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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V 방송 리뷰/선을 넘는 녀석들 리턴즈

묘청의 서경 천도 운동 -> 묘청의 난

by 365 ^^ 2020. 11. 25.


[선을 넘는 녀석들 리턴즈 64회]


오늘의 탐사지: 강화도

주제: 묘청의 난 
출연자: 설민석 




고려 100년의 무신정권기의 시작점인 이자겸이 죽고 난 이후 인종의 신세계가 올거라 생각했는데 이미 문벌 귀족의 소굴이 된 개경이었기에 문벌 귀족에게서 벗어나고 싶었던 인종은 개경이 아닌 다른 장소를 물색 중이었고 고민중이던 인종에게 묘청이 찾아온다. 

묘청의 서경 천도

묘청은 풍수지리에 능했던 승려였다. 우리나라에 풍수지리가 처음 들어 온 것은 도선 스님을 통해서였다.



그리고 도선의 직계 제자라 주장한 묘청은 인종을 만나게 되고 인종에게 개경의 지덕이 쇠했으니 서경(평양)으로 수도를 천도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서경으로 천도하면 금나라가 스스로 항복하고 주변 36개국 오랑케국이 무릎 꿇을 수 있다고 설득한다. 



이렇게 묘청의 말에 힘을 얻은 인종은 서경에 새 궁궐터를 정하고 대화궁이라는 궁궐을 짓는데 인종의 명으로 3개월 만에 완공한다.


그런데 성경 천도를 앞두고 기이한 일이 일어난다. 


묘청의 사기극 

그래서 서경이 신묘한 땅임을 알려주기 위해 묘청은 사기극을 벌인다. 왕을 모시고 대동강을 가는데 대동강 물에 떠오른 신비로운 거품은


대동강에 용이 내려와 침을 뱉어 상서로운 기운이 돌고 있다고 한다. 인종은 의아했지만 실제 대동강 물 위로 영롱한 띠가 생겼다. 그러나 이것은 전각만한 크기의 떡을 만들어 그 속에 기름을 넣어 물속에 던져 놓으니



떡과 떡 속의 기름이 떠오르면서 띠가 생긴 것인데 이런 사기극을 결국 인종에게 들킨다. 




김부식의 서경천도 반대운동

김부식은 고려 대표 문벌 귀족 출신으로 묘청에게 적대적이었고 김부식을 포함한 문벌귀족들의 서경천도에 대한 반발은 거세졌다.


김부식은 정통 개평파 문벌 귀족으로 고려 중기 당대 최고의 문장가였지만 김부식이 넘지 못하는 한 사람이 있었으니 정지상이었다. 고려의 천재 시인이자 최고의 문장가로 김부식이 질투를 했었다. 



라이벌 정지상이 추천한 인물이 묘청이었다. 김부식의 맘에 들지는 않았지만 인종의 마음은 이미 서경(평양)에 있었기 때문이다. 기회를 엿보던 김부식은 묘청의 사기 사건을 기회로 인종에게 상소를 올린다. 



묘청의 서경 천도 주장에 반박하며 지금은 내실을 다지며 부국강병 기틀을 닦아야 할 때이고 이런 무모한 행동은 백성을 도탄에 빠뜨리는 길이라고  인종을 설득했다.



묘청의 난  

인종이 서경 천도를 중단하자 결국 서경에서 묘청은 난을 일으킨다. 인종의 마음을 돌리려 난을 일으킨 것인데 인종은 토벌대를 만들어 사령관에 김부식을 임명하고 묘청의 난을 토벌하기 위해 김부식이 출동시킨다.


서경의 묘청의 측근은 사람들의 동요로 사기가 꺽이고 역적이 되길 원치 않았던 그들은 묘청의 목을 쳐서 김부식에게 가져간다. 그렇게 묘청의 난을 진압한 김부식이다.



김부식의 전성기 


그렇게 권력을 잡은 김부식은 정치적 지위를 견고히 하기 위해 권력을 휘두르기 시작한다.


그 후에 고구려,백제,신라 역사를 총망라한 <삼국사기>를 왕의 명으로 편찬하기까지 한다. 묘청의 난을 진압하고 김부식의 시대가 도래했다. 더욱더 굳건해진 기득권층 문벌 귀족의 세상이 된 것이다.




고려 역사상 최악의 폭군 
의종 

인종에 이어 제 18대 왕 의종이 등극했는데 의종은 조선시대 연산군과도 같은 왕이었다. 향락에 있어서는 연산군보다 한 수 위라고 할 정도로 향락왕이었다.


놀때는 호화 선상 파티를 즐긴 의종으로 왕의 배를 만드는데만 꼬박 3년이 걸렸다. 궁궐도 짓는데 3개월인데 배를 만드는데 3년으로 물 위의 아방궁이었다.

최고급 배 위에서 온갖 놀이를 즐긴 의종이었다. 


백성들의 노역으로 3년간 지은 배가 불이 붙자 그 모습을 보고 박장대소를 할 만큼 철이 너무 없었던 의종이었다. 


의종이 이렇게 향락에 빠져 백성들이 고통받는 줄 모르고 망해가고 있던 고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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