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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V 방송 리뷰/선을 넘는 녀석들 리턴즈

유교책판이 있는 안동 한국국학진흥원과 유교문화박물관(20)

by 짱신나^^ 2020. 7. 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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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을 넘는 녀석들 리턴즈 20회]


오늘의 탐사지: 안동 한국국학진흥원, 유교문화박물관



한국국학진흥원  


Q.장판각이란?

A. 조선시대 유학자들이 저작물을 간행하기 위해 나무판에 새긴 유교책판을 보관하고 있는 곳 .
2015년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됐다.


전 세계 유네스코 등재된 3개의 목판

1. 베티남의 응우옌 왕조의 목판


2.한국의 팔만대장경 


3.유교 책판



유교책판은 국가에서 만든것이 아니다. 그렇다고 특정 개인이 만든 것도 아니고 조선 후 기 1000여개가 넘는 서원에서 선비들의 여론이 형성되어, 선비들이 읽은 책 중에서 후대에 남길만한 명저들을 엄선 해서 국가 예산이 아닌 선비들의 십시일반 각출로 제작한 것이다. 

하지만 몇 년 전만 해도 제대로 보존 되지 못한 채 땔감이나 빨래판으로 쓰였던 유교 책판들이다. 2002년부터 시작된 목판 수집 운동으로 305개의 문종과 서원에 기탁한 총 67000여장 유교책판을 수집 보관하고 있는 곳이 장판각이다.  


유교책판의 손잡이를 마구리라고 하는데 이것의 기능은 

→판과판 사이에 공간을 만들어 통풍이 용이
책판들끼리 부딪치지 않아 글자들이 마모방지. 
양옆에서 잡아주니 목판이 휘는 걸 방지

끈 묶는 법


목판이 앞뒤로 한면씩 있으니 한 판으로 책 4페이지 인쇄 가능


임금의 어명을 담았던 유서통

임금의 명령서인 유서를 전령들이 들고 갈 때 쓰던 통

 
유교 문화 박물관 


유교문화 박물관이란? 

전통문화 중 하나인 유교문화가 깃든 유물들을 발굴, 전시하며 유교 문화를 알리기 위한 전시가 열리기도 하는 박물관이다.



도선서원 현판은 한석봉이 썼다.


선조8년 때는 1575년 도산 서당의 현판을 제작하기 위해 조선 최고의 명필가 한석봉에게 시키려고 
하지만 그가 느낄 부담이 우려돼서 한 글자씩 거꾸로 쓰게 했다. 명에 따라 글을 쓰던 한석봉은 마지막 글짜를 쓰고 붓을 떨어뜨렸다는 설이 있다.   

그래서 '도' 자는 글씨체가 흔들림이 있다.


영남만인소는 무엇인가?

1762년 영조 38년 27세의 사도세자는 아버지 영조의 명으로 곡식을 담는 궤 뒤주에 갇히고 그 뜻이 확고했던 영조는 손자 정조의 간청에도 뜻을 굽히지 않았다. 결국 사도세자는 친아버지에 의해 숨을 거두고 영조는 사도세자의 추숭(사후에 존호를 올림)마저 금지시킨다. 그리고 어느덧 시간이 흘러 철종시절 만여 명(10,057명)의 영남 유생들이 사도세자의 명예를 회복시키고자 사도세자 추존을 위해 올린 상소문이다. 


영남만인소를 본 철종의 반응은?  
유생들에게 과하지 않은 벌을 내리며  영조의 뜻도 지킨 현명함.  

영남 유생들의 충절이 가득한 엄청난 길이


 
류성록의 징비록


국보 132호 <징비록>원본이 보관되어 있다. 
류성룡은 임진왜란 당시 최고의 자리에 있었던 인물 총사령관이었다.임진왜란이 끝나고 고향 안동으로 돌아와서 스승 퇴계 이황의 문집을 정리하기 시작하고 다시는 임진왜란 같은 아픈 역사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 임진왜란 반성문을 작성한다. 그것이 징비록이다.

징계할 징 삼가할 비 기록할 록


이 징비록이 왜관을 통해서 일본으로 넘어간다. 
일본에서는 조선 징비록이라 불림
실제 1차 진주성 싸움에서 김시민 장군의 전사 소식을 모르고 있었는데 일본이 징비록을 보고 알았다고 한다. 그래서 조선 후기 숙종은 절대 그것을 일본이 보지 못하게 하라고 명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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