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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V 방송 리뷰/선을 넘는 녀석들 리턴즈

소현세자 소현세자빈 강빈 이야기 (소현세자 가계도)

by 짱신나^^ 2021. 1.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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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현세자 (1612~1645)

 

광해군을 인조반정으로 몰아내고 임금이 된 인조의 첫번째 아들이 소현세자이다. 나라에 위기가 닥칠때 마다 직접 나섰던 소현세자이다. 정묘호란때 전주지역에서 분조(전쟁때 임시로 세운 조정)를 이끌면서 위기상황에 대쳐하는 모습을 보였다. 인조가 청과의 군신관계 요구를 거절하자 청이 침략하고는 병자호란(1636년)이 벌어지고  인조의 삼전도의 굴욕(1637년 1월 30일) 이후 인조의 아들들 소현세자와 봉림대군 며느리 강빈(소현세자빈)까지 항복 조건에 따라 볼모로 청나라에 끌려갔다.

 

인조의 마음이 하루하루가 가시밭길 일 때 뜻밖에도 청나라 생활에 적응을 잘한다는 소현세자와 가족들의 소식이 들려온다. 청나라에서 잘지내고 있는 소현세자가 못 마땅 했던 인조는 청나라가 소현세자에게 왕위를 주려고 한다고 생각하고 왕위에 대한 위협을 느낀다.

인조는 전쟁으로 드러난 자신의 무능을 아들 소현세자에게 질투로 표출한 것이다. 

 

소현세자는 어떤 인물? 

 

소현세자는 아버지와 달리 위기에 강한 인물이었다. 청나라에서 볼모 생활을 할 때 소현세자와 그의 가족들을 박대하며 척박한 땅에 직접 농사를 지으라고 했는다.

이에 소현 세자는 노예로 팔려가던 조선 백성들을 노예로부터 해방시켜주고 그 척박한 땅을 그들과 함께 옥토로 개간한다.

여기서 나온 수확물을 백성들과 나누고 남은 수확물로 청나라에서 무역 활동을 한다. 

소현세자는 14세에 세자로 책봉후 성리학적 수업을 받았지만 청나라의 선진 문물 또한 수용하려 노력했다. 이런 소현세자에 청 황실도 우호적이 된다. 

 

시련을 이겨내고 금의환향한 소현세자

 

그리고 8년 만에 귀국한 소현세자는 신하들과 백성들의 환대를 받으며 귀국한다. 

소현세자는 청나라에서 가져온 화포와 천리경 등의 선진 문물을 개방적으로 받아들이고 이를 통해 조선의 발전을 꿈꾸지만 아버지 인조는 이런 소현세자의 모습이 자신의 반청 노선에 반기를 드는 것었고 

 소현세자와 인조의 관계는 청에서 돌아온 후 크게 악화되었다. 

소현세자의 죽음 

소현세자의 죽음은 여러가지 설이 있다. 

인조가 극대노해 던진 벼루에 맞아 앓다가 죽었다는 설이 있고 

어느 날 갑자기 소현 세자가 몸져 눕는다 그리고 치료를 위해 찾아온 의원이 응급처치를 한다며 침을 맞은 직후 사망한다. 소현세자의 담당의 이형익은 인조의 후궁 소용조씨와 친분이 있던 인물로 인조와 소현세자를 인간질 시켰던 소용조씨가 있다는 설

 

 

그렇게 귀국 두 달 만에 눈을 감은 소현 세자였으나 세자의 급서에 난리 날 법도 한데 인조는 서둘러 장사를 지내고 마무리한다. 소현세자에게 침을 놓은 어의도 다른 처벌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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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현세자가 죽은 직후의 모습

죽은 직후 소현세자의 얼굴은 검은 낯빛을 하고 피를 토하고 죽어서 독살을 의심할 정도로 배후에 인조가 있다는 설이 끊임없이 제기 됐다.

 

아들이 죽었으면 그 아들 소현세자의 뒤를 그의 아들이 왕위를 이어야 하는데 왕이 된 것은 인조의 둘째 아들, 소현세자의 동생, 봉림대군이었다.

 

 

효종의 북벌정책

 

그렇게 왕위에 오른 봉림 대군이 효종이다.

청을 배우려고 했던 형과 다르게 효종은 청나라에 복수를 꿈꾸며 북벌정책을 택한다. 

 

 

소현세자 가계도

소현세자가계도

 

소현세자빈 강빈

 

소현 세자의 부인 세자빈 강씨를 '강빈'이라 부른다. 1627년에 17세에 세자빈이 되었으나 그녀의 세자빈 생활은 순탄치 않았다. 1627년 정묘효란이 있었고 그후 1636년 병자호란때 강화도로 피란을 가게 되지만 강화도가 함락되면서 남한산성에 갇히게 되고 인조의 삼전도의 굴욕이후 소현세자, 봉림대군과 함께 인질로 청나라로 끌려갔다. 

 

강빈의 성격

소현세자빈 강빈은 위기에도 기지를 발휘하고 체면보다는 실리를 중시하는 성격으로 청나라 수도 심양에 도착했던 소현세자빈 강씨에게 황제가 있는 곳에 가마를 타면 안된다고 하니 말을 타고 들어간다. 그렇게 청나라 심양에서 새로운 생활을 시작했다. 

 

청나라에서 8년간의 인질 생활후 귀국하지만 인조와 소현세자의 갈등이 심화되면서 며느리도 좋게 보일리 없는 인조였다. 그러다 귀국 후 2달만에 돌연 남편 소현세자가 죽게 된다.

 

소현 세자의 죽음 이후 세자빈 강씨는 인조에게 분노를 보였다.

남편이 죽은후 자신의 세 아들을 제쳐두고 동생인 봉림대군에게 왕위를 승계하자 머리를 풀어헤지고 시아버지에게 달려가 고래고래 고함을 질렀으며 강빈의 오빠들도 곤장을 맞아 죽게 되면서 그 이후 문안인사도 드리지 않았다. 이에 분노한 인조는 강빈(=소현세자빈)을 유폐시킨다.

 

 

그러던 어느날 인조의 수라상에 오른 전복에서 독이 발견되면서 강빈과 가까웠던 궁녀들을 누명을 씌워 하나씩 제거하기 시작하고 결국 1646년 강빈도 역모죄로 시아버지 인조에게 사약을 받게 된다.

 

img 드라마 '꽃들의 전쟁' 

인조실록에는 소현세자빈 강빈의 강한 성품이 죽음에 이르게 했다고 강조하고 있다.

 

이후 소현세자의 세 아들 중 둘은 제주도 유배지에서 풍토병으로 사망하고 막내 아들마저 길었던 유배생활을 마치고 22살에 생을 마감한다. 결국 모두 몰살 당한 소현세자의 가족이었다. 

 

역모죄로 죽은 세자빈 강빈은 남편 소현세자 옆에 묻히지 못하고 집안의 선산에 묻히게 되고 숙종때 소현세자빈의 억울함을 인정해 명예를 회복시키고 '민회빈'이란 시호를 내린다.

 

소현세자빈 강빈 묘

 

소현세자빈 강빈 묘 영회원<출처 문화재청 >

소현세자의 묘 

소현세자 묘 소경원 /경기도 덕양구 소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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