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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V 방송 리뷰

삼풍백화점 붕괴 원인과 생존자 구조과정

by 짱신나^^ 2021. 6.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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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5년 6월 29일 목요일 저녁 삼풍백화점이 붕괴되는 사고가 일어난다. 인명피해사고가 발생한 건물 붕괴사고로는 세계 3위 안에 드는 엄청난 사고였다. 이 사고로  502명이 사망하고 6명이 실종 937명이 부상을 당했다.

 

세계 3대 인명피해 심한 건물붕괴사고

세계 3대 인명피해 심한 건물붕괴사고

  1. 미국 세계 무역 빌딩 사고
  2. 방글라데시 라나플라자 공장 건물 붕괴사고
  3. 한국 삼풍백화점 붕괴사고 (502명 사망)

 

 

 

 

 

붕괴 당일 모습

1989년 12월 1일 삼풍 백화점을 오픈한다. 서울 강남에 위치한 최신 설계로 지어진 백화점이었고 업계 매출 1위를 기록하며 승승장구하며 건축된 지 5년이 지나고 있는 시점이었다. 매일 4만여 명의 손님이 방문했고 5층 건물이 무너지리라고는 그 누구 상상하지 못했다. 

 

저녁 6시 즈음은 1500명의 손님이 쇼핑 중이었다. 손님 대부분은 할인행사가 진행 중인 지하 식품매장에 몰려있었다.  6시 직전 위층에서 기차가 지나가는 소리가 난다. 그리고 바로 5층의 바닥이 내려앉으며 건물이 순식간에 붕괴되기 시작한다.  불과 20초도 안 되는 시간에 건물 하나가 무너져 내렸다. 대피할 시간은 고작 몇 초밖에 되지 않았다.

삼풍백화점 붕괴 직후 모습 1
삼풍백화점 붕괴 직후 모습 1

 

이 사고를 보며 건축공학자와 기술자들은 도저히 있을 수 없는 일이라며 의문을 제기했다. 이 건물 붕괴 어떤 폭탄, 가스 테러나  비행기 충돌도 없었다.  건물 자체 무게를 못 견뎌 무너진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붕괴 원인을 조사 착수

사고 발생 몇 시간 만에 기술자와 조사단이 도착했다. 건물 붕괴 원인을 조사하기 시작한다. 이전에도 1999년 진도 7.4의 지진에 터키에서 부실자재 사용한 대부분의 건물이 붕괴되었다.  콘크리트의 문제가 있는지 알아보기 위해 현장의 콘크리트를 채취에 압축 강도를 측정해본다. 그러나 콘크리트는 부서지지 않았고 아무 이상이 없었다. 결국 붕괴원인은 따로 있다는 말이었다.

 

삼풍백화점 같은 건물의 구조는 세계 여러 나라에 있고 플랫 슬래브 구조의 콘크리트 기둥의 건물이 붕괴될 이유는 전혀 없다. 그러나 우리나라에서 그런 일이 일어났다. 

 

 

 

 

 

 

 

건물 용도 변경(사무실-> 백화점)

설계도면을 확인해보니 원래 삼풍백화점의 용도는 사무용 건물을 짓기를 원했다. 그러나 공사 도중 소유주는 백화점으로 용도를 바꾸기를 원했다고 건설업체가 이 요구를 받아들이 않자 소유주는 계약을 파기했다. 그리고 용도 변경에 문제없다는 계열사 건설사에 건축을 맡긴다.  사실 건축 설계 시 용도 변경은 자주 있는 일었다. 그러나 이 건설사는 기존의 기둥 79cm->58cm로 25%나 줄였고 심지어 에스컬레이터의 기둥은 더 많이 줄여놨던 것이다. 

 

4층으로 건축 허가된 건물에 5층 올림

더 놀라운 것은 소유주는 원래 4층 건물로 건축허가를 받은 상태였다. 하지만 삼풍 백화점은 5층이었다. 이것은 3000톤의 콘크리트를 추가로 쏟아부으며 지지 기둥의 보강 없이 한 층을 더 올린 것이다. 하중은 더욱 증가된다. 5층은 대부분 식당이 임대되었고 무거운 주방설비가 들어왔다. 또한 한식당이 들어오면서 바닥에 난방장치를 설치하다 보니 추가로 두께 30cm의 콘크리트가 추가로 들어가게 된다. 

 

또한 소유주는 옥상에 36톤의 냉방장치를 설치했고 여름에 냉각수를 채울 경우는 무게는 3배로 들어 87톤에 이르며 설계하중의 4배에 달하는 것이었다. 

 

 

 

 

 

 

 

붕괴 원인 

 

삼풍백화점 붕괴를 조사한 결과 수많은 불법 증축과 과도한 비용 삭감이 발견되었다.  건설업체는 추가 하중에 대한 계산을 전혀 고려하지 않았고 하중을 전달하는 기둥의 지름을 줄이면서 실제로 최악의 실수를 저지른 것이다. 

 

  • 건물 전체 기둥 지름을 25% 줄임, 에스컬레이터 기둥 지름은 더 줄였다. 
  • 한 층을 더 올리며 무거운 설비를 더 들여놓으며 하중을 높였고
  • 붕괴 2년 전 소음문제로 냉방장치를 옮기면서 비용절감을 위해 기중기를 사용하지 않고 굴림대를 이용해 냉방장치를 반대편으로 이동한다. 무거운 냉방장치가 이동하면서 지붕 전체에 균열이 생긴다. 시간이 지나면서 바닥이 처지고 밑에 있던 기둥이 뚫고 올라왔다. 

