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완다 내전은 국내에서는 영화 '호텔 르완다'로 잘 알려져 있는데 이 영화는 르완다 학살 당시 자신이 일하던 호텔에 1200여명을 피신시키고 그들을 지키기 위해 노력한 폴 루세사바기나의 실화를 바탕으로 한 2004년에 제작된 영화이다. 나치의 유대인 대학살 이후 인류사에서 2번째 일어난 제노사이드가 바로 르완다 대학살(1994) 사건이다. 1994년 100일 동안 80만 명 이상 사망했다.
르완다 대학살 원인
벨기에 식민통치
제국주의 시대 때 벨기에가 르완다를 식민 통치했는데 르완다의 민족구성은 후투족(85%) 투치족(14%)으로 이루어졌다. 그때 투치족이 큰 키에 오뚝한 코로 유럽인과 닮았다 하여 유럽인을 닮은 투치족에게 권력을 부여했다.
벨기에는 14%의 투치족이 대신 통치하도록 했고 권력을 얻은 투치족은 후투족을 핍박하기 시작한다. 이에 후투족은 투치족에 대한 원한을 가지게 된다. 그러던 중 1962년 벨기에 식민 통치를 끝내고 르완다를 떠난다.
후투족 쿠데타
르완다는 독립을 했지만 벨기에는 이런 갈등을 해결하지 않고 돌아가버리면서 투치족에 대한 후투족의 증오는 그대로 남아 있게 된다. 벨기에가 떠난 후 투치족과 후투족만 남았던 상황에 다수의 후투족이 쿠데타를 일으킨다. 이때부터 투치족은 나라밖으로 쫓겨난다. 르완다의 투치족은 우간다, 탄자니아 등으로 흩어져서 망명 생활을 하게 된다.
투치족 애국전선(RPF) 결성으로 내전 시작
우간다로 망명한 투치족은 투치족 무장세력인 르완다 애국전선(RPF)를 결성하여 다시 르완다를 침공하면서 약 2년간 내전이 지속된다.
아루샤 평화협정
후투족 투치족 할 것 없이 수많은 사람이 죽어가게 되니 결국 1993년 두 민족은 공존을 위한 평화 협정을 맺는다.
후투족 출신 대통령 사망
내전이 끝나고 평화를 유지하는 중에 1994년 4월 6일에 대통령이 탄 비행기가 격추되면서 후투족 출신 대통령이 사망한다.
후투족 학살 시작
이에 격분한 후투족은 투치족이 죽였다고 생각해 투치족 대학살을 그 다음날 4월7일부터 100일 동안 시작한다. 그러나 이들은 따로 사는게 아니라 두 부족이 평화로운 관계를 유지하며 함께 살았던 동네 사람들이었고 서로 결혼도 많이 했으며 평범한 일상을 같이 보내던 이웃들이었는데 하룻밤 사이에 서로를 죽이기 시작한 것이다. 부인이 투치족이면 남편이 죽이고 안 죽이면 그 사람이 죽고 그때부터 죽이기 시작한다.
정부의 학살 독려
각종 방송에서 정치적 리더들이 "이웃에 있는 투치족을 전부 살해하라, 그들은 바퀴벌레다, 우리가 이 바퀴벌레들을 말살해도 아무도 우릴 심판할 수 없다." 고 대대적으로 방송한다.
후투족 정부가 나서서 살인 무기 마체테(칼날이 대략 45CM인 큰 칼을 도끼 대용으로 쓰는 칼)를 50만 자루를 후투족에게 나눠준다. 투치족은 하루가 멀다하고 죽어 나갔고 길거리는 시체로 뒤덮였고 후투족 남편은 투치족 아내를 죽였다.
투치족의 반격
당하던 투치족도 분노했고 이들도 후투족을 상대로 목숨 걸고 싸우기 시작한다. 이에 후투족 100만 명 이상이 이웃나라로 도망가버렸다. 투치족 군대가 수도를 점령하고서야 100일간의 대학살이 끝이나며 80만명이상이 학살 200만명 이상이 난민으로 남았다.
