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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V 방송 리뷰/선을 넘는 녀석들 리턴즈

[대동법, 탕평책] 숙종의 업적

by 365 ^^ 2021. 1. 14.

숙종의 업적

  

 

 탕평책 처음 실시

 

정치적 다툼을 잠재우기 위해 골고루 인재를 등용하는 탕평책을 처음 시행한 왕이 숙종이지만

여러 당파를 고르게 등용하여 정치를 안정시키기 위한 정책으로 시행한 제도가 왕권 강화의 도구로 전락한다.

 

숙종의 탕평책이 토대로 정조 때 탕평책의 열매를 맺는다.

 

국방력 강화 

 

병자호란을 겪고 북벌을 외친 효종, 그의 손자가 바로 숙종으로 그 영향으로 북방과 서해의 적을 견제하기 위해 북한산성을 쌓고 백두산에 정계비를 세운다.

 

 

경기도 광주에는 남한산성을  (동남쪽으로)

 

강화도에는 돈대를 건설 

돈대란 ? 강화도에 설치되어 있는 군사기지로 평지보다 높게 성을 쌓아 놓은 것을 말하며 해안선을 따라 설치되어 있다. 

 

수도와 외곽을 지키는 다섯개 부대 금위영을 포함 5군영을 완성한다.

 

 

경제분야

 

무항산이면 무항심이다. -> 생산이 없어 생활이 안정되지 않으면 바른 마음을 가질 수 없다. 백성들의 경제적 생활 안정이 통치의 근본임을 강조하여 상평통보를 발행(1678)한다. 

 

 

 

 

대동법 

 

대동법을 처음 실시한 왕은 광해군이다. 

전쟁을 겪고 굶주린 백성들을 위해 가난한 백성들을 위해 광해군이 납세 제도를 개혁한것이 대동법의 시작이다. 

 

대동법 시행 배경

 

국정 운영에 필요한 의복, 음식 등 다양한 물품들을 지금은 세금을 통해 구입을 하면 되지만 필요한 물품을 모두 구입하기엔 한계가 있었다. 그래서 삼국 시대부터 세금을 대신해서 각 지역의 특산품을 받았던 것을  공납이라고 했다. 

 

문제는 관리나 상인이 대신 공물을 납부하고 폭리를 취하던 행위가 성행했다. 이를 방납 이라고 한다. 이들은 대납가를 통해서만 물품을 구입해 납부하도록 시켰다. 대납가들의 물건 하나의 가격이 80배~100배에 이르렀고 거기서 남은 이익은 각 지방 사또나 대납가,상인이 나눠 가졌다. 대신 납부해준다는 핑계로 백성을 수탈 했던 방납의 폐단이 이미 고질화 되었다.

이미 피폐한 삶을 살았던 백성들을 위해 광해군이 대동법을 시행했다. 

 

특산품을 납부하던 공납을 없애고 대신 땅이 많은 사람에게 대동미라는 이름으로 쌀로 납부하는 방식의 납세제도다. 토지의 많고 적음에 따라 땅 많은 사람은 많이 내는 부자증세였다. 아직 화폐가 정상적으로 유통되지 않던 시기로 땅이 곧 돈인 시절이었다. 

 

이러한 조세 개혁이 불만이었던 지주들 때문에 100년이 지나서야 대동법이 완성이 된다. (광해군 때)경기 지역에서만 실시한 대동법을 전국적으로 실시한 왕이 숙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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