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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V 방송 리뷰

성수대교 붕괴 사고 1994년 무엇이 문제였나?

by 짱신나^^ 2021. 6.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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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4년 10월 21일 아침 7시40분  성수대교가 무너졌다.

 

아침 7시 40분쯤 갑자기 다리 중간 45m가 끊어진다. 달리던 차가 그대로 추락해 32명이나 사망했고 17명이 다친다.
성수대교는 강남과 강북을 이어주는 중요한 다리이다. 다리를 건너야만 통학할수 있던 사망자들 사이엔 9명의 무학여고생들도 있었다.

 

 

다리가 붕괴된지 모르고 달리고 있던 시내버스는 그대로 떨어져 인명피해가 제일 컸던 차량이다.
성수대교는 1977년 다리가 개통된다. 그러나 당시 다리에 대한 안전 검사는 제대로 시행되지 않고 있던 시절 이었다.
확인 결과 시공사는 시공방식을 엄격히 지키면 용접이 어렵고 공사기간이 늦어져서 돈 때문에 불량용접을 했고 이로 인해 다리가 무너진 것이다.
그러나 더 큰 문제는 서울시는 사고 나기 몇시간 전에 성수대교 상판의 문제를 보고 받았음에도 이를 무시했다고 한다. 성수대교가 무너지기 10시간 전인 전날 밤 9시반 서울시 도로국 산하 건설 사업소는 무너진 곳 50M 부근에 상판 이음새 이상을 발견했지만 비가 온다는 이유로 일부만 보수 후 철수해버린 것이다.

 

1994년 사회분위기

 

1994~1996년 이 무렵이 우리나라가 OECD에 가입한 시기였고 우리도 선진국 시기로 들어간다고 축배를 하던 상황에 이런 어이없고 끔직한 사고가 일어나면서 빠른 국가성장에 대한 후유증이면서 우리나라는 내부적으로 아직도 후진국에서 벗어나지 못했다는 것을 전세계에 알린 꼴이 되었다.

 

안전불감증 팽배

설마 이 건물이 무너지겠어?  '이거 정도는 괜찮겠지'하는 생각들이 쌓인 것으로 안전불감증이 팽배했던 시절이다. 안전벨트도 잘 안 하던 시절이었고 오토바이도 헬멧없이 여러명이 타곤했다. 

 

하인리히 법칙

이러한 재난 상황과 관련된 1:29:300의 법칙인 하인리히 법칙이 있다.  굉장히 많은 사상자를 내는 하나의 사건에 같은 이유로 작은 규모의 사건이 29건이 있고 아주 경미한 사건이 300건 발생한다는 법칙으로 거대한 사건은 한번에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무많은 전조 사건이 일어난다는 것이다. 

 

소 잃고 그때라도 외양간 고쳤어야 했다.!!

소잃고 외양간 고친다는 말처럼 소 한 마리를 잃었을 때 외양간을 고쳐야 한다. 그때라도 고치면 나머지는 잃지 않을 텐데 8개월 뒤 삼풍백화점이 무너진다. 그렇게 많은 전조현상과 경고가 있었음에도 따르지 않는 결과인 것이다. 

 

 

 

삼풍백화점 붕괴 원인과 생존자 구조과정

1995년 6월 29일 목요일 저녁 삼풍백화점이 붕괴되는 사고가 일어난다. 인명피해사고가 발생한 건물 붕괴사고로는 세계 3위 안에 드는 엄청난 사고였다. 이 사고로 502명이 사망하고 6명이 실종 9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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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수대교 위령탑

 

성수대교 위령탑은 숨어있다. 서울숲 근처로 보이지만 도로에 둘러싸여 도보론 갈수 없는 상황으로 오로지 차로만 갈 수 있는 곳이다. 아는 사람만 갈 수 있는 공간이다 . 우리의 어두운 면, 치부는 숨기고 싶은 심정이었던가? 

 

사방이 도로로 둘러싸여 있는 성수대교 위령탑
아는 사람과 유가족만 찾는 성수대교 위령탑

[출처 알쓸범잡 11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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