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굴암
(Seokguram Grotto)
석굴암은 국보 24호로 불국사와 함께 1995년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었다. 경주는 습기가 많은 지역으로 경주에 있는 토함산의 이름도 내뱉을 토, 머금을 함, 동해안 습기를 다 머금어서 구름,안개를 토한다는 뜻이 있다. 토함산은 동해로 들어오는 왜구들을 막아내기 위한 신라시대 지리적 군사적 요충지로 절을 많이 지었고 그 중에 대표적인 것이 이 산 정상에 석굴암이 있다. 창건 당시 석굴암은 석굴사였다.
통일신라 경덕왕 10년인 751년에 제작된 석굴암은 세계에서 유일한 인공 석굴사원이다. 석굴사원의 기원은 인도에서 찾아볼 수 있는데, 인도는 더운 기후로 인해 사람들이 시원한 석굴 안에서 부처를 만나기 위해 자연 석굴을 이용한 사원을 만들기 시작했다. 이 전통은 중국으로 전파되었고, 중국에서도 여러 석굴사원이 만들어졌다. 우리나라도 이 석굴사원을 만들고자 했으나, 한국의 산 대부분이 단단한 화강암으로 이루어져 있어 인도나 중국처럼 자연적인 석굴을 활용할 수 없었다. 하지만 이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우리 선조들은 돌을 깎아 쌓는 방식으로 인공 석굴을 만들어냈다. 세계적으로도 이러한 인공 석굴사원은 유일하며, 그 역사적 가치와 예술적 독창성을 인정받아 국보 제24호로 지정되었다.
현재 석굴암은 보존을 위해 유리벽으로 막혀있고 대부분의 사람들은 석굴암(본존불)을 유리벽 너머로 잠깐 보고 가야한다 .
석굴암은 전세계 유례가 없는 석굴 사원으로 360개의 돌을 창의적인 기술로 쌓아 만든 둥근 지붕을 가진 인공 석굴이다. 사실 우리나라처럼 돌질이 단단한 화강암질에서는 불가능한 방식이다. 화강암으로 건축을 한다는 자체가 고행에 가까운 것이다.
석굴암하면 일출로도 유명하다.
불국사, 석굴암은 어떻게 만들어졌나?
석굴암, 불국사를 건축한 사람은 김대성이다. 삼국사기에 김대성은 745~774년까지 불국사와 석굴암을 지은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그는 재상=집사성 중시였다. 어느 날 밤 신라의 재상 김물량이 하늘로 부터 신비한 소리를 듣는다.
김대성이라는 아이가 너의 집에 태어날 것이다라는 것이다. 그리고 열 달 뒤 태어난 아이는 주먹을 펴지 않는다. 그 주먹 속 금으로 된 쪽지에 김대성이라고 새겨져 있었고 김대성은 전생을 기억하고 있었다. 그래서 김대성은 현생의 부모를 위해 지은 절이 불국사, 전생의 부모를 위해 지은 절이 석굴암이라고 한다. (삼국유사 제5권 효선 제9)
불국사: 힘든 세상을 살아가는 사람들이 부처님의 나라로 가는 과정을 표현
석굴암: 석가모니 부처님이 깨달음을 얻던 그 순간을 표현
김대성은 삶과 죽음에 대한 불교적 깨달음을 얻은 것으로 보고 효를 강조하기 위해 지은 것으로도 본다.
석굴암은 어떻게 발견되었나?
일제강점기때 석굴암이 있는 줄 모르고 있다가 토함산 일대를 넘어가던 한 우체부에 의해 발견된 것으로 주변에 흙이 무너져 있고 흙더미 사이로 드러나 있던 석굴암을 보고 일본인 우체국장에게 보고하게 되고 국장은 직접 현장에 방문하면서 석굴암의 존재가 드러난 것이다.
석굴암의 위기
1907년에 발견이 된 석굴암을 초대 이토히로부미의 후임인 2대 통감 소네 아라스케는 석굴암에 눈독을 들이기 시작하고 그 뒤를 이어 부임한 초대 총독 데라우치 마사타케에 의해 복원작업에 들어간다.