한편 내전의 원인이었던 대통령 암살 사건의 진범은 후투족의 내부 소행이었던 것으로 밝혀진다. 나라 전체가 이성을 잃어버렸던 르완다의 이야기이다.
르완다 학살 프랑스 개입
르완다 정부는 600 쪽 분량의 르완다 대학살 조사 보고서를 공개했는데 프랑스 정부가 대학살 조짐을 미리 알고도 후투족을 군사적으로 지원하는 등 르완다 학살에 책임이 있다는 내용이 담겼다.
1962년 벨기에 식민지에서 독립한 르완다는 종족갈등으로 장기간 전국불안을 격고 있었고 1970년대 부터 프랑스가 영향력을 행사하기 시작하였고 후투족 출신 하비아리마라 대통령을 지원하면서 자국의 영향력을 키우려 한 것으로 보고 있다.
프랑스가 개입한 이유
당시 미테랑 정부는 학살에 참여한 르완다 군과 경찰을 훈련시켰고 투치족 살해 대상자 명단 작성뿐만아니라 투치족에 대한 비방에도 참여하여 집단학살 논리를 펼치는데 도움을 줬다.
이 보고서는 프랑스 정부의 개입은 르완다에 대한 영국과 미국의 영향력 확대를 배제하는데 있고 자국의 입지를 강화하는데 목적이 있다고 보고하고 있다. 르완다는 인구 1300만명의 소국이지만 아프리카 중동부 중심에 위치해 있고 이 지역의 주요 지배세력이었던 프랑스에게는 전략적 요충지이다. 르완다는 과거 프랑스령에 속한 나라였고 프랑스와의 책임 공방으로 2006~2009년 사이에 외교관계가 완전히 끊어졌다가 2018년 이후 르완다 대통령이 최근에 다시 외교가 진행되고 있는 상황이다.
프랑스 정부도 진상조사 보고서를 내놓고 일정부분 책임을 인정하는 모습을 보였으나 직접적 개입은 찾지 못했다고 입장을 내놓으며 비난을 받고 있다.
르완다 학살 이후
현재 르완다는 종족 구분행위를 법으로 금하고 있다. 이제 르완다에서 너는 후투냐, 투치냐 질문은 금기다. 이런 질문을 받게 되면 그들을 르완다인이라고 대답한다.
현 대통령 장기집권 중
현 르완다 대통령 폴 카가메는 르완다 대학살을 종식시킨 후 1994년 집권을 해서 20년째 장기 집권을 하고 있고 3선을 금지한 헌법을 개정해서 2034년까지 집권가능한 상태를 만들어놨다. 르완다의 정국을 안정시킨 영웅이라는 칭송부터 독재자라는 평가까지 평가가 엇갈리고 있다. 그는 종족화해를 통해 르완다를 재건했고 2012년에는 13% 경제성장까지 이웠고 아프리카에서 밤에 다닐수 있는 치안이 잘된 국가를 만들었다.
하지만 장기집권을 통해서 모든 형태의 반대세력을 억압하고 야당 정치세력을 투옥, 즉결처형, 고문등을 자행하면서 국제사회에서도 비난을 받고 있다. 2010년 이후 부터 그의 정적들이 지속적으로 체포되어 왔고 이번에 그의 독재정권을 비난해왔던 영화 호텔 르완다의 실제 주인공 폴 루세사바기나 또한 체포했으나 '루 세사바기나'는 미국 대통령에게 자유훈장 등 국제사회에서 인권관련 상도 많이 받고 인권 운동을 지속적으로 했던 인물이라 단순히 정권비판으로 체포했다기에는 문제가 있을 수 있는 상태로 체포 이유에 대해서는 구체적으로 언급하지 않고 있다.
[출처 알쓸범잡 11회, jtbc 뉴스, EBS 다큐 프라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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