굴림대로 바닥으로 굴려 이동하다 옥상 바닥에 균열이 생김

 

붕괴 당일 5층 바닥이 쳐지면서 약해진 옥상 바닥까지 끌어당기면서 6시 직전 삼풍백화점의 5층과 옥상의 바닥이 무너지면서 건물 전체가 붕괴된다. 

 

붕괴전날 지붕 바닥의 사진

  • 또한 당시 서초 구청에서 안전성 검사를 실시한 결과 이상이 없다고 진단을 받은 상태였다. 

 

건물 붕괴의 신호들 

보통 철근 콘크리트 건물은 무작정 붕괴되지는 않는다. 먼저 균열이 발생하고 균열이 퍼지면서 부서지기 시작하는 위험신호가 나타난다. 삼풍백화점의 경우도 그랬다. 사방에서 위험 신호가 나타났다.

 

붕괴 당일 오후 5층 식당의 천장에서 분열이 발견되었고 주방은 더 심각해 흙이 떨어지고 바닥은 내려앉기 시작했다. 식탁은 심하게 기울어져있었다. 식당은 건물주에게 이 사실을 알렸고 이들은 건물 검사관을 부른다.

 

붕괴 전날 찍은 5층 천장 사진
심하게 기울어진 식탁 모습

 

건물주의 방관

검사관은 건물 상태가 위험하다고 판단하고 즉시 사람들을 대피시키라고 권한다. 하지만 건물주는 옥상에만 문제가 있다며 진동을 최소화하기 위해 냉방장치의 가동을 중단한다. 그 후에 사람을 불러 천장 균열을 보수한다. 그리고 보수작업이 끝날 때까지 보수작업을 폐쇄한다.  

 

 

 

 

 

 

 

 

생존자 구조작업

 

붕괴 후 며칠째 구조작업이 진행되었지만 큰 성과가 있는 것은 아니었다. 그리고 철거반은 잔해를 철거하기 위해 중장비를 동원하게 된다. 잔해가 무너지면 생존자가 깔릴 수도 있는 상황이 된 것이다. 

 

삼품백화점 최후의 생존자 3명

11일 만에 구조된 최명석(남), 신발매장 근무 직원

13일 만에 구조된 유지환(여), 지하 1층 크리스털 매장 근무 직원

17일 만에 구조된 박승현(여)은 지하 1층 아동복 매장에서 근무하던 직원

 

 

지상에서는 구조대원에 의해 신발매장에서 일하던 최명석(당시 21살)이 11일 만에 구조되었는데 상처 하나 없이 구조된 것이다. 그의 생존이 구조에 희망을 심어줬다.

 

이틀 뒤 최명석이 매몰되어 있던 3m 지점에서 13일 만에 유지환이 구조되었다. 유지환이 있던 곳은 높이 30cm에 길이 1.5m의 1평 남짓한 공간으로 몸을 틀기도 힘든 공간이었다. 

 

 

 

 

 

 

 

박승현이 깔려있던 곳에는 또 다른 생존자가 있었다. 같이 일하던 동료였고 다친 상태로 고통을 호소하고 있었다. 그러나 박승현의 동료는 얼마 뒤 더 이상 말이 없었다. 삼풍백화점 구조작업 16일째 추가 생존자가 더이상 나오지 않자 철거작업이 과감하게 진행된다. 그때쯤 박승현은 며칠째 의식을 잃었다 찾았다를 반복하면서 버티고 있었다. 위에서는 기계소리가 들렸지만 작은 파이프를 두드리며 구조요청을 하기에는 주변 소음이 너무 컸다. 철거작업으로 인해 잔해더미가 무너지면서 빈 공간이 점점 좁아지고 있었다.  

 

붕괴 17일째 되던 날 중장비가  콘크리트 조각을 걷어내면서 빛이 들어왔다. 그리고 박승현은 살라달라고 외쳤고 작업자들은 이 소리를 듣고 거기 사람 있냐고 물었고 이에 구조대원들은 손으로 잔해를 파기 시작했고 몸에는 별다른 부상 없이  드디어 구조가 되었다. 그리고 병원으로 바로 옮겨져 1달간 입원했다 퇴원한다. 

 

 

삼풍백화점 이후 

그리고 건물 붕괴의 내막이 밝혀지면서 건물 소유주와 그의 아들은 건물을 짓기 위해 공무원에게 뇌물공여, 형사상 과실로 감옥에 수감된다. 관련 공무원 12명도 징역을 선고받았다.  이 사건으로 최근 건축한 건물을 모두 점검하도록 지시했고 건축법규 또한 강화한다. 

 

삼풍백화점 이준 회장은 6년 7개월을 복역하고 나와 6개월 뒤 사망한다. 또한 이한상 사장은 7년을 복역했다. 

 

 

삼풍백화점 추모비 

당시 삼풍백화점 붕괴사건 추모비를 유족들은 현장에 위령탑을 세우기를 바랬고 서울시, 여론또한 동의했으나 2년만에 백지화되고 현재 양재동 시민의 숲 안쪽에 자리잡고 있다.

 

 

[출처 네셔녈지오그래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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