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TV 방송 리뷰/선을 넘는 녀석들 리턴즈

무신정변의 원인과 경과(이의방-정중부-경대승-이의민-최충헌)

by 짱신나^^ 2020. 11. 26.
반응형

 

[선을 넘는 녀석들 리턴즈 64회 2]

 

오늘의 탐사지: 강화도

주제: 무신정변 원인과 경과
출연자: 설민석 

 

 

무신정변이 일어난 이유 

 

고려 18대 왕 의종은 내시,환관 등과 함께 친위부대 격인 자신만의 측근 세력을 만들고 그 누구도 가까이 하지 않았다. 측근으로는 상장군 정중부, 대장군, 이소응 등이 있다. 의종의 측근 무신들은 대우가 좋았던 편이었지만 문신들과 의종은 향략에 빠져 살았고 반면 생계 유지조차 힘들었던 하급 무신들의 불만은 극에 달한 상태였다. 

 

무신정변의 원인 중 하나는 무신들에 대한 차별이었다. 예로 의종이 문신과 어울려 술판을 벌이면 그 옆에서 무신들이 호위하는 역할을 했다. 이는 고려의 사회 구조에 문제점 중 하나였다. 

 

고려 시대에는 무과시험이 제대로 실시되지 않았고 고려 시대 장군들은 김부식, 강감찬 등과 같은 문신으로 글로 된 병법서 등을 공부해야 하기 때문에 실제 지휘하는 장군은 문신들이었다. 무신들은 동네에서 힘을 좀 쓰는 사람이나 전쟁 중 징집되어 나가서 큰 공을 세우면 장군이되는 구조였기에 대부분의 하급 무신들은 출신 성분부터 달랐던 것이다.

 

 

의종의 총애를 받던 무신 '정중부'가 한 해의 잡귀를 몰아내던 의식인 '나례'를 하고 있었다. 문신 김부식의 아들인 김돈중도 있었는데 갑자기 불어온 바람에 촛불이 꺼지면서 김돈중은 촛불을 찾아 불을 붙여 정중부의 수염에 가져가면서 수염이 탄것이다.

 

 

이에 극도로 분노한 무신 정중부는 김돈중에게 주먹질을 하고 싸움이 났는데 처벌받을 위기에 놓인 것은 정중부 뿐이었다.  

 

보현원 사건 

의종은 보현원에서 오병수박희 경기(격투기 일종:5명이 한 조가 되어 맨손으로 힘을 겨루는 시합)를 즐겼는데 이 경기에 출전한 고령의 종3품 무신 이소응과 젊은 장군이 시합을 하는데 복부를 맞은 이소응은 등을 돌리게 되는데 왕과 같은 자리에서 있던 종5품의 문신 한뢰라는 젊은 문신이 이를 보고 이소응에게 다가가 이소응의 뺨을 때리고 그 모습을 보던 의종이 깔깔거리며 웃는 것이다. 이 모습을 본 정중부는 다시 분노하여 화를 내고 이렇게 무신들은 복수의 칼날을 갈기 시작한다. 

 

 

1170년 8월30일무신정변 
이때 고위급 무신 정중부를 찾아온 하급 무신들은 바로 이의방과 이고였다.

 

그들 역시 의종의 친위군이었지만 향락에 빠진 의종 그리고 멸시받는 무신들을 두고 볼 수 없었던 것이다. 그래서 정중부는 호응을 하고 이렇게 하급관리를 주측으로 무신정변이 일어난다. 

 

정중부는 무신정변에 직접 가담하지는 않았지만 그 역시 문신들에 대한 불만이 컸기에 후배 무신들의 뒤에서 힘을 실어준다. 의종이 연회장에서 술을 마시기로 한 날  이의방 이고의 무신정변 첫 번째 목표는 한뢰였다. 

 

이렇게 한뢰는 이의방 이고의 손에 죽임을 당하고 무신정변 첫째 날 약 50여 명의 문신이 죽고 그리고 3일간 지속된 문신들의 죽음이 이어졌다.

 

멸시받던 하급 무신들이 문벌 귀족들을 타도하고 권력을 잡은 것이 무신정변이고 이후 무신집권은 약 100여 년간 지속된다.  

이의방, 이고 대립 
무신정변때 의종은 폐위되고 무신들은 19대 의종의 동생 명종을 왕으로 앉힌다. 이의방,이고를 비롯한 무신들의 세상이 열린 고려였다.

 

정중부는 실세에서 물러나게 되고 이의방과 이고는 실세 자리를 놓고 대립하다가 결국 이의방은 이고를 제거한다.

 

그렇게 고려의 1인자로 이의방이 등극하게 된다. 

 

이의방 집권기
이고를 제거하고 최고 권력자가 된 이의방 이렇게 이의방을 시작점으로 무신정권이 시작된다.

 

그러나 상.대장군으로 구성된 실무 군사회의를 하는 최고 권력기구 중방에는

 

대신들은 없고 기생들로 가득차게 된다.  나랏일은 뒷전 주색에 빠진 이의방은 올바른 통치와는 멀어져간다. 

