자들이 스스로 옷을 벗고 들어가게 했으며 그들을 속이기 위해 가짜 샤워기까지 달아놓았다.
홀로코스트 단계
◈ 1단계: 1933년
처음에 부유한 유대인을 못마땅하게 여겨 유대인 상점에 대한 불매운동으로 시작된다.
◈ 2단계: 1935년
반유대주의 법인 인류 역사상 최악의 법 뉘른베르크 법이 통과되며 독일 시민권 박탈, 상업활동 제한, 독일인과 유대인의 결혼 금지, 유대인임을 표시하는 별 부착 등 유대인에 대한 탄압이 본격화된다. 국립학교에서 유대인 자녀 입학 또한 금지된다. 유대인의 피를 받은 사람은 모든 권리를 박탈했다. 이 법은 홀로코스트의 토대가 된 법이다.
뉘른베르크 법에 따른 인종 분류법
인종을 계급화한 악법에 서명한 히틀러
★ 수정의 밤(1938년 11월 9일 ) 유태인들이 이유 없이 탄압을 받으니 어느 유대인 남성이 보복성으로 독일 외교관을 살해하면서 개인적 분노를 표출하는 일부 독일인들을 중심으로 유대인을 죽이기 시작했던 날이 '수정의 밤'이다. 약 7500여 개의 유대인 상점이 훼손되고 수백 개의 유대교 회당 및 묘지가 방화로 인해 유리에 반사된 빛이 마치 수정처럼 반짝였다고 해서 수정의 밤이라 일컫었다. 이렇게 수정의 밤을 계기로 본격적인 유대인 탄압이 시작되었다. |
* 게토 (유럽 각 지역에서 유대인을 강제 격리하기 위해 설정한 유대인 거주 지역 )에서 수정의 밤 이후 본격적으로 유대인들은 수용소로 끌려간다.
◈ 3단계 1939년
독일은 폴란드를 침공하며 유대인 탄압과 학살이 절정에 이른 시기이다. 유대인들은 강제 노동, 대량 학살을 위해 독일과 유럽 점령지의 강제 수용소로 보내졌다.
수용소의 식단은 부실했고 대부분이 노동을 하다 질병에 걸리게 되면 그들은 바로 죽음을 맞이해야 했다.
수용소의 자유란 결국 죽음뿐이었다. 수용소에서 나가는 유일한 길은 굴뚝의 연기가 되어 나가는 길밖에 없다고 했을 만큼 끔찍한 곳이었다.
유대인 학살 숫자
독일 내 유대인은 90%가 대부분 학살당했고 헝가리 안에서는 27만 명이 희생, 아우슈비츠가 있던 폴란드 (유대인들의 최대 거주지)는 300만 명으로 인천광역시 전체 인구와 맞먹는 숫자이다.
유대인 학살 가스실
가스실에 들어가기 전 여성 수감자들은 머리를 밀어야 했는데 머리카락으로 양탄자 가발 등을 만들었고 유대인 시신에서 금니를 뽑았고 시신을 화장한 뼈는 비료로 사용했다고 한다.
마지막까지 살고 싶어 했던 수감자들의 손톱자국이 가득하다.
이동식 가스 트럭
유대인들에게 관용을 베풀었던 유일한 유럽 국가 폴란드는 나치 점령 후 유대인의 최대 학살지가 되었다. 폴란드, 체코에서 유대인을 많이 죽었는데 이송 비용을 줄이기 위해 트럭에서 바로 학살을 했다.
인간 교배장 레벤스보른
히틀러는 순수 혈통에 집착이 심했고 우성 아리아인의 순수 혈통을 늘리기 위해 인간 교배장을 만들었다. 순수 혈통 아리아인의 수를 늘리기 위해 마치 공장처럼 아이들을 생산해 낸 히틀러였다. 처음에는 히틀러의 연설에 감화된 여장교나 일반 여성들이 지원했으나 순수 혈통 아이들을 데려가서 나치 친위대 가정에 입양을 시켰거나 히틀러의 선전도구로 사용되었다.
이렇게 되니 지원자의 수가 시간이 갈수록 줄어들자 히틀러는 강제로 북유럽 침공 후 그곳의 여성들을 납치해 하얀 피부, 파란 눈, 금발, 큰 키와 골격을 갖춘 조건에 맞는 여성을 선별하여 강제 구금시키고 우리나라 위안부와 같이 강제로 임신시킨 후 아이를 데려가 아이가 조금만 아파도 바로 죽였다.
이렇게 무자비한 대학살과 끔찍한 인간 교배 등 상상도 못 할 짓을 저지른 히틀러는 2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 권총 자살을 하면서 인생을 마감한다. 이렇게 역사 속에 끊임없이 핏박받던 유대인은 현재 이스라엘에 대다수가 거주하고 있다.
[출처 위키피디아, 벌거벗은 세계사 7회 중, 선녀들 7회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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