일제가 복원을 명분으로 무분별하게 해체를 한 후 당시 일본의 선진 복원 기술을 보여주려는 욕심에 석굴암 복원에 시멘트를 사용했다. 그 당시는 전세계적으로 시멘트가 신비하고 문화재 복원에 탁월하다고 평가 받던 물질이었다. 그래서 석굴암을 의도적으로 망가뜨리기 위해 사용한 것은 아닐 것이다.
결과적으로 만들어진 석굴암을 시멘트로 발라버려 외부와의 공기가 차단되어 시멘트 돔 속의 석굴암이 훼손이 되었다. 이로 인해 내부습도 상승으로 급속도로 석굴암은 부식되기 시작한 것이다.
석굴암의 습도 조절 방법
석굴암은 일제강점기때 보수 공사를 하고 생긴 문제 중 하나가 습기가 차는 문제였다. 그전에는 차지 않았던 습기였기때문에 석굴암의 구조에 어떤 비밀이 있을 것으로 추측만 하고 있다. 석굴암을 둘러싸고 있는 자갈들이 공기를 통하게 했다? 돔 구조의 틈이 석굴이 숨쉬는 기능을 하는 통로였다?
또 다른 것은 석굴암 내부온도 20도 , 바닥 온도 13도로 석굴암 바닥에 물길을 만들어 습기조절을 했다는 설이 있다. 일제강점기 보수공사할때 석굴암 바닦의 물길을 모두 막아놓았다고 한다.
결국 해방 이후 우리나라는 1960년 이후 복원 작업으로 지금의 모습을 찾게 된 석굴암의 모습이다. 현재는 석굴암은 에어컨,제습기로 습도를 조절하는 중이다.
석굴암 돔 천장 무너지지 않는 이유
천장 안쪽으로 기울어지는 힘을 천장사이 돌을 끼워 중력과 반대되는 힘으로 잡아당기는 힘으로 상쇄시키는데 이 돌 이름이 동틀돌인데 무게 중심을 뒤로 보내 앞으로 무너지지 않게 막는 역할을 한다. 그런데 통틀돌이 무거워 이제는 앞으로 들리는 상황이 되니 무거운 돌로 위에서 눌러주어 힘의 균형을 맞춰준다.
하늘은 둥글고 땅은 네모인 천원지방의 사상이 투영되어 돔형식으로 만든 것이다.
석굴암의 구조와 수학적 비례들
하늘은 둥글고 땅은 네모의 천원지방 사상이 나타나 있는 구조로 땅을 의미하는 전실과 하늘을 의미하는 주실, 그리고 이 두공간을 이어주는 비도로 되어 있다.
뿐만 아니라 석굴암의 전체 구조도 비례를 이룬다. 그냥 만든 것이 아니라 인체 사람에 대한 관찰과 연구를 토대로 만들었을 것으로 추측한다.
석굴암 안에는 본존불상을 비롯해 38구 불, 보상상이 조화롭게 배치되어 있다.
석굴암의 미스터리
광배의 위치
본존불상은 위압감을 덜기 위해 정중앙보다 살짝 뒤에 위치에 있다. 이런 배치는 빛이 있을때 앞면은 밝아지고 뒷면은 어두워지는 효과가 있고 불상의 광배를 머리 뒤에 바로 붙이는 반면 석굴암의 광배를 떨어져 있어서 보는 사람의 위치에 따라 다르게 보인다.
광배가 정중앙에 위치하는 위치가 키가 160CM 의 사람이 서있는 모습의 시선인데 당시 평균키일 가능성을 추측해본다.
빛은 어떻게 들어왔나?
그 옛날에는 밖으로 이어진 반들반들한 전실 바닥에 빛이 반사돼 들어간 것으로 추정한다. 석굴암에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과학적 기록은 남기지 않아 전부 추측일 뿐이라 아쉬움이 남는 부분이다.
이렇듯 석굴암은 건축, 수리, 기하학, 종교, 예술이 총체적으로 실현된 유산이다.
[출처 선마 7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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