 

김보당의난, 교종 승려의난
이런 이의방 정권에 불만이 있던 살아남은 문신들은 폐위한 의종 복위 운동을 벌인다. 그래서 함경도 북쪽에 김보당이 난을 일으킨다.

 

깜짝 놀란 이의방이 황급히 진압을 하고 연이어 일어난 교종 승려들의 난이 일어난다.

 

이를 진압하던 이의방은 절에 있던 스님들을 모두 죽이고 절에 불을 지르기까지 한다. 보다 못한 이의방의 친형이 이의방을 말렸고 이에 형을 죽이려하자 주변의 만류로 형을 죽이지 못하지만 분이 가시지 않은 이의방은 자기 가슴을 찔러 자해를 했다. 

의종의 죽음
김보당의난, 교종, 승려의난이 벌어지자 이것은 다 의종을 살려뒀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던 이의방이 의종을 청부살인한다. 이의방이 청부 살인을 맡긴 사람은 이의민이었다. 
무신정변에 참여했던 이의방의 오른팔인 천민 출신 장군이 의종을 살해하는 장면이 <고려사 >에 그대로 기록되어 있다. 

01234567

너무나도 잔혹하게 남아있는 <고려사>의 기록

※ 경인년에  무신정변이 일어났고 3년 뒤에 계사년에 김보당의 난이 일어나서 그때 남은 문신들을 모조리 도륙한 무신정변을 '경계의 난'이라 부른다. 그 이후에 문신들이 하던 행정, 세무 업무까지 무신이 해야하는데 대부분의 무신이 글을 몰라 혼란에 빠진 무신집권기로 기존의 문신 중심 시스템에서 무신 중심으로 변경되면서 봉급제도가 사라지고 그냥 용돈 주는 개념으로 위태로운 상황이었다. 

 

정중부 집권기 
4년간의 폭정으로 이의방 정권에 대한 불만이 쌓여가고 이에 무신 중의 무신이자 모든 무신들의 존경을 받던 장군 정중부가 나서게 된다. 그 사건을 빌미로 결정적인 명분이 되어 정중부가 난을 일으킨다. 의종의 총애를 받았기에 왕까지 죽이는 이의방을 용납할 수 없었다. 결국 군사를 일으켜서 이의방을 제거하게 된다.

 

 

그렇게 정중부가 최고 권력자에 등극하게 된다.
정중부의 권세는 하늘을 찔렀다. 예로 정중부의 노비들도 비단옷을 입고 다닐 정도였고 복장 규정에 어긋나는 정중부의 노비를 어사대 관원이 붙잡자 노비가 관원을 폭행 후 도주한다. 결국 노비가 붙잡히자 정중부가 직접 달려와서 자신의 노비를 문초했다는 이유로 어사대 관원들을 죽이려고 한다. 이렇게 결국 권력의 달콤함에 타락해 버린 정중부였다. 
경대승 정권 
변해버린 정중부에 크게 실망한 젊은 청년 장수가 나라와 백성을 위해 정중부를 처단하는데 이가 경대승이었다.

 

 

경대승은 다른 무인과는 다르게 학문에도 능했고 무예 또한 훌륭했으며 인망도 두터웠던 젊은 장군이었다. 이전까지의 집권자들은 재물을 탐하고 폭정을 휘둘렀는데 경대승은 그렇지 않았다.

 

 

부패와는 거리가 멀고 청렴하고 의협심이 가득했다. 다만 정중부를 죽인 시점부터 악몽와 가위눌림에 시달린다.

 

 

스트레스의 원인은 자신도 죽임을 당할 수도 있다는 불안감이었다. 그래서 '도방'이라는 사병 조직을 만들고 항상 자신을 호위하도록 했다. 그렇게 불면증과 노이로제에 시달리던 경대승은 정중부에게 죽는 꿈을 꾸기시작하고 그렇게 정신적 스트레스로 인해 자신의 뜻을 다 펼치지 못한 채 30살에 요절한다 
이의민 정권 
태생이 천민 출신이지만 압도적인 무력으로 고려를 평정하고 권력을 잡은 이의민은

 

그 힘을 이용해서 뇌물도 받고 남의 땅도 약탈하는 것은 비번한 일이었다. 이의민 뿐만 아니라 그의 가족들 또한 막장이었다. 이의민의 아내는 여종을 질투해서 때려죽이고 본인은 남종과 바람을 피우는가 하면 3명의 자식들도 거슬리는 사람들은 모두 때려 죽였다. 그러나 싸움의 제왕인 이의민을 당할 자는 없었다. 

 

비둘기 강탈 사건 
최충헌은 이런 허술한 무신정권 체계에 불만을 품고 있었다. 그러나 최충헌이 이의민을 제거한 이유는 단순했다. 어느날 최충헌 동생 최충수가 가지고 있던 비둘기를 이의민의 아들 이지영이 강탈해 갔고 이를 돌려달라 요구했으나 이지영은 주지 않았다.

