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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V 방송 리뷰/선을 넘는 녀석들 리턴즈

삼전도 굴욕의 삼배구고두례와 삼전도비 내용

by 365 ^^ 2021. 1. 12.

 

[선녀들 32회 초반]

 

오늘의 탐사지: 삼전도비 앞

주제: 삼전도의 굴욕

 

 

조선 16대 왕 인조는 병자호란 항복 선언을 남한산성에서 한다. 그리고는....

 

삼전도의 굴욕 

 

 14.2km의  반나절을 걸어 굴욕적인 항복 의식이 있는 삼전도에서 멈춘다.

 삼전나루터 (롯데월드 근처)

옛날에 이곳은 섬이였고 한강으로 둘러싸여 있던 곳이다. 

 

 

 

삼전도비가 있는 곳에서 아홉 단으로 높이 쌓은 수항단 위에

청 황제 홍타이지가 앉아 있고 인조는 그를 올려다 보며 죄를 고백한 뒤 삼배구고두례를 한다. 

삼배구고두례란? 

무릎을 꿇고 양손을 땅에 댄 다음 머리가 땅에 닿을 때까지

 세 번 절하는 의식을 3번 실행하는 총 아홉 번 머리를 조아리는 패배한 왕의 굴욕적인 항복 의식었다. 

 

이마의 피는 드라마적 픽션

단군이래 가장 치욕적인 순간이었다. 그렇게 조선은 청나라의 속국으로 전락했다. 야사에는 이마에 피를 흘렸다는 내용 있으나 정사에는 어디에도 피를 흘렸다는 내용은 나오지 않는다.   

 

 

 

 

삼전도비

 

그 이후 청과의 관계는 군신 관계로 굳어졌고 청 황제의 강요로 세운 전승비가 바로 삼전도비다. 

굴욕적인 삼전도 비문을 쓰고자 하는 신하가 없었는데 인조의 간곡한 부탁에 문신들이 간신히 작성하는 와중에 청나라 사신은 일일이 감시를 했다 

 

삼전도비문 내용 (대청황제공덕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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받침이 두개인 이유에 대해서는 서로 상관없는 별개의 장식이라는 의견과 만드는 중간에 더 큰 비로 만들려고 했을지 모른다는 서로 연관성이 있는 의견으로 분분하지만 자세한 내용은 알수가 없다. 

 

 

 

 

 

이 굴욕적인 비를 없애버리려 1895년 고종 때 삼전도비를 한강 주변에 매립을 했다. 묻어버리고 싶었던 패배와 굴욕을 상징이던 이 삼전도비를 일제가 강바닥에서 발견해 다시 세운다.

 

광복 이후 다시 삼전도비를 묻었지만 1963년에 대 홍수로 또 다시 매몰됐던 삼전도비가 드러났다. 그 후에 수차례 이설을 거듭하다 1980년 석촌동 주택가에 있던 비를 지금의 잠실동으로 2010년에 이전 설치하게 된다. 

2007년에는 정치인들의 각성을 촉구한다며 370년 전의 우리의 치욕이라며 누군가 낙서를 했다. 

 

결국 3개월에 걸쳐 4000천 만원을 들여 복구했다.

비록 부끄러운 역사 일지라고 잊지 않고 기억해야 반복되지 않을 역사 그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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