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콜롬버스 아메리카 신대륙 발견 과정, 의미
[20-2]
콜럼버스를 통해 새로운 대륙간에 많은 것이 교환이 되었고 새로운항해 라는 업적을 세웠지만 콜럼버스의 탐험은 잔혹한 식민화의 출발점이기도 했다. 콜럼버스가 최초의 정착지로 섬은 카리브해의 섬들은 뒤이어 온 정복자들의 베이스캠프가 되었다.
스페인 정복자들의 대륙 정복 시작
16세기 아메리카 대륙의 중심지 멕시코 시는 가장 파괴적인 인구 감소의 재앙이 벌어진 곳이다. 아메리카 대륙을 인도로 착각한 유럽인이 마음대로 지어버린 이름 인디언(=인도인)은 본래 아메리카 원주민으로 스페인들이 발을 딛기 전에 아메리카에는 세 곳의 대표적인 발전된 마야, 잉카, 아스테카 원주민 문명을 이루고 살았다.
에르난 코르테스
결국 콜롬버스가 금을 찾는데 실패하고 콜럼버스 이후에도 스페인 정복자들은 금에 대한 미련과 집착을 버리지 못하고 1519년 콜럼버스 후예들의 대륙 정복 시대가 시작된다.
스페인 정복자 중에 가장 잘 알려진 인물로 ‘에르난 코르테스’ 가 있다. 코르테스는 콜롬버스가 정착 식민지로 삼은 쿠바에 머물고 있었는데 쿠바 총독이 코르테스를 대륙 탐사의 대장으로 임명하였고 그들의 목표는 황금과 노예를 찾는 것이었지만 총독은 코르테스가 더 큰 야망이 있다는 걸 알게 되자 그를 해임시킨다.
하지만 코르테스는 이에 항명하고 1519년 2월에 스페인인 600여명 원주민 300여명 대포 10문 배 11척을 이끌고 출항한다.탐사대가 오늘날의 목적지 베라쿠르스에 도착하자 타고 온배 11척을 모두 침몰시킨다. 목표를 달성하기 전까지 돌아가지 않겠다는 강한 의지를 보인 것이다.
코르테스는 베라크루스 주변 원주민 부족들을 제압하기 시작한다. 이 과정에서 틀락스칼라 부족을 만나 철제 무기로 무자비하게 공격한 코르테스 원정대였다. 이 과정에서 틀락스칼라 부족은 아스테카 원주민과 원수지간임을 알게 되고 동맹을 맺게 된다.
아즈텍 문명의 수도 테노치티틀란
주변 부족까지 동맹세력으로 만든 원정대는 마침내 아스테카의 중심지인 '테노치티틀란에 입성한다. 테노치티틀란은 현재 멕시코시의 중심 구역에 위치했던 고대 수상 도시로 둘레 10여 킬로미터의 정방형 섬으로 건설된 수도로 텍스코코 호수 위에 세워진 도시이다.
당시 아스테카 제국은 다양한 부족을 병합해 엄청난 인구를 유지하고 있었다. 많을 때는 아스테카 인구의 약 2500만 명이었다. 게다가 테노치티틀란에도 약 20만명의 인구가 살고 있었다. 이 숫자는 엄청난 것으로 유럽 대도시 런던, 파리가 1700년까지 10만 명 정도로 유지했었으니 상당한 인구였다고 볼수 있다.
아스테카 제국 통치자 무테수마가 천여명의 주민들과 원정대를 맞이했다고 한다. 그것은 아스테카인들이 믿고 있었던 '때가 되면 바다를 건너 신(케찰코아틀)이 찾아올 것이다' 라는 신화 때문이였다.
아스테카의 찬란한 문명과 기술
이들은 원정대를 신의 사절단으로 여겼던 것이다. 부족장 '무테수마'는 코르테스를 대신전으로 데리고 갔다.
신전을 본 코스테스의 기록이다.
코르테스는 예상보다 수준 높았던 아스테카의 문명과 시스템에 놀랐다. 호수위엔 농지가 간척되어 있고 거대한 수로가 이중으로 만들어져 교대로 사용할 정도로 체계적이었고 상업까지 발달해 빼곡한 시장 거리에 6만 명 이상이 가득차 있었다.
아스테카인의 인신공양 풍습
그러나 코르테스는 너무나 충격적인 광경을 목격하게 된다. 그것은 바로 인간을 제물로 바치는 의식인 아스테카의 인신공양 풍습이었다.
그렇다면 스페인 정복자들은 아스테카를 어떻게 무너뜨렸나?
이 모습을 본 스페인 정복자들은 이 모습에 호의적인 태도가 모두 사라졌다. 정복자들의 전략은 왕을 잡아서 통치 체계를 장악하려 했고 무테수마 2세를 인질로 잡았다. 그러나 허가 없이 떠난 코르테스를 스페인 총독의 군대가 쫓아왔고 코르테스가 아스테카를 비운 사이에 남아있던 정복자들이 피의 살육을 벌이는 일이 발생한다.
피의 살육
축제 준비로 분주했던 아스테카인을 보고 아스테카인이 반란을 준비한다고 오해를 한 것이다. 무차별적인 정복자들의 학살이 시작되었고 하루에 아스테카인 사망자가 600명 이상이었다. 이 사건으로 결국 원주민은 분노하게 되고 스페인들에게 저항을 하기 시작한다.
슬픔의 밤
코르테스가 총독군을 물리치고 돌아왔지만 상황은 심각한 상태였고 황제인 무테수마에게 성난 군중을 달래달라고 했으나 더 이상 무테수마를 따르지 않게 된다. 성난 군중을 피해 1520년 6월 테노치티틀란에서 스페인군은 도망치게 된다. 탈출 과정에서 원주민 동맹군 및 정복자들이 다수 사망하게 되고 코르테스도 손가락 2개를 잃을 정도로 매우 위급했던 상황이었다. 스페인들은 이날을 '슬픔의 밤'이라 부른다.
아스테카의 멸망 원인
부족간 원한 및 무기의 차이
슬픔의 밤 이후에 정복자들은 아스테카의 원수 부족을 규합해 약 1만 명을 모아 다시 반격을 시작한다. 포위 기간이 70여일 정도 되었고 아스테카의 무기는 흑요석 등으로 만든 돌 무기를 쓰고 있었다. 그러나 스페인은 철제무기와 총이였기에 아스테카 전사들은 당할 수 없었다.
또한 거대한 동물인 말을 본적이 없었던 아스테카인은 말이 두려움의 대상이었다. 또 다른 동물 사냥개의 종류인 잉글리시 마스티프 초대형견을 원주민을 공격하도록 훈련시켰다.
전염병 천연두 창궐
스페인 군대의 다양한 방법의 공격으로 여러 전투에서 아스테카인 수십만이 사망했다. 하지만 아스테카인이 멸망한데 공헌을 한 것은 바로 천연두 전염병이었다. 유럽인들과 달리 원주민들은 천연두에 면역이 거의 없었기 때문에 순식간에 45KM를 넘어 전염된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전쟁보다 천연두로 죽어간 원주민이 더 많았었다.
향후 100년간 식민지화와 함께 250만 명정도만 살아남아 급격히 줄어든 원주민 인구로 아스테카인의 90%가 천연두로 사망했다. ->천연두 역사와 치료 인두법과 지석영 종두법,우두법/혜민서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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