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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V 방송 리뷰

권기옥 최초의 여성 파일럿 (여성독립운동가)

by 365 ^^ 2021. 8. 18.

여성 독립운동가 권기옥 

 

일왕의 궁을 폭파시키려 했던 한국 최초의 여성 비행사이다.  권기옥은 1901년에 태어났다. 조선시대 태어나서 일제강점기를 거친 인물이다. 당시는 지금보다 비행기를 탈 수 있는 기회가 더 없었고 비행기의 모습조차 쉽게 볼수 없던 1900년대였다. 

 

 

집안이 어려워 어릴때 부터 집안 살림을 도왔던 권기옥은 1917년 한반도 최초로 비행쇼가 여의도에서 열렸는데 그것을 보고 비행사의 꿈을 키웠다고 한다. 공부에 대한 열정은 있었으나 가난해서 교회에서 운영하는 학교를 다녔다. 이후 평양 숭의여학교에 입학하게 된다. 이때 3.1 운동이 일어난다. 

 

중국 공군 시절 권기옥 선생

 

송죽회 가입

권기옥 선생은 학생 때 비밀결사대 송죽회에 가입했다. 송죽회(1913년 평양에서 조직된 항일 비밀 여성 단체로 3.1 만세 운동을 위해 적극적인 활동을 펼진 단체이다. 당시 일본인 사감의 눈을 피해 송죽회 일원들은 기숙사 안에서 태극기를 만들고 애국가를 등사하는 활동을 하다가 권기옥 선생은 만세운동으로 평양경찰서의 유치장에 감금당했다. 이때 나이가 18~19세였다. 

 

송죽회

 

그러나 이에 멈추지 않고 출옥 후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연락원으로 투신하며 독립자금을 모으기 위해  애국공채를 발행(정부가 비상시에 국민의 애국심에 호소하여 이자 없이 모집하는 공채) 독립하고 나면 돈을 돌려주겠다고 얘기하지만 사실상 독립자금을 모금하는 것이다. 그러나 결국 이 일로 미행하던 일경에 체포된다.

 

 

 

상하이 망명

모진 고문에도 입을 열지 않는다는 조서가 있을 정도였고 6개월 형기를 마시고 1920년 평안남도 도청을 폭파하기 위한 폭탄 제조에 가담해서 거사를 진행하다가 더욱 활발한 독립운동을 위해 중국으로 망명해 상하이로 갔다.

 

 

상하이 망명에 성공해 이미 그곳에서 활발한 독립운동을 하던 김규식과 그의 아내 김순애를 만난다. 김순애 선생의 도음으로 홍도여자중학을 졸업 후 1923년 임시정부 추천으로 운남육군항공학교 제1기생으로 입학한다.

 

 1차대전이 끝나는 전후로 배 위에 비행기를 싣고 비행기가 날라가 폭탄을 투하하는 새로운 전법이 대두되었기 때문에 공군은 신무기에 전쟁의 핵심 자원이었다. 이에 빠르게 공군을 양성한 미국, 일본등의 선진국에 비해 중국은 항공 학교 양성이 초기 단계였다. 당시 중국의 상황은 청나라 멸망 후 수많은 군벌끼리 서로 싸우던 시기로 군벌들이 자신의 전력을 키우기 위해 비행기를 수입하고 비행사 학교를 만들었다. 1923년 그때 권기옥 선생은 이곳에 입학해 한국 최초 여자 비행사가 된 것이다.

 

윈난항공학

 

최초의 여성파일럿되다. 

권기옥 선생은 훈련 9시간 만에 단독비행이 가능했을 정도로 실력이 뛰어났고 입학 1년 2개월 만에 제 1기로 학교를 졸업하였고 중국 국민당이 북벌을 시도할 때 참전하면서 중국 공군의 맴버로 참천 한국 최초의 여류 비행사로 복무하게 된다. 이때 중국인 파일럿 또한 100명 남짓이었는데 그 중에 한국인 파일럿이 3명이었고 그 중에 한명이 바로 권기옥이었다. 

 

당시 우리의 독립운동은 중국이 해방되는 것이 우리의 독립에 큰 도움이 될 것이고 중국의 민족운동가들과 우리의 독립운동가 간의 다양한 연대활동이 많던 시절이다. 그래서 중국 국민당 소속으로 한국 공군 독립운동의 상징이었던 권기옥 선생이다. 

 

 

 

권기옥 선생에 대한 오해

 

그러나 눈에 누군가가 띄면 그 사람을 끌어내리기 위해서 거짓 소문이 많이 퍼지는데 권기옥 선생은 암살 시도를 당하기도 하고 일본의 지속적인 핍박이 있었고 밀정으로 오해를 받아 체포가 되어 옥고를 치르기도 하면서 독립운동가로 계속 활동을 이어나갔다. 

 

일제의 탄압으로 충칭으로 임시정부 이전하면서 한국광복군을 창설하며 김구 주석과 임시정부의 목표 중 하나는 한국 공군 창설이었다. 그래서 실제도 그 당시에 중국 국민당 출신이었던 권기옥, 손기종, 최용덕과 함께 한국광복군 비행대의 작전을 임시의정원에 제출했으나 일본의 패전으로 이루어지지 않았다. 

 

한국 공군 창설의 주역

 

그러나 바로 이 멤버들이 해방 이후에 한국 공군 창설의 주인공이 되었고 안타까운것은 최용덕은 제 2대 공군참모총장까지 오르지만 권기옥은 그 당시 여성이라는 이름으로 큰 직위에 올라가지는 못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 공군 역사의 기초를 다진 권기옥 선생이다. 우리 민족 역사에 큰 밑거름이 되었던 인물이다. 

 

[출처 사피엔스 스튜디오 역사읽어드립니다 e.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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