 

아버지 이의민의 권력을 이용해 아들 이지영이 한 횡포에 열 받은 최충수가 형 최충헌에게 고자질을 했고 이에 결국 반란을 결심한다. 쌓였던 갈등이 고작 비둘기 때문에 폭발한 것이다.

 

최충헌.최충수가 합심해 무방비 상태에 있던 이의민을 급습한 후 죽이고 이의민 세력까지 전부 없애고 최충헌은 새로운 무신 1인자가 된다. 

 

최충헌 정권 
최충헌은 국정을 총괄하는 최고 정치기관인 '교정도감'을 만들어 독자적으로 운영하며 정치적 기반을 다진다.

 

그의 아들 최우는 '서방' 이라는 정치자문 기관에 문신을 등용하기까지 한다. 문신의 신뢰를 얻고 비교적 안정된 정권을 이어간 최씨 집안이다.   

 

최충수의 태자비 방출사건
최충헌 정권 이후 명종은 폐위가 되고 왕위 후계자를 놓고 동생 최충수와 형인 최충헌은 옹립하려던 왕이 서로 달랐다.

 

그러나 결국 동생을 설득해 최충헌의 뜻대로 왕민을 고려 20대 왕 신종으로 옹립하게 된다. 이후에 최충수의 태자비 방출사건이 일어나는데 왕 위에 권력자인 형 최충헌을 보며 동생 최충수도 권력을 탐하기 시작한다.

 

 

 

형 몰래 최충수는 계략을 세우고 어느날 신종의 며느리가 행방불명된다. 알고보니 배후가 최충수가 있었다. 최충수는 자신의 딸을 태자비로 삼으려는 욕심에 신종의 며느리 태자비를 궁궐 밖으로 쫓아낸 것이다. 그러나 최충헌은 혼인을 반대 했고 이에 최충수는 중단했다가 주변 사람의 부추김에 다시 재추진을 하게 된다. 이에 최충헌은 동생 최충수를 죽인다.

 

권력 투쟁으로 형제 서로에게 칼을 겨누게 된 것이다.

최충헌 1인자로 등극 

 

최충헌은 조정의 인사권을 완전히 독점했고 집안에 행사가 있으면 역사상 신하의 집에서는 볼수 없는 뇌물들이 가득했고 자신의 집을 지을 때는 민가 1백여 채를 허물고 그 자리에 대궐과 비슷한 규모로 집을 지었다.

 

집을 짓기 위해 토목공사를 할때 해로운 기운을 없앤다는 명목으로 어린아이에게 색동옷을 입혀 집 짓는 땅에 그대로 묻어버렸다고 한다.  말도 안되는 유언비어에 아이들이 희생되니 최충헌의 집터 주변에 아이가 있는 집은 모두 떠나버릴 정도였다고 한다. 

 

 

최충헌의 집에는 주인집에 얹혀살며 밥을 얻어먹는 사람인 문객이 무려 3000명이었다. 이 문객이 무기를 들면 사병이 되었기 때문에 최충헌의 사병은 최소 3000여명은 되었다. 
 희종의 최충헌 암살 시도
무신 정변 이후 처음으로 아버지 신종에게 왕위를 계승 받은 왕이 고려 21대 왕인 희종으로 왕이 바뀌어도 여전히 최충헌이 정권을 잡고 있었다. 24살에 왕이 되며 혈기왕성했던 희종은 최충헌을 몰래 암살할 계획을 세운다. 

 

희종을 알현하고자 입궁한 최충헌을 술상을 준비했다며 궁궐 안으로 부른다.  주위에 스님들이 옆에 서 있는 걸 보고 최충헌은 수상한 낌새를 감지한다. 스님들은 숨겨둔 무기를 꺼내들고 갑자기 10여 명의 승려들이 최충헌에게 돌진하였고 최충헌은 임금께 구해달라고 소리치지만 대답이 없다. 그러나 최충헌의 군사들이 몰아치면서 무사히 탈출에 성공하며 암살작전은 실패로 돌아간다.

 

 

그 이후 희종은 결국 폐위당한다.  

62년간의 최씨 무신 정권 
100년간 이루어진 무신집권기에 이의방, 정중부, 경대승 이의민까지 26년동안 일어나고

 

그후의 최충헌이 집권하고 최충헌은 아들 최우에게 권력을 물려주고 세상을 떠난다. 

 

 

유일하게 죽음을 당하지 않고 아들에게 물려준 정권이 최충헌이다.

 

 

최충헌, 최우, 최항, 최의까지 62년간 직계로 이어진 최씨 무신정권이다. 

 

 

 

 

▽고려 문벌귀족 붕괴 이야기

 

☞이자겸의 난 이야기

 

묘청의 서경 천도 운동 -> 묘청의 난

 

 

▽무신정권 몰락 

 

☞강화도 수도 천도 배경 알아보기 (2)

 

고려 몽골 전쟁 과정 및 김윤후 장군의 활약 /강화 홍릉(3)

 

삼별초 항쟁 역사(배중손,김통정 장군)(4)

 

 

 

반응형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