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남은 과거 텃밭만 있던 땅이였는데 한남대교가 1969년에 개통이 되었는데 당시 짜장면값이 100원이던 시절 1969년 신사동 땅 1평의 가격은 200원이었다. 그만큼 쓰지 않던 땅으로 현재 가격으로 약 7000원이었다. 그런 200원짜리 땅이 한남대교 착공 후 1년만에 3000원으로 오르기 시작했고 남북 경제 격차가 발생하고 토지 투기 개념이 성립하게 된다. 강남이 개발될 때만 해도 인구도 거의 없었다.
강남 개발 이유
한국전쟁이후 인구는 10년 단위로 매년 두배씩 늘어나기 시작했고 1960년 약 240만 명, 1970년 약 550만명으로 인구 포화상태가 되었다. 강남은 한강의 남쪽 서초구, 강남구, 송파구 정도를 강남으로 여기지만 1960년대까지 한강 이남의 도시는 영등포가 유일했다 그래서 강남을 처음 개발할때는 영등포 동쪽의 빈땅을 개발한다는 목적으로 영동지구개발사업이라고 불렀다. 개발이 본격화된 후 1975년에 강남구가 생기게 됐다.
강남이 개발된 이유도 전쟁시 사람들을 대피가 용이하게 하는 것이 목적이었기 때문에 강북의 인구밀도를 줄일 필요가 있었고 이에 강남을 개발하게 된 것이다. 강북 의존도를 낮추기 프로젝트의 일환이었던 것이다.
강남 발전 과정
1970년대 강남은 물류의 핵심 경부고속도로가 생긴다. 처음 한남대교를 경부고속도로를 출발점으로 삼았고 영동대교(영동대로는 강남에서 제일 넓은 도로) 영동대교와 한남대교에 경부고속도로쪽으로 가는 그 사이에 최초의 강남지역이 자리를 잡는다. 기초 도로망이 확보된 후 80년대에 한강 개발도 진행된다.
1969년 서울도심과 강남, 경부고속도로를 연결했던 제3한강대교는 70년대 강남권 개발의 신호탄이된다.강남이 발전하는 사이 올림픽대로와 강변북로 또한 생겨난다. 1960년대~70년대 말까지 여름에 한강은 백사장이 있는 서울 최대의 해수욕장이자 피서지였다.
강남의 탄생과 부의 상징
1970년대 초 한국인의 교육열을 반영하듯 서울에는 명문고등학교들이 존재했다. 이에 고등학교 간의 학력 격차를 줄이고 명문고 편중에 따른 폐단을 없앨 목적으로 1974년 '고교평준화'를 도입한다.
1970년대 강남개발사업이 한창이던 때에 고교평준화를 시행했는데 사람들이 이사를 가지 않자 1976년 경기고를 시작으로 명문고 18개를 강남지역으로 이주 시킨다. 또한 그 당시만 하더라도 상대적으로 강남이 땅값이 저렴해 개발이익이 많이 남아 고층 아파트 단지를 개발했다. 그래서 최초의 신흥부자들이 생기던 곳이 강남이다.
강남발전의 요인
▶명문고를 강남으로 이전
▶물류에 유리한 교통 기반
▶고층 아파트 단지를 개발
▶강남권 입주시 조세특례 세금혜택도 있었다.
물이 맑아 집집마다 우물의 물이 맛있었다면 청숫골 =청담이다. 강남이 농촌이었다는 흔적이 있는 청담동 비석 청담애향비
현재 강남 모습
급속한 발전의 인한 부작용으로 강남의 초호화 삼풍 백화점의 붕괴와 성수대교 붕괴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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