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얀마는 세계 경제, 안보의 요충지로 많은 나라와 국경이 맞닿아 있는 국가이다. 미얀마 인구 5,480만 ,면적 6765만 9ha(세계 38위) 국토면적이 아시아의 10위, 대한민국의 7배이다. 정식 국가 명칭은 '미얀마 연방 공화국' 버마->미얀마로 1989년에 개칭한다.
미얀마는 다민족 국가로 버마족이 68% 샨족 9% 카렌족 7% 라카인족 4% 몬족 2% 공인된 민족만 135개국이다.
이런 다민족으로 인해 언어와 종교가 다양하며 이로인한 문제와 갈등이 많은 나라였다. 소수민족 탄압의 역사는 영국의 식민지 시절부터 시작된다. 영국의 식민지로 방글라데시도 있었는데 방글라데시 '치타공'에 사는 로힝야족을 영국은 미얀마 라카인주로 이주시킨 후 일자리와 토지를 제공했다.
그러나 라카인주의 토착인들 종교는 불교였고 로힝야족은 이슬람이었다. 이것은 토착민과 로힝야족의 갈등을 유발했고다. 이전부터 사이가 좋지 않았던 라카인 토착 민족과 로힝야족은 일본 식민지배 때(1942~1945) 갈등이 폭발한다.
라카인(아라칸) 대학살 (1942)
1942년 로힝야족은 영국에서 일본 식민지로 넘어가는 과정에서 영국의 편을 들었다. 일본의 탄압과 민족 간 갈등 고조로 로힝야족이 라카인주의 토착민 2만여 명을 학살하고 이후에도 민족간 폭동과 학살이 반복되어왔다.
네 윈 정권 속 로힝야족 탄압
영국과 일본으로부터 독립 후 네 윈 독재체재 (1962~2015)하 이때부터 군부 독재하에 본격적으로 소수민족 탄압이 시작된다. 그중에서도 가장 가혹한 억압에 내몰린 로힝야족이었다. 네 윈 정권은 로힝야족을 공공의 적으로 만들었다.
1982년 군부의 시민권법이 개정이 되는데 영국 통치 이전부터 거주한 사람에게만 시민권을 주겠다는 법으로 공인된 민족 135개 속에 로힝야족은 없었다.
미얀마 군부의 3등급 시민권 제도
로힝야족은 3등 시민으로 투표권, 유산상속, 재산권이 없다.
군부의 독재가 길어질수록 더욱 교묘해지는 차별제도 ' 화이트카드' 가 등장한다. 2008년 선거를 2년 앞둔 군부는 로힝야족에게 화이트 카드를 발급해준다.
이것은 임시거주증 개념의 카드로 군부 세력에 투표하면 선거가 끝나고 시민권을 주겠다는 약속의 표시인 것이다. 그러나 선거에서 승리한 후 군부는 이 약속을 지키지 않는다.
그리고 2015년 화이트 카드를 무효처리하고 터키색 카드로 변경한다. 터키색 카드에는 미얀마 시민임을 증명할 수 없음이라는 문구가 정확하게 명시되어 있는 카드였다.
2017년 로힝야족 학살 사건
로힝야족 일부가 미얀마 경찰초소를 습격했다는 이유로 어린이 730여 명을 포함 군부는 로힝야족 6700여 명을 학살한다. 산 채로 불에 던지고 물에 빠뜨려 죽이고 집에 가둬 불태워 죽이고 집단강간에 시신 유기까지 끔찍한 학살을 자행했던 군부였다.
현재 군부가 로힝야족에게 했던 그대로를 미얀마 사태의 민주화 운동으로 죽은 시민들의 시신을 탈취, 유기하는 등 미얀마 시민에게 되풀이하고 있다. 이런 미얀마 사태로 인해 소수민족과 통합을 시도하는 의미로 민주진영 정부 인사가 최초로 공개적으로 로힝야족에게 사과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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