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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V 방송 리뷰/선을 넘는 녀석들 리턴즈

독립 투사 이육사의 일생 in 이육사 문학관 (21)

by 짱신나^^ 2020. 7.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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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을 넘는 녀석들 리턴즈 21회]

 

오늘의 탐사지: 안동 이육사 문학관

주제: 저항 시인이 아닌 독립 투사 이육사

출연자: 정유미

 

 

이육사 문학관

 

 

이황 선생의 후손 독립운동가 이육사~

 

청포도, 광야, 꽃 등 교과서에서 봐서 더 익숙한 그의 시들

 

퇴계 이황의 후손이자 저항시인으로만 알려져 있는 이육사지만 사실 무장투쟁 독립운동가였다. 

 

 

 
원일, 원조, 원창 삼형제가 이육사의 작품을 세상에 알린 사람들이다. 
1946년 10월 20일 이육사의 시를 모아 유고집 '육사시집'을 발간했다. 
  
이황 선생의 후손답게 독립 운동 가문이었던 이육사의 집안, 친가, 외가 모두 독립운동에 앞장섰었다. 1930년대 저항시인으로만 알고 있지만
 
우리가 몰랐던 이육사의 또 다른 모습 
의열단 김원봉을 중심으로 만든 조선혁명군사정치간부학교 1기생이다.   
 

 

이육사가 된 계기

 
이육사 선생님의 이름은 수감번호에서 나왔다는 것은 많이 알려진 사실이다. 
 
 
1927년 10월 18일 일제 수탈의 상징 조선은행 대구지점 폭탄 의거 그 배후로 지목된 이원록은 체포되고 그때의 수감번호 264가 시인 이육사가 된 계기다. 

 
23세때 처음 감옥을 간 후 40세에 생을 마감하는 순간까지 17년간 감옥에 17번을 간다. 인생의 대부분을 감옥에서 보낸다. 

 
반복된 투옥, 고문으로 고문 후유증을 얻고 쇠약해질 대로 쇠약해진 몸으로 움직임이 자유로워지지 않자 문학과 사상으로 독립 운동을 한 것이 시인으로 바뀌신 것이다. 
 
20년대는 무장투쟁을 하다가 1930년대 대표 저항시인 윤동주,이육사으로 활동한다. 
 
1943년 39세에 무기 반입 계획을 세우다 일제에 붙잡혀 북경으로 이송되고, 1944년 1월 16일 북경 감옥에서 순국하셨다. 그가 그토록 바라던 광복 1년 전이었다. 
 
 이육사의 시신을 수습한 그의 친척이자 독립운동가 이병희 여사

 

 

 
그 이후 세 형제가 이육사 선생의 딸 집에 남아 있는 습작을 모아 유고 시집을 1946년 발간한다. 
 
이육사 선생의 유일한 살아있는 혈육
 
이옥비라는 이름도 이육사 선생이 직접 지어주신 이름이라 한다.  
기름질 옥 아닐 비-> 욕심없이 남을 배려하는 간디 같은 사람이 되라는 뜻이라고..
 
기억 속의 아버지 마지막 모습
 
1943년 베이징의 감옥으로 이송되기 전 그때 나이가 4살일때 청량리 역에서 기다리고 있었고 어머니가 동대문 경찰서에서 데리고 오신 아버지는 포승줄에 꽁꽁 묶여 얼굴에는 용수를 쓰고 계셨던 아버지가 어린 마음에 충격이었다고... 
한 발짝 다가오셔서 하신 
 
아버지의 마지막 유언 

 

이옥비 여사가 제일 좋아하는 아버지 이육사 시는 '꽃'

인내와 희망의 상징으로 이육사의 의지가 담긴 작품

 
시인으로는 많이 알려졌지만 독립 투사로서 역경과 고난 속에도 조국의 해방을 노래한 시인이자 독립운동가 이육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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