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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V 방송 리뷰/역사저널 그날

홍이포 대포 - 남한산성으로 피신했던 인조를 굴복시킨 무기..

by 365 ^^ 2023. 2.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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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36년 오랑캐라고 부르던 청나라가 조선을 침략한다. 병자호란이었다. 한양을 떠난 인조는 남한산성으로 피신, 47일만에 청나라에 굴복하고 만다. 이때 남한산성을 포위한 청군이 가진 비장의 무기가 있었다. 

 

영화 남한산성 한장면
영화 남한산성 한장면

 

홍이포 위력

 17세기 홍이포라는 대포이다. 원래 서양에서 들어온 것을 명나라가 사용하다가 청나라가 뺏어왔다. 이 대포는 엄청난 폭음과 위력을 자랑한다.  이 대포로 조선의 성벽은 무너졌고 성벽을 넘어 성 깊은 곳까지 떨어진 포탄에 조선군은 속수무책으로 당했다. 홍이포의 무게는 수백 kg이상으로 홍이포의 위력은 대단했다. 최대사거리 무려 9km로 현대 무기 박격포 최대사거리가 3~6km인데 그것이 2배인 셈이다.

 

임진왜란때 사용했던 천자총통은 30근짜리 포탄을 사용하면 사정거리 약 1.4km 였다. 이 천자총통보다 10배 이상의 긴 사정거리를 가진 홍이포였다. 물론 기록마다 사정거리가 조금씩 다르지만 당시 사람들에게 충격과 공포의 대상임은 틀림없는 증거이다. 

 

천자총통, 홍이포 길이 차이
천자총통, 홍이포 길이 차이

 

병자호란때 사용된 홍이포

병자호란 당시 청군은 남한산공이 멀리 보이는 곳에 포대를 설치해 놨고 인조가 항복하기를 기다렸으나 한 달이 지나도록 굴복하지 않자 이 홍이포를 쏘기 시작했다. 추위와 부족한 식량에도 잘 버티던 조선은 홍이포 포격 후 약 10일만에 결국 항복을 하고 말았던 것이다. 

 

인조실록에 기록된 홍이포 이야기
인조실록에 기록된 홍이포 이야기


신무기가 역사의 흐름을 바꾼일이 많은데 임진왜란때는 조총으로 무장한 왜군때문에 놀랐고 병자호란때는 홍이포때문에 놀랐다.  그 홍이포를 처음부터 청나라가 가지고 있었던 것은 아니다. 홍이포를 보유했던 것은 명나라였다.  

 

 

홍이포는 누가 만들었나? 

홍이포의 원산지는 붉은 홍, 오랑캐 이로 붉은 머리와 수염을 가진 오랑캐가 쓰는 대포라는 뜻이다. 유럽인들 중에서도 네덜란드인을 가리킨다. 당시 천주교로 개종했던 명나라 대신들이 무섭게 크고 있는 후금을 제압하기 위해 서양식 화포를 도입하길 권했고 이들의 노력으로 포르투갈인들을 통해 네덜란드 컬버린 포가 들어오면서 명나라 붉은 오랑캐의 대포라는 뜻의 홍이포라는 이름을 갖게 되었다. 일본에 처음 조총을 전한 것도 포르투갈인으로 유럽 사람들이 동아시아에 큰 영향을 끼친 것은 사실이다.  

 



유럽이 대포가 발전한 이유  

 15세기 콘스탄티노플 함락때부터 공성전에 본격적으로 대포가 사용되었고 비잔틴 제국이 무너지면서 유럽은 싸움판이 된다. 영주의 성이 대포에 의해 무너지게 되니 대포의 성능을 높이기 위해 기술력이 집약되었던 것이다. 동양에서 화약기술은 중국 송나라때 발명돼 유럽으로 건너갔으나 대포는 유럽이 더 발전하기 시작했던 것이다.  

 

홍이포 장전 방법은?  

먼저 화약을 넣고 꾹꾹다져준 다음 포환을 넣고 공간이 없도록 밀어 넣는다. 

 

홍이포 장전법
홍이포 장전법

기화식으로 뒤에 심지에 불을 붙인 다음 발사가 된다. 다음에는 뒤로 갈수록 점점 두꺼워지는 홍이포인데 뒤쪽에서 압력이 발생하기 때문에 뒤쪽이 더 두껍다.

 

 

 압력을 높여서 더 멀리 빠르게 쏘기 위함이다. 포신(포의 길이)이 길면 압력이 더 멀리 전달되어 포환의 속도가 빨라지는 원리이다. 

 

397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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