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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V 방송 리뷰/벌거벗은 세계사

교황들의 타락 : 콘클라베 - 아비뇽 유수=억류 123-2

by 365 ^^ 2023. 11.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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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전글) 교황의 권한 - 카노사의 굴욕 123- 1

콘클라베 

중세시대 교황은 종교적인 지도자이며 세속적인 지배자이기도 했다. 교황이 되는 법은 11세기 초 후보자가 결정되면 신도와 성직자들이 모여 직접 선거를 했다. 하지만 점점 교황 선출 과정에서 지나친 간섭이 발생하자 고위 성직자 중에서 추기경단이 꾸려져 추기경만으로 구성된 모임에서 교황을 선출하도록 했다. 교황 선출을 위해서는 철저하게 비밀회의가 이루어졌고 이를 콘클라베(열쇠로 잠근다는 뜻) 라고 했다. 

 

현재 이탈리아에서 생방송으로 볼수 있는 콘클라베이다. 

비밀투표기 때문에 안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는 볼수 없으나 연기가 나면 교황이 선출된 것이다. 

 

당시 영향력있는 추기경들이 이 콘클라베를 통해 교황 후보로 거론되었고 추기경단의 투표를 얻어 교황이 되었다. 이렇게 추기경단의 표를 얻기 위해서는 투표권을 가진 추기경을 자기 세력으로 만들어야 했다.  

 

아비뇽 유수 

막강했던 교황의 권위가 변화가 일어났던 사건이 있다. 아비뇽 유수이다. 이탈리아 로마에 위치한 교황청을 강제로 프랑스 남부 아비뇽으로 옮겨 1309년부터 1377년까지 머무르게 한 사건이다. 14세기 강력한 왕권을 확립해 나가던 프랑스의 필리프 4세는 교황의 기세를 누르기 위해 로마에 있던 교황의 거처를 아비뇽으로 강제로 옮겨버린 것이다. 이후 약 70년 동안 교황은 아비뇽에 거주하게 되었다. 

 

 

그리고 이 사건을 계기로 교황의 권위는 떨어지고 프랑스의 왕권이 강화되게 된다. 그리고 70년정도 흐른 뒤 야비뇽에도 교황이 있고 로마에도 교황이 있는 1409년 많을 때는 3명의 교황이 있는 서방교회 대분열 시기를 맞이하게 된다. 이로서 교황의 권위는 더욱 약화되었다. 

 

 

 

콘스탄츠 공의회

그리고 14세기 중반 유럽을 덮친 대재앙 흑사병이 돌기시작한다. 흑사병으로 거리가 시신으로 덮일 만큼 많은 사상자가 발생하며 유럽을 초토화시켰다. 이로 인해 교황의 권위는 더욱 떨어지게 된다. 이에 1414년부터 1418년까지 대립하던 세명의 교황의 폐위를 의결하고 새로운 통합 교황을 선출하는 콘스탄츠 공의회를 열었다. 이 회의는 각국의 군주, 추기경 등 약 10만 명이 참석해 약 4년 동안 회의를 진행했고 마르티노 5세를 선출하고 서방교회 분열을 종식시키려고 했다. 

 

그러나 중세유럽 전역을 지배하던 교황의 권위는 사라지고 로마가 포함된 이탈리아 내부의 권위만이 존재하게 되었다. 하지만 이탈리아 내에서조차도 교황의 권위는 예전만 못했다. 심지어 이탈리아 교황령안에서도 세금 납부를 거부한다거나 크고 작은 토착 세력의 영향력 강화로 교황의 권위가 또 다시 하락하게 된다. 

 

 

 

 

 

 

 

식스투스 4세 교황의 타락 

이에 교황 식스투스 4세는 떨어진 교황의 권위를 되찾기 위해 내부기강을 잡으려고 자신의 주변에 믿을 만한 사람을 배치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식스투스 교황으로 선출된 직후 자신의 조카 6명을 추기경으로 임명한다. 가족들을 등용한 후 권력을 휘두르기 시작한다. 권력을 잡기 위해 돈이 필요했고 교황령의 곡물 판매권을 이용해 곡물을 독점해 이탈리아의 여러나라로 팔아 폭리를 취했다. 또는 성직자들의 재산에 대한 상속법을 개정해 성직자가 사명하면 반납해야 하는데 교회에서 취득한 성직자의 재산을 가족들에게 물려 줄수 있도록 한다. 이렇게되면 사유재산이 생기며 더욱 교황의 권한은 강력해질수 있었다. 게다가 성직 매매가 가능하도록 법을 개정했다. 이 모든 것이 돈을 향한 식스투스 4세의 끝없는 탐욕에서 비롯되었다.  절정은 매춘부에 대한 공식면허를 주면서 세금을 거둬들였고 로마로 간 매춘부가 9만명에 달했다.

 

인노첸시오 8세 

다음 교황이었던 인노첸시오 8세는 메디치 가문과 결탁해 메디치 가문의 후손을 성직자로 등용했고 마녀사냥을 명목으로 수많은 사람을 죽여 교황의 권위를 높이려했다. 

 

교황 알렉산데르 6세

이후 역대 최악의 탐욕가로 알려진 교황이 등장한다. 교황 알렉산데르 6세이다. 교황이 되는 과정부터 심상치 않았다. 교황이었던 외삼촌의 도움으로 25살의 나이에 추기경으로 임명되었고 이후 추기경 급여, 헌금등으로 로마에서 가장 부유한 추기경이 되었다. 

 

 

이후 자신의 외삼촌이 죽자 60세가 된 알렉산데르 6세는 교황이 되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았다.   그리고 1492년 교황의 자리에 오르게 되고 탐욕의 중심에는 그의 가족들이 있었다. 알렉산데르 6세의 자식들은 16명으로 추정되는데 자신의 자식으로 인정한 자식은 4명 뿐이었다. 그러나 이 자식들과 근친상간의 소문이 돌았다. 

 

 

그렇게 탐욕스러웠던 알렉산대르 6세는 재위 11년 만에 말라리아로 사망한다.

 

율리오 2세 교황 

알렉산데르 6세 이후의 교황의 모습도 흡사하다. 215대 교황 비오 3세가 재위 26일만에 사망하자 다음 교황으로 율리오 2세가 교황이 된다. 그는 교황령을 넓히기 위해 직접 갑옷을 입고 전쟁에 참전했다. 그는 성직자라기보다는 군인에 가까웠던 교황이었다. 그의 이름 율리오 또한 성인의 이름이 아닌 율리우스 카이사르의 이름을 인용한 것이었다. 그러나 그가 전쟁만 한 것은 아니었다. 성 베드로 성당의 신축을 지시했고 당대 최고의 예술가등을 후원해서 예술작품과 건축을 통해 자신의 명성을 높이고자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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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처럼 교회와 교황은 세속적인 힘을 가지기 위해 권력을 남용했고 자신의 목적과 탐욕을 위해선 무엇이든지 할수 있는 상황이었다. 그리고 그쯤 이상 현상들이 계속 일어나고 있었다. 1506년 스페인에서는 혜성이 자주 포착되었고 애벌레와 쥐떼가 자주 출몰했고 기후 이변으로 흉작까지 계속되었다. 이로 인해 성경에 예견된 종말론 사상이 퍼지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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